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제주해군기지를 반기지 않는다" 정책

"아이들도 제주해군기지를 반기지 않는다"
8인의 독립 다큐 감독, <잼다큐 강정>으로 자연과 인간을 말하다 

 

강정을 위해 8인의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 나섰다. 강정마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옴니버스 다큐 <잼다큐 강정>은 복잡한 정치적 요소들을 배제한 채 제주해군기지로 인해 붕괴돼 버린 강정 마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벌써 5년째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강정 주민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눈으로 해군기지문제를 바라본 권효 감독을 만나 강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들어봤다. 

 

김동규< 디펜스21+> 기자 ppankku@naver.com

 

사진._잼다큐_강정_포스터.jpg ⓒ 시네마달

 

지난해 12월 22일 국내 최초로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잼다큐 강정>이 개봉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인 10여개의 스크린을 확보했지만 감독들이 직접 관객과의 소통에 발 벗고 나서며 영화를 알리기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 저예산, 짧은 제작기간 등 역경이 많았지만 외로운 강정마을의 투쟁을 대중 속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잼다큐 강정>의 ‘잼(Jam)’은 음악 용어로 재즈 연주자들이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잼다큐 강정>은 이러한 잼의 형식을 빌려 만든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에 참여한 감독은 <레드마리아> 경순, <경계도시> 홍형숙, <택시블루스> 최하동하,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최진성, <오월愛> 김태일, <원 웨이 티켓> 권효, <어깨동무> 양동규, <별들의 고향> 정윤석 등 잔뼈가 굵은 베테랑 감독부터 떠오르는 젊은 감독까지 다양하다. 8명이나 되는 감독이 같은 주제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 동안 정치ㆍ군사ㆍ안보적 관점에서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자연과 공동체의 문제를 중심으로 강정을 보여주는 영상은 전무했다. <잼다큐 강정>의 미덕은 해군기지에 얽힌 안보나 정치 문제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반박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자연과 주민들의 척박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점이다. 영화에 참여한 여러 감독 중 아이들의 시선으로 해군기지문제를 바라보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준 권효 감독을 만나 영화와 강정마을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영화인의 방식

 

권효 감독을 비롯해 <잼다큐 강정>에 참여한 8명의 감독은 강정마을 주민도 아니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냄새를 풍기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고로 이제 당신들도 ‘외부세력’이 됐다. 말로만 듣던 외부세력이 된 기분이 어떤가?

영화를 끝내고 난 후 관객들과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마음이 가슴 속에 자리 잡았다. 먼저 고마움이다. 이유는 영화를 같이 찍었던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나를 도와줬던 많은 활동가분들 덕분에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맙다.
두 번째로 미안함이다. 사실 내 고향은 제주도다. 강정마을은 이미 2007년부터 힘겨운 싸움에 휘말렸는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무관심했던 것 같다. 언론 보도를 보며 강정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만들기 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 굉장히 미안했다.

 

마음의 부채를 청산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 아닐까. 명색이 사회의 주류층과 기득권을 비판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데 제주해군기지처럼 문제가 많은 거대 이슈 앞에 침묵하는 건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동안 바쁜 일상 때문에 강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는데 영화에 참여하며 ‘이번 기회를 통해 최대한 동참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부채감을 씻어내고자 하는 의도도 조금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들보다는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잼다큐 강정>에는 8명이나 되는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 참여했다. 생업과 작품 활동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은 감독들이 한마음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계기가 있었다. 발단이 된 건 영화 초반에 환자복을 입고 등장하는 양윤모 영화평론가다. 제주도가 고향인 양 선생님은 중장비 밑에 드러눕는 등 예술인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분이다. 양 선생님의 애초 계획은 강정에 내려가서 상황을 잠깐 보고 오는 것이었는데 강정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니 도저히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정에 집을 구해 상주하며 투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경찰에 잡혀가기도 하고 고생을 많이 했다.
양윤모 선생님이 단식까지 하면서 고생하는 걸 보고 친분이 있던 경순 감독과 최하동하 감독이 강정마을로 내려갔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양 선생님이 두 감독에게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제안했다고 한다. 영화인답게 영화로 강정문제를 다뤄보자는 말이었다. 그래서 바로 기획이 시작됐다. 총기획을 맡은 경순 감독은 기획전부터 강정 문제는 혼자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영화 감독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진1. 권효감독.JPG

▲ 권효 감독


영화가 상당히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획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기획은 거의 한 달 정도 걸렸다. 총 제작 기간이 편집까지 포함해 약 100일인데 상당히 빨리 만든 축에 속한다. 2011년 7월부터 9월까지 만들었다. 자화자찬 같지만 100일 만에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했다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8명의 감독이 모인 덕분에 빨리 끝난 면도 있다.

