봄날은 간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모두 힘들어졌다.


얼마 전 두 돌을 맞은 큰 아이는 동생을 못 잡아먹어서 힘들다. 엄마·아빠 사랑을 나눠야 하는 동생이 눈엣가시다. 너무도 미워서, 꼬집고 할퀴고 찌르고 싶은데 엄마·아빠는 못하게 한다. 요령을 부려본다. 엄마·아빠가 경계를 풀 만큼 한껏 웃는 표정으로 다가와, 일단 동생의 이마에 뽀뽀를 한다. 그리고 잽싸게 꼬집거나 할퀴거나 찌르고는 내뺀다. 동생이 생긴 큰 아이의 심리적 부담이 첩을 들이는 본처의 스트레스에 맞먹는다는 세간의 이야기는, 크게 보아 틀리지 않을 성 싶다. 나는 언젠가부터 큰 아이 있는 데선 작은 아이가 예쁘다는 소리도 함부로 못하고 산다.


작은 아이는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이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밖에 없어 힘들다. 울음의 뜻은 배고픔, 졸림, 더움, 기저귀의 찝찝함 등 여러 가지 불편함이다. 사실 엄마 뱃속에서 배 밖으로 나오는 과정은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되는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게 괴로움)라 할 만하다. 엄마 뱃속의 삶은 먹지 않아도 먹을 수 있고, 잠들지 않아도 잘 수 있고, 마렵지 않아도 쌀 수 있는 삶이다. 엄마 배 밖에선 때맞춰 먹어야 하고, 트림해야 하고, 싸야 하고, 자야 한다. 신이 인간이 됐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아내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유 탓에 힘들다. 잠을 못 자니 두 눈이 퀭하다. 신경도 예민하다. 집에 있으며 보며 겪는 이 일 저 일 모두가 성질을 긁는다. 가사도우미나 육아도우미는 성에 차지 않는다. 프리랜서 생활의 요령을 익히면서 회사에선 자유로워졌지만, 머릿속 한편엔 경력 단절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 첫 아이 출산 뒤 원치 않는 퇴사를 했던 트라우마도 생생하다. 잠잘 시간도 없는 지금도, 언제든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기회만 된다면 일하는 게 행복한 사람이다.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는 나대로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다. 늦은 밤 퇴근해 집에 와도 제대로 못 쉬어서 또 힘들다. 그런데 나머지 셋 이야기를 적다보니, 솔직히 그보단 덜 힘들 것 같다. 어쨌든 그래서 넷 다 힘들다.


그러나 행복의 씨앗은 집안 곳곳에서 꽃을 피운다. 아기의 볼살이 오르고, 때마다 황금 똥을 싸고, 새근새근 잠드는 모습을 보며 힘들다는 생각을 잊는다. 일하던 도중에 아내가 두 녀석이 낮잠 자는 모습을 찍어 휴대전화로 보내오면 난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오늘은 아내가 “둘째 자는 모습 보다가 살짝 셋째도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얼마 전 부양가족 셋의 이름이 찍힌 건강보험증이 집으로 왔을 때, 한편으론 부담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가족이란 뿌듯함이 앞섰다.


동갑내기 한 친구가 직장을 곧 관둘 거란 소식을 들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남편은 외국에 나가있는 상황에서 회사 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그는 첫 아이가 생긴 뒤 서둘러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은 뒤 육아휴직을 냈다가 복직을 했는데 남편이 외국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남편이 국내에 온 새 둘째가 생겼고, 출산 뒤에는 다시 휴직하고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갔다. 그리고 복직 시점이 되어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여름인가 싶은 5월 햇살 아래 누구에게나 힘든 출산·육아 현실을 새삼 깨달으며 생각에 잠긴다. 우리 인생의 봄날은 이렇게 가버리는 걸까. 아니면 같은 자리에 심은 행복의 씨앗이 우리는 몰랐던 꽃을 피우는 걸까.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2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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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 정치부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