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절

큰 아이는 곧 네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4년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아이는 정확히 그만큼 자랐다.

이제는 혼자 잘 걸을 뿐 아니라 방방 뛰어다닌다. 숟가락과 포크는 물론, 손가락 구멍이 달린 젓가락도 꽤 능숙하게 쓰면서, 혼자 밥도 잘 먹는다. 온전히 혼자 옷을 입진 못해도, 어떤 순서로 입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어느 방향이어야 하는지도 잘 안다. 벗는 건 그보다 훨씬 능숙하다. 비록 차곡차곡 정리하는 건 아니라 해도, 집에 들어서면서 훌러덩훌러덩 옷을 잘만 벗는다. 화장실도 잘 가려서 실수도 거의 않는다.

아이는 스스럼없이 제가 보고들은 것을 나름 조리 있게 설명한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차분히 풀어놓기도 한다. 자기가 바라는 것도 분명하고, 가끔은 제법 논리를 갖춰 누군가를 설득하려 들기도 한다.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런 이야기일 때도 있지만, 어떨 땐 듣던 내가 꼼짝없이 설득당해서 원하는 걸 들어줘야만 할 때가 있다.

어느덧 아기 티를 벗고 어린이가 되어있는 아이의 행동거지와 말주변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갓난쟁이를 붙들고, 쥐면 터질라 불면 날릴라 노심초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분명 육아는 한결 쉬워졌다. 그러나 문득문득 아이가 낯설기도 하다.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큰 건가 싶어서다.

얼마 전 스마트폰을 교체하면서, 그 안에 있던 사진을 모조리 가상 저장공간(웹하드)에 저장시켰다. 내친 김에 어느덧 대부분 다시 돌아보지 않게 돼버린 외장하드의 지난 몇 년 치 사진과 동영상도 올려봤다. 어차피 잘 보지도 않으면서 막연히 가졌던 ‘분실의 공포’가 사라져 안도한 것도 잠시, 하나씩하나씩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게 된 옛 사진들엔 더 어린 시절의 아이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넘겨보며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빠 발길 따라오며 아장아장 겨우 걸음마를 떼던 모습, 뭐가 그리 좋았는지 박수를 치며 까르르 웃던 모습,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가더니 태극기를 보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노래하던 모습, 유리창 한가득 낙서를 해놨던 모습, 통통한 볼살에 파묻힌 입에서 처음으로 “아빠”란 말이 나오던 모습, 뜻을 알 수 없는 옹알옹알 소리로 책보는 흉내를 내던 모습, 아빠 칫솔을 호시탐탐 노리다 기회만 되면 들고 도망가선 곳곳에 숨겨놓던 모습, 공갈젖꼭지 물고 오물거리던 모습, 아빠 배 위에 엎어져 곤히 잠자던 모습, 함께 하는 숫자놀이에 흥겹던 모습….

그걸 보니, 아이가 이 모든 순간을 거쳐 너무도 감사하게도 지금만큼 자라줬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내가 모자라서 그땐 미처 몰랐을 뿐, 결코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이었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값지며, 그토록 예뻐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순간이 이렇게 많았는데, 왜 지금 와선 아이가 문득 낯설다는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나 싶어 내 스스로가 답답해졌다.

아이의 성장은 멎지 않는다. 해마다 아이가 자라서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달마다 성장이 다르고, 날마다, 시간마다, 분, 초마다 다르다. 그러니 흘러가는 시간이 이젠 너무도 아까워진다. 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있긴 한 걸까. 내가 언제까지 울 엄마한테 이렇게 사랑스러웠나를 생각하다, 자신감이 없어진 난 그냥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아까움과 안타까움을 되새기던 어느 주말, 집안 청소를 하던 아내가 탄식한다.

“어머, 이 옷 좀 봐! 우리 애들이 이만했었는데!” 아, 아내여!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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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 정치부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