 

보통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는가?

소재에 따라 다르긴 한데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는 8년 만에 완성됐다. <경계도시>는 특별한 경우였고 평균 2~3년 정도 걸린다. 소재를 정하고 제작비까지 마련해도 각종 문제에 부딪혀 1~2년을 하릴없이 보내는 경우도 있다. 짧으면 1년, 길면 3년으로 보면 된다. 

 

상업 영화와 달리 제작비 모으기가 쉽지 않은 독립 다큐멘터리에 8명이나 참여하다 보니 제작비 문제가 만만찮았을 것 같다.

비용이 좀 문제가 되긴 했다. 일단 8명의 감독들에게는 인건비가 지급되지 않았다. 다들 시작부터 그런 건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재능기부를 했다. 그런데 무대가 제주도이다보니 감독 8명에 동행하는 조연출, 촬영감독 등의 항공료만 해도 만만찮았다. 각종 비용을 계산해 보니 예상 예산이 3,000만원 정도였다. 그래서 제작비 마련을 위해 다방면으로 뛰었다.
8월쯤 DMZ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기획안을 접수받았다. 여기에 선정되면 제작비 1,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거의 보름 만에 기획안을 제출해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또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연대해 ‘잼다큐 강정 사회적 제작단’을 발족했다. 여기서 후원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고 후원한 분들을 사회적 제작단으로 등록해 엔딩 크레딧에 올리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1,400만원 정도 모았는데 여전히 총제작비에는 못 미쳐 지금은 빚이 좀 남아있다. 원래 영화 상영을 통해 얻는 수익은 전액 강정마을 후원에 쓰려고 했는데 일단은 빚 갚는 데만 쓰고 있는 실정이다.

 

굉장히 힘들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만들었다”, “고생했다”고들 하는데 사실 내가 뭘 그렇게 고생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 말고 다른 감독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총연출을 맡은 최하동하 감독과 총기획 경순 감독이 많이 힘들었다. 같은 뜻으로 모이긴 했지만 각자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하던 감독들답게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걸 조율하는 게 참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감독들은 짧으면 3일, 길면 1주일 정도 머물고 왔는데 최하동하 감독은 한 달 가까이 머물며 강정마을 상황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더 고생한 것 같다.

 

알 건 다 아는 아이들

 

권효 감독이 맡은 부분은 어린이들이 찍은 사진을 통해 이들이 해군기지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뒤늦게 영화를 전공했다. 모든 영상은 사진에서 출발한다. 평소 지역문화센터에 미디어 교육을 나가곤 하는데 이번 기회에 그 경험을 써먹었다. 아이들이 해군기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었는데 쉽게 들을 순 없었다. 아이들에겐 그들만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이끌어내기 위해 사진을 이용했다. 사진을 통해 말이 아닌 이미지로 보여주면 아이들의 목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는 사진 수업을 들은 어린이들이 해군기지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들은 해군기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사진 수업은 강정초등학교 4학년 1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 학교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학년마다 반이 하나고 한 반에는 학생이 23명 정도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강정에 살고 있는 아이들인데 이들에게 해군기지에 대한 교육을 하는 선생님은 한 분밖에 없다. 4학년 1반 담임 선생님만 강정문제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고 해군의 논리가 무엇인지, 찬성측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찬성을 하고 반대측은 왜 반대를 하는지 교육한다.
선생님에게 어느 정도 수준까지 교육을 하는지 묻자 동북아 정세나 중국의 안보위협 수준까지 이야기한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런 수준까지 이해한다고 한다. 선생님 말을 빌리자면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 해군기지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어른들이 왜 싸우는지를 말이다. 다만 아직은 애들답게 해군기지문제보다는 노는 데 더 관심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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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 감독과 함께 영화를 촬영한 아이들 ⓒ 시네마달
 

어린이들도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걸 반가워하지 않는 것인가?

강정에 사는 어른들은 찬반이 확실히 나뉘어져 있다. 찬성보다 반대하는 어른들이 더 많긴 하지만 찬성이든 반대든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해군기지가 생기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한 이유가 해군기지 때문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만져 본 경험도 없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느라 고생했을 것 같다.

아직 어린 애들이다 보니 좌충우돌하긴 했는데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아이들에게 무척 고맙다. 이런 사진 교육은 짧으면 한 달, 보통 세 달은 해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 시간 문제 때문에 이틀 일정으로 무리하게 추진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과제까지 훌륭히 해냈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해군기지건설에 대한 찬반의견이 나뉘어져 있을 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그런 부분에서 물론 문제가 있었다. 원래 계획은 찬성측 집안의 아이들도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학교로 전화가 와서 못하게 됐다. 거의 절반 정도는 빠졌다. 그런데 그 절반이 모두 해군기지를 찬성하기 때문에 수업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자식이 이런 영화에 노출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부모님들도 자신의 아이는 빼달라고 요청했다. 나머지 10명은 별 문제없이 참여했다.

