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났습니다.

  가끔씩, 아이가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 아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유년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반 친구 아이 한 명은 평소에 닭 울음소리를 자주 낸다면서, 민호는 저녁 밥을 먹다가 일어나더니 갑자기 닭 울음 소리를 냈다. 닭이 모이를 먹다가 울지는 않을 텐데, 아이는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 소리를 질렀다. 꼬.꼬.닭.꼬.꼬.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야기에 몰입한다고 칭찬하기엔 튀는 밥알이 먼저 눈에 띄었다. 밥알이 어디로 튀어가거나 말거나, 아이는 다시 자리에 앉아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반 에서 여자아이들이 자주 자기를 귀찮게 해서 참고 있다는 이야기. 관심 있어서 그런 걸 거야, 긍정적으로 해석을 해 주니, 그게 그런 거냐면서 아이는 좋아했다. 단순하긴. 반에서 떠드는 친구들 이름을 적어야 해서 앞으로는 회장이 되기가 싫다는 이야기까지, 저녁 식사 시간은 가끔 아이 학교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아주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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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이가 밥을 먹다가 이번엔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빠, 학교 선생님이 나만 뭐라고 해.”
 선생님한테 혼났나?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러면서 아이 이야기에 공감하자고 다짐을 했다. 심리 상담가 모드로 전환요청 중. 그렇게 다짐을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판단하고 다그칠 테니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참 많은 판단을 내리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이다. 공감을 가로막는 나의 판단. 아이가 고민을 이야기하는데 내 기준에서 판단을 하면, 아이는 괜한 소리했다며 앞으론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하지 않을 테다.
심리상담을 하면서 배운 건 아이가 나에게 예쁜 이야기를 해 주는 건 그렇게 깊은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속상한 이야기나 화난 이야기, 때로는 불쾌했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아이는 나를 더 신뢰한다는 걸 의미했다. 친한 사람과 술자리에서 언제 상사 칭찬을 한 적이 있었던가? 명절이 끝나고 난 뒤 카페에 모인 엄마들 이야깃거리는 대부분 씹는 이야기 아니던가? 질겅질겅. 사이가 좋을수록 대화 주제는 부정적이다. 그만큼 부정적인 이야기는 상대를 믿을 때 드러낸다.


