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몸, 나쁜 몸, 이상한 몸

20130911_2.jpg » 워터파크, 한겨레 자료 사진.

올여름 휴가엔 이른바 ‘워터파크’라는 데를 다녀왔다. 물놀이는 참 오랜만이었다. 특히 실내수영장에 물놀이를 간 건, 근 20년 만의 일이었다.

바닷가에서 자란 탓에 어릴 때부터 제법 수영 경험은 있지만, 그러다보니 물놀이는 바닷가에서나 하는 거라 생각했다. 실내수영장은 운동 목적의 수영을 하는 곳이라 여겼다. 그렇다고 바닷가에 자주 간 것도 아니다. ‘휴양’보다는 ‘여행’이 좋다며 10년 넘게 물가에 가지 않고, 나는 휴가에 여행을 다녔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또 생기자, 이젠 내 입맛에 맞는 휴가를 고집할 수 없었다. 아내는 휴양지를 좋아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바닥 분수만 보아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온가족의 요구를 다 뿌리치고, 역사문화의 고향을 찾아 박물관 다니고 책 읽고 사람들 사귀고 다닐 자신, 나는 없다. 그냥 올 휴가엔 워터파크 휴가에 동의했다. 기꺼이.

새삼 부끄러운 게 있었다. 워터파크에 막상 입장하기 직전, 그제야 문득 아들 둘의 아빠인 고등학교 선배가 지난 겨울 어느날 술잔을 기울이다 한 말이 떠올랐다. “애들 둘 데리고 물놀이 가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운동을 해야 해.”

아차! 수영복은 반바지였지! 어머 옆구리, 어머 배, 어머 흐물흐물 팔뚝, 어머 늘어진 가슴, 어머 처진 엉덩이, 어머어머 어떡해! 이걸 어디다 내놓고 다녀!

20대 초에는 대략이나마 ‘구획정리’가 됐던 내 몸은, 군 시절 어깨와 무릎을 다치고, 회사 헬스장에서 무리하다 어깨를 또 다치고, 노래방에서 춤추며 뛰어놀다 무릎을 다시 다치는 시련을 거치며 몇 년 간 ‘운동하지 않는 몸’이 됐다. 운동을 그만두자 몸에 그려졌던 구획의 경계는 희미해졌고, 살집이 선을 지우더니 전반적으로 나잇살이 붙었다.

이를 어쩐다! 푹 기가 죽은 채 풀장에 들어갔다. 수영복 위에 검정 티셔츠를 입었다. 아내가 준비해준 ‘살가리개’였다. 주위를 돌아보니 면티셔츠를 입은 건 나뿐이었다. 어차피 애들만 놀아주면 된단 생각에 물먹은 면티셔츠에 끌려다니며 두 녀석 튜브를 밀어줬다.

그때 안전요원이 다가왔다. “면티셔츠는 입으시면 안 됩니다.” “벗어요?” “네. 벗으셔야 돼요.” 아! 마음이 추워서였을까. 맨살에 닿는 물이, 공기가, 심지어 햇살도 으슬으슬 차가웠다. 몸도 착하고(!) 마음도 착하게 생긴 안전요원을 하나 붙잡고 물었다. “저기,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티셔츠를 좀….”

‘으슬으슬 몸도 안 좋고, 몸매도 안 좋아서요’라고 더 설명할 걸 그랬나 생각한 순간,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안전요원은 친절하게 “그냥 입고 계세요. 혹시 누가 물어보면 몸이 안 좋다고 하시고요”라고 했다. 아, 감사! 이 몹쓸 나쁜 몸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개미가 겨울을 나기 위해 봄·여름·가을에 열심히 일하듯, 아빠는 여름을 나기 위해 가을·겨울·봄을 열심히 운동해야 하는 건가. 당장 내일부터 다이어트 해야 하나.

그럭저럭 물놀이를 끝내고 집에 오는 길. 같이 물놀이를 갔던 같은 동네 아이엄마가 아내와 수다를 떨다가, “그 집 아빠는 운동하셨어요? 몸이 장난이 아니시던데”라고 했단다.

오잉? 이상하네. 검정 티셔츠 안에 아득한 옛날 구획정리의 흔적이 비쳤나? 이제라도 희망을 갖고 운동하면 되나?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3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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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 정치부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