 

무너진 공동체, 주민들 심리 치료가 필요

 

다른 감독이 제작한 부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총감독이라 그런 건 아니고 최하동하 감독이 만든 ‘코사마트와 나들가게’가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는 부분이다. 해군기지문제가 가져다 준 가장 큰 문제는 강정마을 공동체의 붕괴다. 형제간의 갈등,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심지어 동네 개들까지 찬성쪽 개 반대쪽 개로 나눠 놓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가슴이 아파온다. 이런 갈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게 나들가게와 코사마트가 아닌가 싶다. 아마 다른 감독들도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찬반 입장에 따라 주민들이 이용하는 가게도 다르다는 점이 처음에는 마치 픽션처럼 느껴졌다. 두 가게 중 매출은 어디가 많은가?

아무래도 반대측 주민들이 많다보니 반대 입장을 지닌 코사마트가 매출이 낫다. 나들가게는 왕따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도 잠깐 나오지만 어떻게 보면 참 안쓰러운 일이다. 해군기지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마주보고 있는 두 가게가 선의의 경쟁도 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어린이들도 부모님의 입장에 따라 이용하는 가게가 다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무엇인가.

역시 공동체의 붕괴가 가장 안타깝다. 그런데 마을 대부분이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군은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해녀를 먼저 포섭하고 누구 땅은 비싼 값에 사주고 이런 치졸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다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 초등학교 반장선거에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많이 지친 것 같다. 5년 동안이나 시달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가 갔을 때도 ‘또 어디서 쓸데없이 뭐 찍으러 왔구나’는 식의 비우호적인 시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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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앞에서 시위 중인 최진성 감독과 인디 밴드 무키무키만만수 ⓒ 시네마달
 

찬성이든 반대든 간에 비우호적이었나?

둘 다 마찬가지다. 강정에 가보니 국내 언론이 강정주민들에게 신뢰를 많이 잃은 것 같았다. 주민들 말을 들어보면 수많은 언론이 와서 뭘 찍어가긴 하는데 방송에서 틀지도 않고 해결도 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배신감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도 대부분 독립영화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어디 방송국에서 찍으러 온 줄 알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지친 마을 사람들에게 심리 치료가 필요한 지경까지 온 것 같다 .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심적 고통은 어느 정도인가.

아마 그런 치유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제주도의 마을은 씨족으로 구성돼 있는 사회다. 그래서 결혼, 제사, 벌초, 각종 잔치 등이 마을 전체의 일이나 마찬가진데 이젠 찬반에 따라 그런 행사도 함께하지 않는다. 칼부림이 오가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서로 죽이네 마네 할 정도로 등 돌리고 산다. 이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황을 강정마을 주민 대부분이 겪고 있다. 직접 보지 않으면 진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심각하다.

 

그 정도로 갈등이 심하다면 정부가 나서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정부에서 그런 활동을 하겠나.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해고 노동자 가족을 상대로 ‘와락’ 프로젝트를 통한 심리치유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데 뜻있는 분들이 사재를 털거나 시민단체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관심이 없다. 해군기지 사업이 중단되면 강정에 평화공원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는데 일단은 상처 입은 강정 주민들을 치유하는 활동이 시급하다고 본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다

 

영화를 보니 이미 강정 해안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들어섰다. 철거하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거대하다. 구럼비 바위는 어떤 상황인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해군도 부담을 느끼는지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미 펜스도 쳤고 주민들도 쫓아냈기 때문에 해군은 폭파작업을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폭파작업을 한다고 하면 주민들이 나서서 막고 활동가들이 출동하기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구럼비를 부수면 해군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구럼비는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바위인데 세계적으로 이런 명소가 없다고 한다. 보통 해안가 바위는 울퉁불퉁하거나 뾰족한데 구럼비는 평평하다.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추운 겨울에도 햇볕만 쬐면 바위는 따뜻하다. 강정 주민들이 큰 자랑으로 생각하는 곳인데 여길 파괴한다는 건 생각하기도 싫다. 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분들도 실제로 바위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면 분명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해군기지 같은 무력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강정에선 안보가 절대적인 가치가 돼버렸다. 인권이나 환경 등의 가치위에 안보가 군림하는 세태를 어떻게 보는가.

