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산만사이 기본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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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엄마가 많이 힘들겠네" 


나의 첫아들 수민과 6년반을 지내며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나의 수고를 알아주는 분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길에서건 놀이터에서건, 그분들을 만나는 그곳이 나의 상담소가 되었다.  나는 아들이 얼마나 에너자이저 혹은 난장판 만들기 대마왕인지에 대한 예를 줄줄이 나열하면서, 짬짬이 혹은 장시간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1등급 천일염을 집안에 쏟아서 겨울왕국을 만들어 놓은 이야기. 3리터짜리 기름을 거실에 들이부어 순식간에 유전으로 변신시킨 일화. 친정엄마의 값비싼 설화* 화장품을 바닥장판 미용에 써버린 이야기 등등. 소재는 넘쳤고, 나의 수위 높은 이야기들은 다른 엄마들과의 육아고생 배틀에서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뒷맛은 씁쓸했다. 마치 고교 수학여행 마지막밤에 "사실 우리집은 말야..."로 시작하는 가정사 불우배틀에서 승리했을 때의 묘한 기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여하튼 친정엄마가 손주의 만행을 기록한 책을 기획하고 있을 정도로 아들의 6살 반 인생은 짜릿한 모험의 연속이었다. (동시에 나에게는 끝없는 청소와 경악의 연속이기도 했다) 가슴 철렁한 일도 많았다. 한번은 숯의 생김새가 궁금하다며 높은 곳에 놓인 숯을 잡으러 기어오르다가 떨어졌다. 눈가를 18바늘을 꿰매야 했다. 또 한번은 모기잡는 스프레이의 분사과정을 보고싶다는 일념으로 스스로의 눈에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러나 가장 놀랐던 순간은 수민이가 중국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고 물건을 던지는 습관이 들었던 때였다. 당시 살던 집은 무려 19층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창문 밑에 턱이 있어 아이들이 손쉽게 창문을 열 수 있었다. 방충망이 있었지만, 헐거워 가끔 그 틈이 벌어졌는데, 수민이가 그쪽으로 집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파트 입구 화단에 눈에 익은 컵, 장난감, 쟁반 등 집안의 집기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아이를 추궁했더니, 자백을 했다. 엄마의 눈을 피해 물건들을 던진 것이다. 수민이는 물건들이 떨어질 때 작아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창이 길가가 아닌 넓은 화단이어서 망정이지, 떨어진 물건에 맞아 누군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혹은 떨어지는 것을 보기위해 고개를 숙인 아이가 균형을 잃는다면? 방충망은 튼튼한 보호막이 될 수 없없다. 눈물 쏙 빠지게 야단을 쳤다. 창문을 수리했지만, 그 후로도 던지기 만행은 서너차례 지속되었다. 결국 이듬해 집을 옮겼지만, 정말 다시 생각해도 등골에 서리가 내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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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도 많았지만, 수민이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의 엄마의 숙명이려니 하면서 나름 유쾌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휴직을 하고 중국에서 수민이 또래의 아이들, 그리고 그 엄마들과 만나면서 나의 생각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민이가 4살이되던 해 중국에 가기전까지 나는 계속 일을 했었다. 수민이 또래의 아이들을 제대로 관찰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본 4살의 '보통' 아이들은 수민이와 달랐다. 몇분 정도는 엄마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참고로 나는 수민이가 6살때까지 손을 잡고 걸어본 적이 거의 없다.) 고집부리지 않고 엄마 손을 잡고 순순히 길을 걷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길바닥과 혼연일체가 된 듯 뒹굴며 길을 가는 아들을 봤다. 몇분 정도는 밥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아이들도 꽤 많았다. 엉덩이를 붙이고 밥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또 밥상을 순식간에 놀이터로 만드는 아들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문제가......있는 걸까?  