“무슨 일인데?”
“내가 조금만 떠들어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셔.”
그럴 리가. 많이 떠들었겠지. 요즈음 수업 태도가 나쁜가? 시작하자 마자 난 아이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떠들어도 지적을 당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지. 그런데 선생님이 왜 민호가 조금만 떠들어도 지적을 하셨을까?”
아무리 상담가 모드로 전환을 해도 안 되는 게 있다. 그게 내 아이일 때에는. 공감해 주자고 다짐했건만 어느새 난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전에 내가 궁금할 걸 물었다.
“왜냐하면 내가 한동안 수업시간에 많이 떠들었거든.”
학기 초에 많이 떠든 탓에 지금은 조금만 떠들어도 지적을 당한다는 게 민호의 설명이었다. 정말? 민호야, 그건 너의 해석이 아닐까? 다시 내린 판단. 상상 속에서 민호는 수업을 듣지 않은 채 옆 친구와 자유롭게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수업 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살짝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조용해야지.”
“수업 시간에 떠들면 먼저 누구한테 피해를 주지?”
“선생님한테.”
“또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글쎄?”
“교실에는 선생님 말고 또 누가 있어?”
“친구들.”
“그런데 너가 수업시간에 떠들면 친구들에겐 어떤 피해를 줄까?”
“집중을 못하겠지.”
질문을 하는 건 민호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는 게 의도였지만 사실 난 이미 화가 조금씩 나고 있었다. 믿었는데. 수업 시간에 떠들다가 선생님에게 이름을 자주 불리다니. 학교 생활에 내가 너무 무심했나? 오히려 아이와 학교를 신뢰를 한 게 아니라 무관심 한 게 아닌가? 마음속 ‘검열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떠들었어?”
“그게 잘 안돼.”
“뭐가 잘 안 된다는 거야?”
“떠는 걸 참는 게 잘 안돼. 습관이 되었나봐.”
더 이상 아빠와 아이의 관계는 아니었다. 아빠는 기자였고, 아이는 큰 잘못을 저지른 취재의 대상이었다.
“무슨 습관?”
“떠드는 습관.”
민호는 습관을 탓했다. 재능이나 습관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재능이란 말 속에, 또는 오랫동안 몸에 새겨진 습관이라는 이유 속에는 ‘난 어쩔 수 없었어’라는 생각이 숨어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니까. 자신이 선택한 잘못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같은 잘못은 반복된다. 그건 습관 때문이 아니라 네가 선택한 거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화’의 감정은 점점 커져갔다. 다시 물었다.
“수업 시간에 조용히 해야 하는 건 약속이지?”
“응.”
“그런데 약속 대신 민호는 뭐를 선택한 거지?”
“떠드는 거.”
질문을 몰아치는 데에도 아이는 끄떡없이 꼬박꼬박 대답을 잘 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그 질문에 대답은 바로 이겁니다 하는 것처럼. 아, 화가 더 난다. 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하니?
“떠드는 건 너가 하고 싶은 거였지?”
“그렇지.”
“그럼 민호는 뭐를 선택한 거지?”
“음…”
민호는 생각을 할 때면 두 눈동자가 위로 향했다.
“약속 대신 하고 싶은 걸 선택한 거지.”
약속 대신 '하고 싶은 걸 선택했다' 고 했다. 갑자기 목소리가 커졌다.
“아빠가 갑자기 지금 너를 때리고 싶다고 해서 때리면 돼?”
“그럼 난 경찰에 신고할거야.”
아이도 목소리가 커졌다. 아…열 받아…이즈음이면 잘못했다면서 잘못을 빌어야 하는 거 아닌가,아니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어요 라면서 잘못을 뉘우쳐야 하는 거 아닌가? 저 아이의 자존감은 전혀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갑자기 지금 너를 때리고 싶다고 해서 때리면 돼?”
“안 되지.”
“왜 안돼?”
“그건 나에게 피해를 주는 거니까.”
“민호도 피해를 주었잖아.”
“뭐? 무슨 말이야?”
“아빠가 하고 싶은 행동을 마음대로 하면 너가 피해를 입는 것처럼 너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었잖아.”
이야기의 마지막 즈음엔 난 내가 아이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쭉 열거했다.
“아빠가 밥을 차려 주기 싫어서 너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면 어떨 것 같아?”
“안 되지.”
“너가 잠을 들기 전에 술을 먹고 싶어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논다면 좋아?”
“아니.”
“너가 학교 생활을 하든 말든 아빠가 여행을 가고 싶어서 별 말없이 여행을 간다면? 이렇게 아빠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건 할아버지나 삼촌하고 있으면 되는데”
저걸 대답이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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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픽사베이)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니 어느덧 화가 조금씩 누그러져 갔다. 뭐가 풀려가는 느낌이랄까? 왜 그런 느낌이 들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민호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 행동이란 말 가운데에 ‘하고 싶은 대로’란 말에 화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끔은 아빠도 하고 싶은 대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싶은데, 넌 학교에 다니면서 그것도 모자라 수업시간에 떠드냐는 분노.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이가 학교에서 떠들어서 화가 났기 보다는 아빠인 난 집안에 꽁꽁 묶인 채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아이는 학교 수업 시간에서조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다고 하니 억울하고 분했다. 민호야, 아빠도 하고 싶은 게 많거든. 그 답답함이 만들어 낸 분노.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면 그 감정은 점점 줄어든다.
 대학원을 다니며 기말 과제를 마치고 이제 곧 쉬려고 하는데, 이제는 아이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방학이 주는 무게가 무거웠나 보다. 놀고 싶었구나. 내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쉬고 싶다는 말보다는 요즈음은 놀고 싶었다. 그래서 화가 났구나.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저녁 시간에는 집안에 꽁꽁 묶이고 주말과 휴일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꽁꽁 묶이고.

 

상담 수련을 받을 때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감정은 다 나름대로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감정에 입이 있다고 상상을 해 보세요. 그 감정은 뭐라고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으세요?”
 감정에는 모두 다른 목소리가 담겨 있다.


 내 분노에 물었다. 너의 목소리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고. 분노의 목소리가 대답을 했다. 편안하게 쉬기보다는 즐겁게 놀고 싶다, 는 목소리. 아이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를 잠시 주변에 맡겨두고 실컷 놀아봐야겠다. 상수동 거리도 걸어보고, 야외 테라스에서 늦은 밤까지 술에도 취해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니 아이에게 내던 ‘화’는 다 풀려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에게 물었다.
“민호야, 넌 도대체 뭔데 그렇게 당당하니?”
아이가 바로 대답했다.
“난, 지금 말하는 사람의 아들이거든.”
민호는 끝까지 한 마디도 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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