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뒤 마흔!, 센티(?)한 아줌마의 푸념 혹은 넋두리 - 생생육아

아이 셋을 낳고 나니

 
  그러니깐 어제(7일) 출근길은 딱히 이유도 없이 싱숭생숭 했다. 떨어지는 낙옆, 온몸을 휘감는 바람, 버스에서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모습까지….  그냥 모든 게 슬퍼 보였다. 마치 나처럼. 눈으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생기를 잃어 노쇠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이렇게 센치(?)해졌던 것일까. 생각해 보니 그날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꼭 20년 전 경기도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 수능 시험을 치르던 그때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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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20년이라니….’ 꿈 많던 열아홉 살 소녀는 어느새 서른아홉 살의 펑퍼짐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남편과는 이제 뜨거운 연애의 감정보다는, 정말 가족(?) 같다. 인생의 좋은 날은 다 지나간 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앞섰다. 하필 요즘 <응답하라 1994>에 홀딱 꽂혀 있는지라 더 그렇다. 94학번인 나로서는 <응사>를 볼 때마다 그때 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드라마에서처럼 삐삐로 사랑을 나누고, 학보를 교환하고, 단체 미팅을 하고….


  어느덧 젊음과 패기 넘쳤던 20대가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는 탱탱하던 피부 대신 축 처지고 주름진 얼굴, 체중이 늘어 영어사전만큼 잡히는 뱃살만 내 몸에 남아 있다. 내 곁에는 나를 “엄마!”라 부르는 공주들이 무려 셋이나 있다. 가끔 내 무릎 혹은 팔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세 아이들, 내 곁에 누워있는 세 아이들을 볼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 아이들을 내가 낳았단 말인가!’ 그렇게 20년의 시간이 쏜살 같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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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실수(?)로 셋째 아이를 임신한 뒤 나는 이렇게 결심했다. “30대에 육아에 충실하자. 까짓것 10년 육아 기간은 짧다.” 20대에 신나게 놀았으니, 30대에 아이 셋 키우는 일은 별거 아니라고. 그리고 이제 그 육아 기간과 안녕을 고해야 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두 달 남짓만 지나면 마흔이 되고, 나는 3년 전 마음먹은 대로 육아에서 조금 벗어나 내 인생을 찾을 수 있을 날이 온다. 한동안 멀리 했던 책도 읽고, 영화나 공연 같은 문화생활도 자주 하고, 살도 빼서 멋지고 세련된 아줌마로 40대를 보낼 수 있는 날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아마 마흔이 넘어도 내 생활과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라는 역할을 내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제 유독 우울했던 건, 두 달 뒤에도 지금과 별반 다른 생활을 할 것 같지 않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징조가 보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리고 <응사>의 영향도 큰 것 같다. <응사>는 나에게 과거의 좋았던 추억을 자꾸 떠올리게 하고 있다. 흑흑.

      어찌됐건 3년 전 세운 계획은 ‘허황된 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이들이 커간다고 해서 엄마의 역할이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업이나 교우 관계 등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한테 바라는 것도 그만큼 많아지고, 자아가 점점 커지는 아이들한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도 그만큼 더 필요할 것이다. 자녀들 나이 때에 적합한 맞춤교육과 육아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엄마가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당장 내년에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큰 아이 교육 문제(초등 돌봄교실을 3학년 때부터 이용할 수 없다)가 염려된다. 첫째와 셋째에 치여 심통이 점점 늘어가는 둘째 아이한테도 신경을 더욱 써야 할 것 같다. 언니들 틈에서 점점 엄마 품을 찾는 막대 역시 아직 엄마 손을 벗어나기엔 너무 어리다. 아~ 현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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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낮 동안 센치했던 기분도 싹 사라진다. 잠시나마 우울해하고, 내 처지를 한탄해 본 것으로 자위하기로 한다. 그래, 나는 엄마인 것이다. 퇴근 후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들 셋을 귀갓길에 찾아 집에 데려오고, 밥과 반찬을 해서 밥을 먹인다. 그렇게 또 하루가 마무리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럴 것이다. 내년에도 이런 일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흔을 앞둔 나는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살을 빼서 세련되고 멋진 40대 아줌마가 되는 것은 계획대로 진행한다. (나를 위해서, 무엇보다 나는 예쁜 옷을 입고 싶다! 멋도 내고 싶고.) 독서와 문화적 생활을 영위하는 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내가 책을 읽으면, 아이들도 알아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40살부터 하려 했던 나머지 계획들은 5년 뒤로 미룬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한결 맘이 편해졌다. 우울했던 기분도 확 달아났다.


  그래, 나는 엄마인 것이다. 20대의 추억을 그리워하지만, 그 20대를 생각하며 힘을 얻고, 또 그 힘으로 내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엄마인 것이다. 나도, 내 또래의 다른 엄마들도 그렇게 살고 있고, 나의 엄마도 그렇게 나와 내 동생들을 키워오셨을 거다. 괜히 날씨가 쌀쌀해지고, 또 한살을 먹는다는 조급함에 잠시 잡생각이 들었던 거다. 일종의 넋두리, 그러면서 또다시 든 생각. 엄마들은 위대하다. 아, 오늘 <응사> 하는 날이다. 본방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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