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후쿠시마에 답하라 원전을 멈춰라

지난 5월21일 한·중·일 정상이 일본 후쿠시마를 방문해 현지 토마토를 시식하는 장면이 전 언론을 장식했다. 참 대단한 퍼포먼스였다. 방사능 오염으로 농산물 수출길이 막힌 일본과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변함없이 밀어붙이겠다는 한국과 중국 정부의 속내가 읽히는 장면이었다. 한·중·일, 이 세 나라야말로 ‘원전 르네상스’의 주역이자 동맹국이었으니, 지금 일본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두 달여가 지났건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일본은 엄청난 재앙을 겪고서야 원전 14기 추가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에너지 정책의 향방이 원자력에서 태양으로 전환되고 있다. 오는 6월11일에는 일본 전역에서 100만명이 모이는 ‘탈핵 시위’가 잡혀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똑같이 2024년까지 원전 13기 추가 건설 계획을 추진하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본 원전 사태를 걱정하는 이들을 ‘불순·불온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한나라당은 물어볼 것도 없이 ‘찬핵’이다. 그렇다면 다음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진보’ 정당들은?

지금까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를 제외하고 민주당 손학규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당론을 모아 원자력에 관한 입장을 밝힌 바가 없다. 바로 지척에서 체르노빌을 능가하는 엄청난 핵 재난이 일어났건만, 진보진영은 원전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 성장’ 간판을 달고 4대강과 원자력으로 온 국토를 결딴낼 수 있었던 원죄는 지난 정부에도 있다. 국민의정부도 참여정부도 토건개발사업과 원전중심 에너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진보를 표방하면서 ‘초록’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다음 정부 10년은 복지와 초록이 만나야 한다. 국제유가는 상승하고, 원자력은 항상 사고 위험을 안고 있으며, 기상이변은 일상화하고 있다. 대비해야 한다. 더불어 4대강으로 파탄난 국토를 복원하고, ‘회색 성장’에 상처 입은 생명에 초록의 기운을 불어넣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적기다. 진보정당들이 원자력을 지지해온 그동안의 정책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탈핵과 에너지 전환의 비전을 선포하는 것이다.

당장 진보정당들을 현장에서 만나고 싶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 반대, 사고뭉치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한 국정감사, 월성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안전성 재평가, 원전 신규 부지 선정 반대 활동에 함께 나서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탈핵은 곧 ‘전기요금 폭탄’과 ‘경제성장 추락’이라는 핵산업계의 협박을 무색하게 할 에너지 정책 전환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정당 차원에서 연구팀을 꾸리고 탈핵의 구체적인 목표 시점과 정책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진보, 국민을 신뢰하라. 우리 국민은 황우석 사태 때 줄기세포에 통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광우병 전문가가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원자력 관련 서적과 해외 사이트까지 뒤지며 원자력발전소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지금 국민은 탈핵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이 출현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년 선거에서 어느 진보정당이든 ‘탈핵’을 당론으로 정하고 발로 뛰는 정당에 표를 던질 것이다.

 

이유진 |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 

<경향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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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이고, 녹색당 당원 이유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