그리고 수민이 친구의 엄마, 유치원 선생님 등 주변인들에게서 지속적인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과잉행동장애. 일명 ADHD 이야기도 나왔다. 겁이 더럭났다. 책을 구해다 읽기 시작했다. 복잡한 뇌이야기가 나왔다. 구입한 책 중 한권에서는 사례로 나와있는 아이들의 행동이 수민이와 많이 비슷했다. 어지러웠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고쳐야하나 고민을 했다. 나는 국외에 있었고, 중국 아동병원은 변변치 않았다. 둘째아이가 태어난 지도 얼마되지 않던 시기라, 몸도 마음도 물먹은 솜이 되었다. 당시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직장에 사직서를 내게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ADHD 고민이었다. 그동안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자책이 나를 꽁꽁 묶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첫아이였기에 나의 조바심이 더 컸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가지 자료를 참고해보았다. 장소에 맞는 행동규칙을 알려주고 반복해서 일러주었다. 물론 수민이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별 변화가 없었다는 소리다) 엄마가 너 때문에 힘들다는 동정 전술도 써봤다. (약 5분간 약발이 있다) 결국 훈육에 돌입했다. 사실 육아서에 따르면 훈육이라는 것이 엘레강스하고 시크하며 엣지있게 이루어져야 하는 법인데, 나처럼 미천한 인격자본을 가진 자에게 훈육은 종종 '혼내기'로 끝이난다. 4살 반부터 5살시기에 갑자기 '야단' 세례를 받기 시작한 수민이는 우울한 얼굴로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어린시절에 사고뭉치라고 불렸다"라는 구절을 가져와 자신의 처지를 위인과 동기화 시키는 태도만 보였다. 결국 훈육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전보다 더 산만해 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혹독한 시기를 보내던 중. 나는 귀인을 한분 만나게 되었다. 얼덜결에 보내게 된 태권도장. 쳐진 눈에 다부진 체격의 사범님께서 수민이를 맡아주셨다. 그리고 사범님은 나에게 어찌보면 평범한 수민이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려주셨다. 수민이는 칭찬에 약한 남자였다. 


사실 나는 스스로 칭찬에 후한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아이의 장점에 대해서만 칭찬했다. 단점을 칭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사범님은 수민이의 깨알같이 작은 노력도 찾아서 칭찬했다. 고마웠다. 변화를 향한 노력의 반발자국, 아니 반의 반발자국도 칭찬해주는 것이 사범님의 비법이었다. 아이가 어떠한 태도에 가장 잘 반응하는지를 세세하게 살피신 끝에 얻으신 결론이었다. 엄마인 나도 발견 못했던 것이다. 장가도 안가신 분이셨지만, 육아무림의 고수를 한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배워보려했다. 어려웠다. 그래도 흉내를 조금이라도 내보려했다. 조그마한 태도 교정에도 폭풍칭찬을 퍼부었다. (물론 '깨알칭찬'은 워낙 고난도 육아법이라 생각보다 자주 하기 힘들다. ㅠㅠ)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칭찬의 효과였을까? 혹은 세월의 힘이었을까? 혹은 수많은 시도들의 열매였을까? 지난 3년 수민이는 많이 나아졌다. 물론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통'의 아이들보다는 산만한 편이다. 정신없이 군다는 핀잔도 계속 듣는다. 허나 전화기에 유치원 전화번호만 뜨면 심장이 쿵쾅거리던 그 3년전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끔씩 수민이가 흥분에 넘쳐서 하는 행동들은 나를 긴장시킨다. 그러나 또 가끔씩은 호기심과 산만이 종이 한장 차이이라는 생각도 한다. 어떤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의 똑같은 행동은 호기심 왕성이 되기도 지나친 산만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약물치료나 심리치료 없이 수민이는 고비를 넘긴 것 같다고 엄마인 나는 스스로는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수민이는 내년에 학교 입학이다. 다시 조금 걱정이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가 잘 해낼까 하는 의심과 조바심이 다시 난다. 그나마 효과가 좀 있었던 것 같은 '깨알칭찬' 뿌리기에 돌입해야 하나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이게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육아법이다. 또다른 수련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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