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방학숙제

 방학이다. 아이는 하루종일 아빠를 불러 댔다. 사랑하는 아빠라기보다는 밥을 해주고 청소를 해주고 중간중간 심심하지 않게 해 주어야 하는 아빠는 아침부터 주방으로 향했다. 민호는 거실 소파 위에 아무런 말없이 앉아 있었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기 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민호야 뭐 먹을래?”
 민호에게 말하면서도 참 나도 극성이다 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날 먹고 싶은 메뉴를 아이에게 물어보면서 밥을 차렸으니 이런 걸 두고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할 것 같았다.
 “아빠, 짬짜면 알지?”
 짬짜면? 짬뽕과 짜장면?
 “스파게티를 그렇게 해줘.”
 짬짜면과 스파게티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하나는 빨간색으로 다른 하나는 흰색으로”
 그러니까 그릇 하나에 짬뽕과 짜장면이 담겨 있는 것처럼 아이는 그릇 하나에 토마토 스파게티와 크림 스파게티를 같이 먹고 싶어 했다. 그냥 스파게티 하나도 아니고 두 종류의 스파게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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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틀었다. 음악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니까. 스파게티를 토마토와 크림 스파게티 두 개로 나눴다. 사진도 찍었다. 아이를 위해 회사도 그만두고 주방에서 토마토와 크림 스파게티를 해주는 아빠라고 생각하며 내가 나를 괜찮은 아빠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이번 여름 방학을 견딜 수가 없다.


 그래 나는 꽤 괜찮은 아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밥을 차렸다. 이왕 하는 거 잘하자 란 마음으로 예쁜 그릇에 담았다. 사진도 찍었다.
아빠의 방학숙제2.jpg 나중에 민호에게 그래도 너를 위해 이랬다 라고 말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어쩌면 하루하루 일상을 기록하는 건 마음 한 편에 언젠가 아이에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때문일 게다.

 아이가 맛있게 먹는 사진도 담을 계획이었다. 토마토 스파게티와 크림 스파게티를 함께 한 특별한 날이니까. 아이가 입을 벌려 음식을 넣은 뒤 오물거리며 면을 삼키는 상상을 했다. 상대의 행복이 나 때문이라고 상상을 하면 행복했다. 남을 도울 때의 행복은 내가 그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된다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민호야 밥 먹자.” 

 아이는 차려놓은 식탁은 쳐다보지 않고 책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명령하지마!”
 민호야, 먹자 라고 하는 건 명령형이 아니라 청유형이거든? 그러니까 요청을 한 거지. 명령은 아빠가 아니라 너가 하는 거야.
 “아빠한테는 존댓말을 써야지.”
 “명령하지마…요!”
 
사실 밥 먹자 라고 말을 했지만 목소리 안에는 밥을 먹어라 라는 명령의 느낌이 가득했다. 아까는 먹고 싶다고 해서 기껏 밥을 차렸건만 소파에 엎드려 책을 보는 네가 순간 얄미웠다. 명령한 거 인정.
 “민호야, 밥 치운다.”
 아이가 식탁으로 왔다.
 “아빠, 이걸 다 먹어?”
 이걸 다라니?
 “두 개 다 해달라며?”
 민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그랬던가 하는 표정이었다. 아 그랬구나 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자리에 앉았다. 아이가 두 종류의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고 한 건 사소한 바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양.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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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이건 양념이 잘 안 밴 것 같아.”
아이는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영혼이 참 맑다 못해 투명했다. 이번엔 크림 스파게티를 먹었다.
 “아빠, 이건 느끼해.”
 그러니까 난 아이를 위해 양념이 안 밴 토마토 스파게티와 느끼한 스파게티를 만든 셈이었다. 슬쩍 아빠를 쳐다봤다. 슬쩍 쳐다 볼만큼의 양심은 있었나 보다.
 “아빠, 나 그냥 밥 먹을래.”
 가슴 밑바닥에서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부글거리는 소리는 없었지만 가슴 아래에서 시작한 ‘욱’이라는 감정은 가슴 위로 올라가더니 팔 전체로 퍼져나갔다.
 “반찬 없으니까 그냥 먹어.”
 나도 노력할 거라고. 어떻게 살림을 잘 할 수 있느냐는 말을 그냥 먹으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 말을 듣고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열린 냉장고 속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빠, 이건 뭐야?”
 아이는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힘주었다.
 “아빠, 이건 반찬이 아니고 뭐야?”
 그러니까 반찬이 없지 않다고 아이는 그렇게 아빠에게 가르쳐 주었다. 민호는 할머니가 놓고 가신 음식 하나하나를 살펴봤다. 반찬이 없다고 말한 아빠는 거짓말을 했거나 그게 아니면 현실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어머니께서 놓고 가신 새 김치와 육개장을 민호는 맛있게 먹었다. 민호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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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했다.

아이는 아빠를 놀리려는 마음보단 음식을 먹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민호는 자신을 표현하는데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되었다. 배려심과 거짓말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풀어야 할 아빠의 방학 숙제였다.

 

 아침에 따뜻한 국물을 주면 좋아할 것 같았던 어느 날, 냄비 안에 멸치를 넣고 육수를 내던 날이었다. 민호는 뷔페에 가면 국수부터 찾을 만큼 면을 좋아했다.  멸치와 다시마 무를 넣고 끓였다. 뽀얀 국물은 분명 조미료와 다른 맛이었다. 살짝 면을 삶고 찬물에 헹궜다. 그날 민호에게 아침 메뉴를 알리니 아이는 와~ 소리를 냈다. 아이에게 국수를 전해주기 전 김치를 볶아 고명을 만들어 얹었다. 국수가 아이 입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설렜다. 설렘이란 감정은 연인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든 사람도 느낀다.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거라는 상상을 할 때 기분좋게 설렜다.
 
“민호야, 맛이 어때?”
 민호가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잠시 내 눈을 쳐다봤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빠, 잠깐 일로 와 봐.”
 “민호야 왜?”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식탁 가까이 갔다.
 “아빠, 한 번 먹어봐.”
 “??? ???.”
 “아빠, 어때? 솔직히 말해봐.”
 “??? ???.”
 “아빠, 맛이 어때? 맛있어?”
 “??? ???.”
 
아빠는 말이 없었고, 민호는 국수를 잘 먹겠다는 말 대신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민호는 참 논리적이었다. 떼를 쓰는 일도 드물었다. 주장을 그냥 하는 일도 드물었다. 근거를 들며 말을 했다. 민호는 논리적으로 국수가 맛이 없다고 했다. 아빠에게 국수 맛을 확인시켜 주며 자신의 근거를 댔다. 다시 어머니로부터 받은 반찬을 꺼냈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아빠도 많은 방학 숙제를 해야 한다. 음식도 더 잘해야 할 것 같다. 배려심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다 잘 할 수 없는 나를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아빠는 신이 아니니까. 부족한 한 명의 인간이니까. 내가 가끔 부족한 살림실력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가 아닌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못해도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아마도 방학 내내 난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 것만 같았다.
그냥 방학 때 아이와 재미있게 놀며 즐거운 추억을 쌓기로 했다.

 

목표가 크면 항상 나는 부족하고, 부족한 나라는 인식은 끊임없이 좌절감을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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