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베르테르

늦은 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전화기에 찍힌 이름은 지난해 전학을 간 뒤로 소식이 끊긴 아이였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3년 가까이 매주 선정한 책 한 권씩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았던 아이였다. 학교 전교 회장 선거에 나가겠다며, 연설문을 들고 온 날. 도와 주실 거죠? 라고 당차게 말했던 아이. 방송 기자 시절 후배들 기사 원고 낭독을 도와주다가 주부가 되어보니 이제 아이들 연설문 연습을 도와주는 신세가 되었다 는 생각이 들었지만, 활짝 웃는 아이 얼굴을 보면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도와주어야지. 아이는 당시에 내 얼굴을 학교 방송반 카메라로 생각을 하겠다면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스스로 말하다가 어색할 때면 활짝 웃었던 아이. 반에서 1등은 내로라 했지만, 갑자기 커버린 키 때문인지 허리가 말썽이었다. 허리 교정 치료를 받는다면서도 연필을 놓지 않았었다. 그 아이가 왜 밤 12시가 넘어서 전화를 했을까. 그것도 연락이 끊긴 지 1년여 만에.

 

 “여보세요? OOO구나.”
 이름을 불렀지만 아이는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느끼는 울음 소리였다. 아무런 말없이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천천히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이라고 힘겹게 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저 아이의 슬픔이 무엇 때문인지 알 듯 했다.
 “많이 슬펐구나.”
 슬픔이라는 단어에 아이는 다시 눈물이 터져 버렸다.
모범생이던 그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 한 연예인을 무척 좋아라 했다. 내가 그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나의 사춘기 시절 영화 ‘라붐’을 본 뒤 프랑스 여배우 ‘소피마르소’ 사진을 책받침에 코팅을 하고 다니며 영화 배우를 흠모했던 것처럼, 그 아이의 책가방이며 다른 물건들엔 ‘샤이니’라는 남자 가수 그룹 사진이 가득했다. 그 그룹의 음악을 즐겨 들었고, 시험을 잘 보는 조건으로 콘서트 티켓을 부모님께 요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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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놀랐겠구나.”
 그 말에 아이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아내를 떠나 보낸 것처럼, 마치 그 아이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어버린 상실감을 느꼈다. 아내를 떠나 보내던 날을 상상하며 공감을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공감은 나의 경험과 나의 감정을 그 사람도 느끼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더 쉽게 된다. 비록 사춘기 소녀이지만, 비록 상실의 상대가 가족이 아닌 연예인이겠지만, 내가 아닌 그 아이가 되어 보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슬픈 의미를 하나씩 털어놓았다. 자신은 몹시 슬프다는 사실과, 하지만 내 슬픔을 알아주는 이가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 지금은 기말고사 기간이고, 가족들에겐 한 연예인의 죽음보다 아이의 기말고사 성적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저는 정말 슬픈데요, 어른들은 신경을 쓰지 말라고요 해요..”
그 아이는 지독한 슬픔과, 동시에 그 슬픔을 알아주는 이가 없는 외로움을 동시에 경험했다.

눈물은 하나의 신호였다. 자신이 몹시 슬프다는 신호. 그래서 나를 위로해 달라는 마지막 신호가 눈물일 수가 있다. 눈물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조용히 큰 소리를 친다. 저는 슬퍼요. 저 좀 그 슬픔에서 구해주세요. 저는 그 슬픔을 인정받고 싶어요, 라고 말이다. 그런 슬픔에 빠져있을 때 그 슬픔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뜨거운 사막 위를 홀로 걸어가는 사람처럼 고통의 무게는 더 커진 채 외로움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성적을 잘 받은 뒤 기분 좋게 콘서트 장을 가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괜찮은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 그건 사춘기 소녀들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내 과거의 단점마저 들키기 싫어하는 것처럼 십대에게 연예인은 상상 속이지만, 자신이 무척 사랑하는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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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요.”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 게 당연하겠구나. 선생님도 그 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까.”
 “제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시험이고 뭐고 전부 다 그냥 놓아버리고 싶어요.”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아이와 함께 심리상담을 받았을 때, 배웠던 건 슬픔은 억누르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언어든 눈물이든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지 않으면 나의 내면과 나의 육체를 얼마큼 해롭게 하는지에 대해 지난 2년하고 6개월 동안 배웠다. 지금 마음 상태를 묻는 말에 아이는 허전하다는 말과 우울하다고 했다.
 한 연예인의 죽음은 그저 한 사람의 죽음 이상을 의미했다. 죽음을 생생하게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시간을 경험하는 시간. 슬퍼할 때에는 눈물을 닦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눈물을 흘러줄 때 상대는 슬픔에서 벗어난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섰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머리가 아프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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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어젯밤에 잃었습니다.”
 어머니께 몇 가지 당부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으면서 언론에서 시청률이나 클릭 수를 위해 한 연예인의 죽음을 가급적 다루지 않기를 소망했다. ‘베르테르’ 효과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과 연관된 사안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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