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낯섦 그리고 고마움

잠을 자는데 흐느끼는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잠이 깼다. 아이를 조금씩 흔들어 깨웠다. 잠이 깊었는지 아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토닥 토닥. 아빠가 곁에 있다는 걸 아이가 알아차리기를 바라며 끌어 안았다. 무슨 꿈을 꾸는데 저럴까? 하며 아이의 등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빠르게 숨을 들이내쉬더니 갑자기 눈을 떴다. 놀랐나 보다.
가녀리게 뜬 눈 사이에 눈물이 맺혔다.
“민호야, 꿈꿨어?”
아이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아무 말없이 눈물을 훔쳐냈다. 조그마한 아이의 손등. 손등은 손바닥처럼 물건을 쥐고 필 수는 없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손등이 손바닥보다 더 고마운 이유였다. 꿈은 억눌린 생각이나 감정이 밖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아이 마음 속에 어떤 걱정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민호야 무슨 꿈이야?”
아이는 말을 하기 싫은 듯 입을 다문 채 다시 잠들었다. 민호는 크게 숨을 몇 번 들이 마신 뒤- 흐흐흡- 다시 잠에 빠졌다. 평화로운 아이 얼굴이 다시 돌아왔다. 그럼 잘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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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다 민호에게 새벽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는 잘 기억 하지 못했다.
“너가 울어서 아빠가 토닥토닥해줬는데?”
“내가?”
그럼 너 말고 아빠가 우리집에서 누구를 토닥거려주겠니. 뭐지? 갑자기 밀려드는 이 서러움?
아이가 생각에 잠길 땐 눈동자가 옆으로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눈동자가 멈췄다.
“무슨 꿈이야?”
아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기억을 해낸 것 같았는데, 말이 없었다. 더 물어보는 건 내 욕심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하기 싫은 이야기라면 듣지 않는 게 상대를 위한 배려일 테니까. 그럼 꿈 이야기는 그만하자, 고 속으로 다짐했다. 한참이 지나 민호가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왕 알려줄 거 진작 알려주지, 꼭 이런 식이었다.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저런.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러면서 자세한 꿈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가 갑자기 안방으로 들어가 전화기를 들고 나왔다.
“여보세요?”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거나 보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밝은 목소리도 수화음을 통해 들려왔다. 
이른 아침에 아이가 전화를 하는 경우는 적었다. 예상하지 않던 전화가 반가울 때가 있다. 예상하지 않은 선물이 더 반가운 것처럼.
아이는 전화를 하면서 잠시 말을 멎었다. 아이 목이 메였다. 막상 꿈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덤덤했는데 할아버지를 향해 전화를 직접하니 꿈 속 감정이 되살아난 듯 했다. 감정은 그랬다. 이야기로 들려줄 때와 직접 상대에게 말을 할 때 감정은 그 깊이와 크기가 달랐다.
“할아버지, 오늘 조심해. 알았지?”
울음을 삼킨 아이는 할아버지께 꿈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오늘 하루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가 기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옆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 입장에선 안쓰러웠다. 유난히 건강에 민감한 아이.

 

마 전엔 지난해 정기건강진단 결과가 나왔는데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게 나왔다. 그 때부터 민호는 식사 시간마다 아빠가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콕콕 집어 가르쳐 주었다. 아이가 할아버지와 전화를 끊고 며칠 전 먹다 남은 수육을 반찬으로 내놓았더니, 영락없이 잔소리였다.
“아빠 이 고기는 절대로 먹으면 안돼.”
“응. 아빠는 어른이니까 먹으라고 해도 먹지 않아.”
너는 아이이고 아빠는 어른이라는 말. 때로는 아빠가 어른이라는 걸 강조를 하면 아이는 안심을한다. 친구 같은 부모는 자칫 아이가 어른으로부터 안정적인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감정을 심어줄 수도 있다. 그게 더 위험하다고 했다. 심리학 수업을 들었던 내용이 순간순간 떠올라 그렇게 말로 행동으로 옮겼다.

아이의 걱정 덕분에 건강 검진을 받은 다음날부터 식탁 위가 푸릇하게 바뀌었다. 가끔씩 먹었던 라면도 사라졌다. 냉장고엔 삼겹살 대신 고등어와 지방이 없는 닭가슴살이 그 자리를 채웠다. 가끔씩 아이는 지나가는 말로 “아빠, 오래 살아요”라고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으면 “민호도 건강하게 오래 살렴”이라고 답을 했다. 민호는 할아버지께도 그리고 할머니께도 가끔씩 오래 살자고 말을 건다. 맑은 눈동자와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의 입에서 ‘오래 살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 스스로도 건강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이 나이 이제 열 살. 너무 이른 나이에 엄마를 떠나 보내며 죽음을 배워 버린 아이. 한창 놀 열살 아이는 그래서 할아버지며 할머니며 아빠까지 건강을 염려했다. 가끔은 안쓰러운 생각도 앞선다. 그러다가도 안쓰러운 만큼 아이는 살아 있는 행복도 같이 느끼는 듯 했다. 곁에 있어 좋다는 말. 함께 오래 오래 살자는 말. 감사하고 고마운 건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찾아온다.

 

그래, 민호야. 오래오래 살자.

 

그러다가 문득.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오래 살자고 했지, 딱붙어 살자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언젠가 나이가 들면 민호에게 우리는 오래 살겠지만,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오래 살자는 말을 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불현듯 들었다. 평생 네 뒷바라지만 할 생각은 없으니까.

물론 이런 말을 하기엔 열 살은 아직 어린 꼬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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