상투적인 말이지만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본다. 영화에서 송강호 활동가도 말했지만 평화는 평화적 수단으로 지켜야 한다. 물론 나도 군대를 다녀온 입장에서 한반도가 동북아의 요충지라는 등의 안보 논리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평화적인 방법을 모색해야하지 않나 싶다. 
강대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군사력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군사력으로 이들보다 우위에 설 수 없는 특성과 한계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해군기지 건설과 같은 논리로 안보를 강조하는 건 순전히 기득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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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자랑 구럼비 바위 ⓒ 시네마달

 

해군의 논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를 들어 중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주변국 위협’이나 ‘교역로 수호’ 등의 논리 말이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제작을 위해 해군기지건설에 찬성하는 논리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그런데 찬성측의 논리는 하나같이 중국과 일본의 위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논리를 보면 마치 당장 내일이라도 중국이 선전포고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공포를 조장한다는 건가?

영화를 전공해서 국제정치학적인 요소들은 잘 모르지만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 위협은 그렇게 과장해서 볼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옛 명나라도 아니고 다른 나라를 군사력으로 위협해서 이득을 취하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동북아에서 국가 간의 관계를 군사적으로 푼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은 더욱 그렇다. 독도 문제를 놓고 봐도 일부 우익들이 내뱉는 과격 발언이나 선동적인 행위들을 군사적 이슈로 연결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이 간다. 또한 중국에 기존의 논리를 뒤엎는 엄청난 무기체계가 나오지 않는 이상 현재 상황이 급변할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미국이 태평양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군이 파괴한 자연을 보니 기분이 어떤가.

평소에 딱히 환경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강정을 보면 매우 불쾌하다. 아무리 인간이 위대하다고 해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지금까지 들어선 기지 시설들을 보면 참담하다. 공사가 계속 진행되면 숙소 등 여러 건물들이 들어설 텐데 그 모습을 상상하기도 싫다.
강정은 원래 올레길의 여러 코스 중 하나다. 강정해안은 올레 7코스에 속하는데 지금은 펜스를 둘러놔서 우회해 가야 한다. 그래서 올레길을 걷던 육지 관광객들이 당황해하곤 한다. 정부는 제주도가 ‘자연이 마련해준 휴식처’, ‘평화의 섬’이라고 홍보하는데 그 자연을 짓밟고 있는 게 누군가. 차라리 그런 말을 애초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 정권엔 기대 안 해, 민주적 수단으로 막아야

 

강정은 더 이상 국내문제가 아닌 듯하다. 국제 평화단체에서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실제로 외국인 활동가들이 구럼비에 와서 직접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인 매튜 호이 씨는 해군기지반대 사이트까지 만들었다.

깊은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강정에서는 외국인 평화 활동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잼다큐 강정>을 보러 해외에서 온 분들도 있다. 특히 유럽 쪽 평화활동가들이 강정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한 활동가는 유럽 여러 나라에 있는 평화단체에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며 영화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최성희 활동가는 원래 미국에서 평화활동을 하던 분이다. 최성희 씨는 미국에서 구속된 평화활동가 구명운동도 펼쳤는데 그렇게 풀려난 미국 활동가가 최성희 씨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듣고 강정에 오기도 했다.

 

지난 12월 31일 해군은 기지건설 예산의 96%를 삭감당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2011년 이월 예산 1,084억원과 2012년 예산 49억원을 활용해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해군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별 영향력도 없는 내가 해군에 한 마디를 하려니 조금 어색하다.
일단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해 해군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참모총장이든 최초로 계획을 입안한 사람이든 무엇이 문제인지 반추해봐야 한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작게는 강정마을, 크게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위해 하는 사업이다. 국민의 안녕을 위한 사업이라면 지금까지 해군이 행한 모든 일들이 합당한 것인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당장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해군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며 계획안 첫페이지부터 제목 토씨하나까지 찬찬히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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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영 하루 전인 2011년 12월 21일에는 국회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 시네마달

 

마지막으로 어려운 질문 하나 하겠다. 권효 감독은 강정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한다고 보는가?

강정 마을주민 분들과 비슷한데 일단 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실질적인 해결책은 국회 같은 권력에 의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회가 예산 삭감을 통해 지속적으로 해군기지사업을 늦추는 것도 좋지만 일단 제주도지사가 반대하면 기지 건설을 할 수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주민 소환을 해서 도지사를 바꾸든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든지 어쨌든 국방부가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국방부가 힘이 세도 국회와 대통령이 반대하면 어떻게 할 수 없지 않겠나.

 

현 정권은 문제해결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청와대도 사실 퇴임 이후를 걱정하지 해군기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현 정권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걱정되는 건 해군기지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려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김진숙 위원처럼 꼭 누가 크레인 위에서 500일을 버텨야, 쌍용차 사태처럼 누가 죽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방식은 동의하지 않는다. 구럼비 바위가 폭파되기 시작하면 분명 누군가 목숨을 걸 것이다. 다행인 건 올해에 총선과 대선이 모두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누군가의 피와 고통이 아닌 민의를 모아서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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