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은 집안일을 했을까?...권력자와 가정주부

눈을 뜨자마자 침대 속에서 휴대폰을 켰다.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아침부터 또 시작이구나. 하룻밤이 지났지만 뉴스는 비슷했다.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뉴스가 아니라 어린 시절 보았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랄까. 뉴스를 읽지만 ‘동물의 왕국’처럼 보인다. 어떻게 받아들여나 하나. 인간도 동물의 일부이니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한다. 기분이 언짢은 건 동성에서 오는 혐오일 수도 있겠다. 같은 남자로서 오는 불편함. 유망한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조민기과 조재현(그들이 교수였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나와는 다른 언어색깔을 지녔지만 그래서인지(?) 인기에 힘입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겠다는 정봉주까지. 모두 대한민국 남성이다. 이내 휴대폰을 접고, 침대서 나와 커튼을 열어 제쳤다. 그나마 아침에 위로는 봄의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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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남성의 문제일까? 성욕이 문제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모든 남성들이 그러지는 않으니까, 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아닌가? 일부만 드러난 걸까? 라는 의심도 든다. 적어도 하나.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지도는 아직도 남성들의 손 끝에서 그려진다는 점이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남.성.적폐적이다.
권력. 사전에선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라고 정의했다. ‘복종’과 ‘지배’. 두 단어가 눈에 띄었다. 권력의 속성은 그런가 보다.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 세상 사람들이 내 뜻대로 움직인다면 어떤 느낌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나에게 큰 매력이 없다. 절대자가 된 듯한 착각이 주는 쾌감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는 개인의 취향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힘’ 앞에 수식어 하나가 붙었다. ‘공인되어야 한다’는 조건.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사용했다면, 그 순간 그 권력은 가해이고, 권력자는 피의자라고 수식어가 바뀐다. 가해와 권력을 구분짓지 못하면, 피의자 얼굴 위로 쓴 권력의 가면만 볼 테다. 
 
흐린 아침 날씨에 마음까지 우중충하지만, 아침에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일어나자마자 항상 하는 소리.
“아빠, 몇 시야?”
아이는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시간을 묻는다. 습관적으로 내가 휴대폰 뉴스를 읽는 것처럼.
“7시 50분.”
“그래?”
그럼,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일어나야겠네.”
생각의 속도와 말의 속도가 일치하는 아들. 일어나야겠다는 생각까지 말로 바꾸는 터라 아침부터 아이의 입은 쉬지 않았다. 쟤도 남자인가? 아이가 크지 않고 어린이로만 머물면 어떨까. 그 생각을 하다가 그러면 안 될 듯싶다. 아침부터 시작하는 집안일은 끝나지 않을 테니까. 이제 곧 아이는 침대에서 나와 상사처럼 내게 말을 걸 테니까.
 “아빠, 밥.”
 기자 시절, 사람들은 많은 이들이 내 호칭 끝에 ‘님’자를 붙였다.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 위든, 아니면 열 살이 위든 상관없이 ‘님’자는 나와 상대의 관계를 알려줬다. 마음에 있건 없건 간에, 표정이 있건 없건 간에, 사회 생활은 끊임없이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를 보여주었다. 회사 안에서는 내 책상의 위치가, 내 명함에 새겨진 직위가, 내가 쓴 기획물이 누구에게 전달하고 누구로부터 전달받는지에 따라 달랐다. 일상의 권력이 작동을 했지만, 아이는 그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아.빠. 
 “아빠 내가 무슨 죄수야? 반찬이 하나게?”
 이제 막 반찬을 꺼내는데… 어이가 없었다. 너처럼 당당한 죄수가 있을까?
 “지금 반찬 꺼내거든!”
 하나 둘 셋, 넷. 반찬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아침이라 밥맛도 없겠지,란 생각에 아이가 좋아하는 김도 옆에 두었다. 아이는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고, 나는 일어 선 채로 아이 앞에 하나씩 음식을 가져다 놓았다. 식당으로 치면 웨이터였고, 전근대적 가정이었다면 집사 정도는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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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밥을 먹고 난 아이는 양치를 끝내고 다시 나를 불렀다.
 “아빠, 가자.”
 학교가 다소 거리가 있어 아이를 차로 데려다 줘야 한다. 학교로 가는 잠깐의 시간. 학교 생활이 궁금했다.
 “민호야, 학교 친구들은 어때?”
 대답은 뒷좌석에서 들려왔다.
 “대부분 잘 모르는 애들이야.”
 다시 궁금해 물었다.
 “그래서 분위기는 어떤데.”
 아빠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는 아이는 내게 대답해주었다.
 “분위기는 좋아.”
 아이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적지만, 자가용 뒷좌석에 앉은 아이의 생활이 자주 궁금했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왔다.

이젠 식탁 위에 놓인 그릇들이 말없이 나에게 말을 건다. 저 좀 치워주세요.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설거지 통에 넣고, 식탁 위에 떨어진 반찬을 행주로 닦아냈다. 아이는 커야 한다. 제대로 된 남자로. 아니면 이 일은 끝나지 않을 테니까. 설거지를 하기 위해 물을 틀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물소리가 그렇게 싫지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더 이상 ‘기자님’ 또는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가정에서 내 모습은 그냥 아이와 아빠의 관계만 있을 뿐이니까. 아내를 여읜 뒤 가정주부 7년 차 대한민국 남자. 권력은 없지만 관계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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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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