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히 길렀던 내 ‘육아 근육’은 어디에

인간의 DNA엔 엄마 뱃속에서부터 여러가지가 새겨져 있어서, 인생 내내 그 기억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머리칼과 눈의 색깔, 체형, 체질, 손·발가락의 모양 등 DNA는 우리 인생의 수많은 것을 결정해준다. 그러나 인간의 근육은 달라서, 쓰면 단련되고 쓰지 않으면 기능을 잃는다. 오랜만에 안 쓰던 근육을 쓸라 치면, 쓰임새를 잊고 있었던 근육은 ‘왜 날 깨우느냐’고 버럭 화를 낸다.

오랜만에 산을 오른 다음날엔 허벅지와 종아리가 후들거린다. 오랜만에 윗몸일으키기를 하면 배가 당겨서 기침만 해도 아프다. 오랜만에 무거운 걸 지고 다니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오랜만에 삽질을 하면 팔꿈치부터 손아귀까지가 저릿하고, 오랜만에 타자를 치면 팔목이 뻐근하다. 오랜만에 필기를 하면 손가락이 욱신거리고, 오랜만에 뜀박질을 하면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만 같다. 그게 다 근육의 성질머리다.

육아 능력은 DNA에 새겨져서 척척 결정되는 게 아니다. 본능적 육아는 없다. 육아엔 근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를 한동안 키우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아이를 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지어 10남매를 키워낸 어머니도 삭신이 쑤신다. ‘육아 근육’이 단련되지 않아서다.

민첩하게 분유를 타면서도 거품이 일지 않게 잘 흔드는 근육,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안정적으로 폭 끌어안는 근육, 포대기 없이도 등에 아이를 밀착시켜 균형을 잡고 업는 근육, 다리와 허리로 적절한 진동을 만들어 노곤한 아이가 잠들도록 하는 근육, 한손으로 양발을 들어올리고 다른 손으로 기저귀를 잽싸게 갈아주는 근육, 그밖에 설거지와 청소, 빨래 등 집안일에 필요한 모든 힘이 육아 근육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분류해 배고픔·졸림·응가·쉬·지겨움 여부를 판단하는 청각과, 아이가 놓인 환경이 위험하지 않은지를 한눈에 미리 판단하는 시각, 기저귀 상태를 열어보지 않고 응가 여부를 알아채는 후각 등 각종 감각이 더해지면 ‘육아 머신’ 엄마·아빠가 완성된다. 육아 전담의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나도 한때는 꽤 잘 나가던 ‘육아 머신’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육아휴직 시절 아내가 출근한 뒤 난 아이와 단둘이 집에 남아서 육아근육을 날마다 단련했다. 아이를 안아서 놀아주고, 우유와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청소·빨래를 하고, 업어서 재우고, 양손 잡고 걸음마를 시켰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아이는 누가 봐도 먹성 좋고 성격 좋은 활발한 아이로 무럭무럭 잘 컸다. 우리집에 놀러왔던 후배들은 “아이 키우는 집같지 않게 깨끗하다”며 내게 ‘진정한 살림꾼’이란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역시 근육은 쓰지 않으면 기능이 퇴색한다. 얼마 전 주말, 프리랜서인 아내는 일이 있다며 아이 둘을 내게 맡기고 출근을 했다. 이유식은 예전처럼 잘 되지 않았고, 청소·빨래도 낯설었다. 큰 녀석에게 밥을 먹이노라니, 작은 녀석이 칭얼댔다. 작은 녀석을 겨우 재웠더니, 큰 녀석이 계속 같이 놀자고 보챘다. 급기야 큰 녀석과 작은 녀석이 동시에 ‘응가 폭탄’을 투하하면서 난 패닉에 빠졌다. 번갈아 씻기긴 했지만, 방 구조를 바꾼 탓에 두 녀석 옷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 와?”

고작 반나절을 전전긍긍하면서, 아이들과 멀어진 내 모습이 서글퍼졌다. 아! 나의 육아 근육은 어디로 간 걸까? 어떻게 해야 되찾을 수 있을까?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2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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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 정치부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