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인 나와, 나와 닮은 다른 부모들께

심리상담을 하며 다시 바라본 대상은 바로 말이었다. 말은 관점을 담고 태도를 담는다. 말 안에는 감정도 있었고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담겨 있었다. 어떤 말을 하느냐는 내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려주었다. 놀랍게도 말은 듣는 이를 주저 앉히기도 하고 일으켜세우기도 했다. 
 
월요일마다 심리 상담 실습을 하는 시간, 그 시간은 말이 귀를 통해 가슴에 들어와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실습 시간엔 고민의 말을 하는 사람의 역할과 고민의 말을 들어주는 상담가 역할을 나눠서 진행하는데 이번 주에 난 고민을 말하는 역할을 맡았다.
 “가끔씩은 아이가 저의 노고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부모도 인간이니까요.”
 부모에게 요구의 말로 가득찬 대화가 가끔씩은 섭섭하다고 털어놓았다. 봄에 비가 내리듯 가끔씩 들을 수 있는 “아빠, 고마워”라는 말이 그립다는 생각을 끄집어 냈다. 매일 아이에게서 감사의 말이나 고맙다는 말이 듣고 싶다고 고백했다. 고민의 말을 듣던 상담가가 대답했다.
 “아빠가 아이를 위해 많은 노고를 하시는가보군요. 아이에게 많은 신경을 쓰시는 아빠로 느껴집니다.”
상담가를 향해 나아간 불만의 말은 위로의 말로 되돌아 왔다. 아이를 위해 많은 신경을 쓰는 아빠. 그 어떤 부모보다 아이를 잘 양육하는 아빠라며 내 고민을 다르게 해석했다. 세월은 흐르고 그 지나간 시간이 내 목소리에까지도 변하게 했지만, 인정이나 이해를 받는 말은 아빠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그렇게 좋은 아빠로 바라봐 주는 그 말이 고마웠다.
말은 현실을 재구성한다. 난 그대로 있었는데, 불만 많은 아빠의 모습이 열정 가득한 아빠로 바꾼 건 상담가의 말이었다. 나는 그대로 있는데 나를 이해하는 말은 나의 생각을 바꾸고 내가 바라보는 나를 바꾸고 나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가족 상담 이론 책에서 이를 가리켜 <언어의 현실 재구성>이라고 했다. 말과 생각, 말과 감정이란 단어가 머리를 맴도는 사이 심리학 책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민호만한 9살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생일 선물로 야구 글로브 세트를 받았다.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한 아이는 글로브와 공을 마루 한 가운데에 놓았다. 거실을 지나다닐 때 마다 글로브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기뻤다. 글로브를 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자신이 무척 멋지게 느껴졌다. 야구 선수가 될 거라는 꿈도 꾸었다. 운동장에 나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야구장에서 시합이 잡힌 날.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쓴 9살 아이는 빛나는 글로브를 감싸 안았다.
 아이는 외야수를 맡았다. 뜬 공을 멋지게 잡는 상상을 하며 외야에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공이 오지 않아 심심했던 찰나 ‘땅’ 소리와 함께 하얀 공이 하늘로 치솟았다. 아이는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기회였다. 하지만 공은 아이 키를 훌쩍 넘겨 팬스 가까이에 떨어졌다. 아이는 당황했지만 떨어진 공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공을 잡고 뒤를 돌았을 때 모든 주자는 달려 홈을 밟았다.
 멀리서 ‘나쁜 코치’가 소리쳤다. “넌 도대체 뭐하는 아이야!” 아이는 헐레벌떡 공을 들고 코치 앞으로 달려갔다. 코치가 말했다. “재능이 없는 녀석.” 아이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가 한 결과를 봐, 이게 뭐야!”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너가 그러면 그렇지.” 아이는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비난을 들은 아이는 집에 돌아와 선물로 받은 야구 글로브 세트를 자기방 한 구석에 치워 놓았다.
 아이가 안쓰러워 팀을 바꿨다. 아이는 두 번째 운동장을 나간 날도 공을 놓쳤다. 하지만 코치의 반응은 달랐다. ‘좋은 코치’는 아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번에 야구가 처음이지? 처음에는 다 그럴 수 있단다. 누구나 실수를 통해서 배우지. 실수 없이 배울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메이저리거나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도 모두 처음부터 뜬 공을 잡지 못했어. 앞으로도 계속 실수를 할 거란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마렴. 실수를 하는 시간은 실패하는 시간이 아니라 공을 잡기 위해 배우는 시간이니까.”

 

심리학자 마이클 오토가 쓴 <10분 CBT>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9살 민호를 떠올리며 재구성한 내용이다. 이 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평소에 내가 나에게 하는 평가 때문이었다. 실수를 했거나 실망스러운 결과가 있었거나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나는 나에게 어떤 평가를 내렸던가.

혹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나에게 ‘나쁜 코치’처럼 비난을 한 적은 없었는지 따져봤다. 내가 차려준 음식을 아이가 맛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에, 심리학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한다며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는 상황을 떠올릴 때, 15년 째 같은 차를 타고 있는 내 모습을 보였을 때 난 종종 ‘나쁜 코치’처럼 내가 나에게 말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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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코치의 말을 들었을 아이보다 좋은 코치 말을 들었던 아이가 실패를 딛고 일어서고 자신의 실패 속에서 배움의 길을 찾는 것처럼, 나를 일으켜 세우는 말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어’ 라든가 ‘음식을 제대로 못하다니’ 라든지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라는 자책의 말이 아니었다. 어려운 육아와 힘든 살림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하는 말은 좋은 코치의 말처럼 ‘처음 하는 육아니까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말과 ‘실수 없이 배울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내가 나를 향해 하는 말은 나를 마음 속에서 울게도 하고, 희망의 빛으로 마음을 밝게 변하게도 한다.

 내가 나에게 ‘나쁜 코치’처럼 말을 하면 나는 내 아이에게도, 내 동료에게도, 내 후배에게도, 내 연인이나 부부에게도 ‘나쁜 코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로 했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선 먼저 내가 나에게 ‘좋은 코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하는 나의 말을 매 순간 ‘좋은 코치’를 닮은 말인지 ‘나쁜 코치’를 닮은 말인지를 점검하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는 말은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사랑하는 말은 나의 아이와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한다. 말은 그렇게 현실을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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