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 - 애엄마, 이런 건 줄 몰랐다네 기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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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네가 결혼 안했으면 좋겠다”

 

미혼이었던 시절, 엄마는 내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뭐 그런 가슴 촉촉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엄마가 막내딸의 미혼인생을 밀었던 이유는 단 하나. 제 몸 하나 건사 못하는 천둥벌거숭이에게 결혼은 언감생심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딸을 여섯이나 낳아 길렀고, 고향 읍내에서 가장 상위 레벨의 시월드를 거쳤던 엄마는 결혼과 육아가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과 맞먹는 미션임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니들의 과보호 속에서 자라 제 손으로 밥 떠먹는 게 기적적인 자신의 막내가 그 미션을 수행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도 엄마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운명의 바퀴는 제 한 몸 못 거두는 나에게도 굴러왔다. 그리고 그렇게 요리, 청소, 정리 등 생존능력 최저 등급을 밑돌던 나에게도 얼떨결에 ‘엄마’라는 신세계는 열렸다.

 

아이를 처음 낳고, 젖먹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몸이 축나던 시절. 나는 거의 매일 깜짝깜짝 놀랐다.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힘든 일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을 지금까지 모든 엄마들이 해왔다는 것인가? 거리를 걸어 다니는 엄마들 모두가 대단해 보인 것은 물론이었으며, 아이를 여섯 낳아 길렀던 친정 엄마는 단박에 성인 반열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끊임없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뭉글뭉글 거렸다. 왜? 도대체 왜 아무도 출산과 육아가 이렇게 힘든 일이라고 내게 진작 말해주지 않았던 것인가? (물론 엄마와 언니들은 진작 나에게 경고를 했건만, 내가 흘려들었다고들 한다) 텔레비전과 매체에서는 왜 아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만 보여주는가? 우리 사회에서 애 키우는 일은 왜 하찮게 취급되는가? 집에 가서 ‘애나 키우라’ 라는 말이 서슴없이 하는 사회를 향해 나는 매일 같이 새로운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고민과 뿔난 마음은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당시 직업이 언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일상에 치인 나는 나의 문제의식을 어떤 식으로든 생산하고 나누려는 의욕을 모두 상실했다. 그야말로 근근이 살았다.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는 잠을 안자도 잘 노는 슈퍼아기인 첫째와 몇 개월 동안 씨름을 했고, 각종 육아 책들을 경전 모시듯 했다. 나는 밑줄 그으며 책들을 경독했고, 그들이 나를 구원해주리라 믿었다. 친정엄마와의 다툼도 잦아졌다.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는 성인으로 보이던 친정엄마는 종종 육아 책들과 다른 의견들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 옛날식만을 고집하는 엄마는 나에게 ‘이단’이었다. 사춘기에도 그러지 않았던 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엄마를 몰아세웠다. 내 손아귀에서 정신줄은 슬슬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몇 개월이었다.

 

그리고 이런 어마어마한 위치인 엄마에 등극한지 이미 6년이 지났다. 나는 그 사이 아이를 하나 더 얻었다. 주변에는 나보다 어린 아기를 가진 엄마들이 늘었다. 그들에게 나는 까마득한 선배인 셈이다. 이제 애를 다 키웠다며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다. 나 역시 가끔 농담으로 육아가 제일 쉬웠다며 어처구니없는 잘난 체를 하기는 하지만, 이거야 말로 허세 중 허세다. 사실 나는 엄청나게 빌빌거리며 아이를 키웠다. 내가 모르던 나의 밑바닥을 수없이 들여다보고 절망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던 잠재적 능력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방울방울 맺히는 기억 속에는 기막히게 슬픈 일들과 기막히게 행복한 일들이 함께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일 속에서 나도 함께 커왔다는 것이다. 그랬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수련’이었다. 무지막지 하게 힘들지만, 작은 물방울들이 떨어져 동굴에 커다란 종유석을 키워내는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나에게 분명한 족적을 남겼다. 육아의 고수로 등극할 날이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지나온 나의 시간들이 자랑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아직도 나에게는 버거운 육아와 일상생활 속에서 육아일기를 써보고자 한 이유는 하나다. 나의 동지 수련생들과 함께 힘을 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 너무 많은 훌륭한 엄마들이 자신을 ‘모자란 엄마’로 오해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1년 내 외식은 몇 차례일 뿐 매일같이 건강한 엄마표 음식을 만드는 엄마도, 단계별로 독서계획을 짜고 매일같이 책을 읽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도, 심지어 대부분의 경우 평정을 잃지 않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엄마도 모두들 자신이 너무 부족한 엄마로 평가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런 문제없이 키우는 것 같은데, 자신만 이렇게 아이와 씨름하고 있다고들 고백한다.

내가 보기엔 이미 어마어마하게 잘하고 있음에도 세상이 요구하는 혹은 육아서들이 요구하는 완벽한 엄마의 모습에 매달려 스스로의 노력과 땀을 평가 절하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자기비하에 눈이 멀어 나에게 육아베테랑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녀의 오해를 즐기고도 싶었지만, 사실 나의 엉성한 맨 모습으로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 나의 동지 수련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더 맘이 끌렸다.

 

여전히 나에게 육아수련은 너무나 힘들다. 나쁜 놈이 공격해 오는 경우를 대비해 맥가이버 칼을 들고 유치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첫째와 발이 갑갑하다며 양말을 신고 등원을 하느니 차라리 신발마저 벗고 맨발로 집을 나서겠다는 둘째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노라면 수련이고 뭐고 갑자기 옷을 찢고 헐크로 변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지난 6년의 헛되지 않도록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한다.

 

나는 친엄마에게서 애를 제대로 못 돌볼 것 같다는 이유로 독신 생활을 권유받았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름대로 성장해간다. 나의 이런 나름대로 육아수련기가 다른 엄마들에게 위로 혹은 안도감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내가 더욱 기대하는 것은 다른 엄마, 나의 육아 친구들과의 소통이다. 아무리 힘든 수련도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면 힘이 나는 법이니까. 알아주는 사람 별로 없는 육아무림은 혼자 걷기에는 너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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