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도 미안한 사랑…제천 희생자를 추모하며

하얀 천 위에 쓰인 문장 하나가 보였다. A4 종이 한 장에 글자 하나. 여. 보. 미. 안. 해. 모두 다섯 장의 종이에 한 자 한 자씩 적혀 있었다. 글자를 크게 적은 건 왜일까.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혼이 머물러 있다면 꼭 읽고 가라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멀리서라도 보라고 크게 적은 글자인지도 모르겠다.


다섯 글자 아래로는 여러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봤다. 결혼식을 하던 날, 함께 여행을 가서 찍은 날, 나란히 가족과 팔짱을 끼던 날. 유가족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 담긴 고인의 모습을 가져와 하얀 벽면에 붙여 놓았다. 이제는 그렇게 사진으로만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며칠 전만해도 매일 보던 얼굴인데 이젠 그 얼굴을 보려면 사진첩을 열어야만 한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가끔 그 현실은 도망가고 싶은 자신을 붙잡는다. 사진첩은 지금 놓인 현실을 그대로 비춰주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는 현실. 사진 한 장을 고르면서도 상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을 테다. 기억 속에 남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를 향해 웃어주고 같이 단풍 놀이를 가고, 팔짱을 껴 주었던 사람.


 그 사진들 아래엔 다시 커다란 글자로 ‘엄마 사랑해’란 단어가 걸려 있었다. 제천 화재 참사를 보도하는 여러 사진 가운데 유독 이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 사진은 사랑하는 이와 떠나는 순간, 남은 자는 어떤 말을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세 개의 문장.

 

여.보. 미.안.해.
엄.마. 사.랑.해.
그리고 할.머.니. 보.고.싶.어.요.

 

 매일 보던 얼굴인데 유가족들이 남긴 말은 유명인이 남긴 말도 아니었고, 책 속에 나오는 사색이 가득한 문장도 아니었다. 어떤 비유법도, 현란한 수사도 없었다. 철학의 깊이나 저명한 이론이 담긴 수식도 아니었다. 그냥 흔히 할 수 있는 말. 너무 흔하디 흔해서 평소에는 잘 표현하지 않았던 말.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보고 싶어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지만, 고생만 시켰던 것 같던 남편, 영원히 따뜻한 모습으로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하루 아침에 사라진 엄마, 언제나 미소 지을 것 같던 할머니. 유가족들은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말만큼은 기억하기를 바라며 마음을 표현했을테다. 정말 미안하고, 진심으로 사랑했고, 영원히 보고 싶을 거라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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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나이가 든 60대 남편은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는 아내를 자주 안아 주지 않은 탓이었을까. 아니면 자주 안아주었던 따뜻한 품이 그리워서일까. 아내의 관이 영구차에 실리자, 남편은 아내의 관을 끌어안았다. 마치 아내를 끌어안고 싶은 것처럼 그의 손은 아내의 관을 붙잡았다. 아무런 말이 없는 아내에게 그가 남긴 말은, 집에 가자, 였다. 눈을 떠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대화를 했던 공간. 당신이 있어야 할 공간은 검정 영구차 속이 아니라 예전부터 함께 있었던 곳이라는 말을 그렇게 짧은 문장으로 아내를 잡아 끌었다. 집에 가자. 거기 있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는 아내에게 무척 미안해 했다. 건물에서 혼자 빠져 나온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는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아내에게 죄를 짓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의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이가 들었더라도 고인이 태어날 때엔 그들을 지켜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고, 학창시절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웃음을 지었고, 결혼할 상대 앞에서 가슴이 떨렸고, 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를 낳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사람이었을 테다. 질곡의 한국 근대사를 버티고 견디며 삶을 이어왔고 그러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이 삶을 마친다는 건, 그 사람이 시간 사이에 켜켜이 쌓아둔 그의 과거와, 그 과거와 강하게 연결된 지금 여기서의 관계와, 나이를 떠나 각자가 품었던 미래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모습은 5년 전 나의 모습과 닮았다. 병원 치료를 잘 받고 있다던 아내는 얼굴을 마주한지 불과 4시간여만에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은 채 삶을 마감했던 그 날, 내가 나에게 했던 수 많은 후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만남의 끝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태어나 죽는다는 걸 아는 것과 한 삶의 탄생과 죽음을 가슴으로 느끼는 건, 사랑을 책으로 읽는 것과 경험하는 것만큼 달랐다. 삶이 아름다운 건 끝이 있다는 카프카의 말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삶의 끝에 서서 이별이 주는 고통을 가슴 깊이 경험해야만 했다. 죽음이 두려운 건 죽음이 가져오는 신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삶이 맺어놓은 관계가 모두 끊어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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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모두는 죽는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죽음을 부르는 질병은 찾아오고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두고
어느 날 갑자기, 일어서거나 길을 걷다가도 쓰러진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이 소중하게 다가온다.(암이 주는 축복은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끝을 정리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유족들에겐 힘을 내라는 말조차 혼자서도 건넬 수가 없었다. 힘을 낼 수 없을 테니까. 힘을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는 말은 폭력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 거라는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시간은 지나간 시간 속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종교에 관한 말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이에게, 신은 전지하지도 않거니와 전능하지도 않은 무지하며 무능력한 존재로만 여겨지니까.


다만 언젠가, 먼 훗날, 지금 느끼는 유가족의 미안함의 크기는 고인에게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며, 비극은 슬픈 죽음이 아니라 슬프지도 않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영정 앞에서 눈물 흘리는 당신 때문에 고인의 삶이 행복했고,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주기를 소망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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