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어릴 적에

아침부터 알람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빰빠라바밤. 알람 소리를 골라도 꼭 자기 같은 걸 고른다. 아침부터 트럼펫 소리라니. 아이는 알람을 맞춰 놓는다고 했지 어떤 소리를 고르는지를 알려주진 않았다. 아빠, 나 알람 열 개 넘게 골랐다, 라는 말과 함께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기르겠다고 했다. 좋은 습관을 기르겠다니 그러라고 했다. 기특한 생각이니까. 다만 알람 열 개를 맞춘다는 말을 흘려들었던 건 내 잘못이었다.

알람 소리가 일정 간격을 두고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읽었던 ‘브레멘 음악대’가 침실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의 소리랄까. 늙고 버림받았지만 음악 대원이 되겠다는 꿈을 지닌 동물들. 그 동물들이 이른 아침부터 방문을 열고 들어와 마음껏 트럼펫을 불어재치는 그런 알람소리였다.
“민호야, 알람 울리잖아..”
아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민호야, 알람 울리잖아..”
아이는 눈을 감은 채 빙그레 웃었다. 즐거운 꿈을 꾸나 보다. 웃으며 잠자는 아이 얼굴을 보면 짜증이 나다가도 가라앉았다. 손을 닿을 수도 없는 곳에 있는 알람 벨. 그냥 베개를 꾹 얼굴위로 눌렀다. 알람은 아이 말대로 한 시간 쯤 울렸다. 전날 밤엔 그렇게 울더니만, 아침엔 거센 알람 소리에도 웃는 걸 보니 아직 아이는 아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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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전날 밤에도 아이는 묻는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늘도 숙제 다 안 했어?”
 벌써 며칠 째인지. 아침마다 물었다.
 “오늘 계획은 짰어?”
 “응.”
 “무리하지말고 할 수 있을 만큼만 짜.”
 “당연하지.”
 그래놓고는 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학교에 다녀와서 지금까지 소파를 껴안고 있었으니까. 때로는 방바닥과 함께.
  “너도 너 마음대로 하니까, 아빠도 아빠 마음대로 할 게.”
 라는 말과 함께 현관문을 닫았다. 화가 나서 문을 닫으면 문도 쾅 소리를 내지른다. 숙제 검사한다고 운동도 안 나갔는데. 그 생각을 하면 화가 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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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윗몸 일으키기 한 번에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너무 했나?
 몸이 긴장되지 않고, 마음이 긴장됐다. 몇번이나 몸을 움직였을까. 이내 헬스장을 빠져 나왔다. 샤워도 하지 않은 채.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걸음 몇 번만에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밝은 소리를 내질렀다. 짜. 잔. 그러면서 속으로 말했다. 아.빠.왔.다. 비록 화를 내긴 했지만. 미안해 라는 말을 ‘짜잔’이란 말로 대신했다. 숨바꼭질을 할 때처럼 아이는 깜짝 놀라거나 그래도 반가운 얼굴을 보일 거라고 기대하면서.

 

 아이는 금세 고개를 돌렸다. 놀랐겠지. 현관문을 열고 네 방까지 단 2,3초뿐이 걸리지 않았을 테니. 아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게 아빠의 스피드야. 그런데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눈물이 찔금거렸다. 뭐지? 잠깐 보인 눈물은 이내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크게 벌린 입.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듯한 울음 소리.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혼자 있느라 무서웠나? 열한 살짜리 아이가 아빠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랄 만큼 적은 나이는 아니었으니까.
 “민호야, 무서웠어?”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울어?”
 아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소리 내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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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아이는 눈물을 닦아 내던 손을 슬그머니 책상 위로 올렸다. 펼쳐진 문제집 하나를 덮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공부하는 습관을 잡아주자고 시작한 자기주도학습 프로젝트. 아이가 하루에 해야 할 숙제의 양을 생각해 봤다. 적지 않은 양이었다. 공부는 불안 마케팅의 결과이고 동기 부여를 통한 학습이 가장 좋다고 하건만. 그래도 난 부모로서 여전히 불안하고 동기의 힘보다 습관의 힘을 믿었다.
그래서 시작된 아침 식사 시간 잔소리. 오늘 계획 짰니? 라는 질문에 또박또박 그럼 이라는 대답. 진짜? 라고 물으면 날 의심하는 거냐 는 아이의 반박. 아이는 의심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한 달동안 나를 쏘아붙였고, 아이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한 달 동안 보여주었다.

‘습관의 재발견’을 쓴 스티븐 기즈가 그랬다. 우리의 뇌가 가장 싫어하는 게 ‘변화’라고. 이제 열한 살짜리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실행을 한다는 건 사실 어렵고도 어려운 일일 테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고, 엄격함도 필요하다 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아이가 운다. 잠자는 시간을 앞에 두고. 우는 모습에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이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렇다고 숙제를 다 안 했다고, 이렇게 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평소 아이 성격대로라면 숙제를 줄여달라고 말하고도 남았을 아이인데.
 “오늘 숙제 다 못해서 그런 거야?”
 아이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두드렸다. 톡톡. 뭔가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입은 놔두고 뭐하는 건지. 어리둥절한 채로 가만히 쳐다보는 나에게 말 대신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톡톡. 아이는 펼쳐놓았다가 덮은 문제집을 가리켰다. 아이 얼굴과 문제집을 번갈아 봤다. 그러다 아이가 가리키는 문제집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이가 덮은 건 문제집이 아니었다.
 “왜 오늘은 이렇게 빨리 오는 거야?”
 

정말 이 아이의 자존감은 어디까지일까? 정답지를 베껴놓고는 큰 소리다. 울면서도 상대를 공격하는 저 당당함. 순간 들었던 미안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항상 말로는 걱정마라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더니만 이제는 답지를 베끼는구나. 보통 운동을 하러나가면 1시간 정도 있다 온다는 걸 아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리 하라고 했잖아.”
 전세 역전.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아빠는 어릴 적에 이렇게 공부했어?”
 아니. 인정. 아, 밀리면 안 되는데. 아이 질문에 순간 말이 막혔다. 물론 너만할 때에는 너처럼 영어학원도 안 다녔고 수학을 미리 예습하지도 않았지. 말을 머뭇거리자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묻는다.
 “그럼, 아빠는 어릴 적에 이렇게 공부했느냐고!”
 반박의 말을 찾으려는데, 순간 아이가 다가와 안겼다. 두 팔로 내 목을 두르고 얼굴을 가슴에 묻었다. 적절한 타이밍. 아이는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내게 안겼다. 유윈.  

그 날부터 아이는 내 잔소리 끝에 질문 하나를 덧 붙였다. 아빠는 어릴 적에. 그럼에도 매일 아이와 씨름을 하는자기주도학습 프로젝트. 문득 아이는 요즈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아이 일기장을 열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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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강민호 군 일기)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첫째 작은 복수를 한다. 예를 들어 아빠가 날 짜증나게 했다. 그러면 알람을 크게 해서 잠을 못 자게 한다. 두 번째는 그 나쁜 일을 뒤담화까기이다. 하지만 이건 걸리면 엄청 욕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건 한 적이 없다.

 

빰빠라바밤. 오늘 아침에도 요란한 알람이 울렸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민호야, 알람 울린다.”
아이는 미소를 짓는다.
“민호야, 아빠 화낸다.”
그러면 아이는 한참 있다가 일어나 자기가 알람을 끊다.

한참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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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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