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광주>와 세월호, 희망을 품고 싶다 화순댁의산골마을육아일기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새삼 놀랍다.

한 겹 더 걸친 겉옷이 번거롭게 느껴질 만큼 햇볕은 따사롭고,

자주 빛의 철쭉과 신록의 나무 이파리들은 어제보다 몇 배는 더 생기로워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신록의 계절이건만

세월호 참사 이후 나의 시계도, 대한민국도,

시퍼런 진도 앞바다에 잠겨버린 것만 같다.

 

그래도 산 자들의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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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지인의 초대로 <100% 광주> 공연을 관람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이 기획한

이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이 일반 광주 시민이라는 점이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시민 중 성별, 주소, 나이, 가족 형태 등

인구통계학적 수치를 바탕으로 선발된 100 명의 사람들.

예를 들어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토나 욤비 광주대 교수는

광주 시민의 1%에 해당하는 외국인을 대표해 무대에 섰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 연극에 대해 알고 있던 내용의 전부였다.

이들이 사이좋게 돌아가며 1분씩만 얘기해도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날 텐데.

사실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고 자란 곳,

아물지 않은 현대사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시민들은

이방인인 나에게 광주를 뭐라고 설명할까.

날 것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

 

진행 방식은 무척 단순했다.

 

먼저 무대에 오른 100명의 광주 시민들은 차례로

각자가 좋아하는, 의미있는 물건과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할머니,

마라톤을 즐기고, 여행을 즐기는 택시 기사, 간호사, 공무원, 주부,

오리탕집 사장님, 취업 걱정인 대학생, 프리랜서 엠씨와 어린 아이들.

통계수치에 따라 선정된 이들인 만큼

좋아하는 것도, 직업도, 나이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이 끝난 뒤,

출연자들은 준비된 질문에 따라 예, 아니오로 구분된 공간을

자유롭게, 분주히 오갔다.

정해진 시나리오가 없다는 건, 출연자들이 본인 의지에 따라 답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관객과의 대화에서 밝혀졌듯이 그들의 모든 답변이 정직한 것은 아니었고,

관객들은 그 '솔직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 광주에서 태어났는가

- 옆집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 이사를 한 적이 있는가

- 5.18의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계속 감옥에 있어야 하나

-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 가족 중에 치매로 고통받는 이가 있나

- 탈세, 낙태, 성매매를 한 적이 있나

-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마약을 복용한 적이 있나

- 통일이 되어야 하나

- 선생님에게 맞아본 적이 있나

- 자식을 때려본 적이 있나

- 사형제도에 찬성하나

- 당신은 광주사회에서 약자라고 생각하나

 

질문들은 이렇게 광범위하고 사사로우면서도 정치적이었다.

많은 질문에 예, 아니오 양쪽이 골고루 섰다.

연기자들은 일관적이지도, 긍정적이지만도 않았다.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해도,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는 부정적이라던가,

5.18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며 폭력을 대물림 하고, 사형제도에 찬성하고,

가족이나 독도수호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랬다.

같이 무대에 선 이들 중 미운털이 박혀 꼴보기 싫은 사람도,

벌써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 이들도 있었다.

 

'아물지 않은 현대사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시민'들의 가슴엔

특별하고 똑같은 무언가가 콱 박혀 있을 거라고,

그래서 '평화' 같은 가치에 하나로 똘똘 뭉칠거라고 짐작했던 것 또한

나의 지나친 편애일 뿐이었다.

 

 

- 나는 아빠 없이 자랐습니다

- 나는 엄마 없이 자랐습니다

- 나는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 나는 지금 약을 먹고 있습니다

- 나는 10년 이내에 죽을 것입니다

- 나는 전쟁을 겪었습니다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이들에게,

오늘 무대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들에게,

무대 한가운데로 나와 키스를 한 두 명의 중년 여성에게,

나는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당신은 어느 쪽이야?"

남편에게 몇 번인가 묻기도 했다.

 

무대 위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느 쪽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것.

관객인 동시에 주인공인 것.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 100% 대한민국을 이해하고픈 마음.

그것이 이 연극의 힘이었다.

 

하필, 모든 것에 마음을 닫아버리고 싶을 때 이런 연극이라니.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혔다.

 

과연 이번 주말 서울 공연 때도 어제와 같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까.

내가 마치 이 연극의 기획자라도 되는 양 두근거리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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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월호.

많은 이들이 참담한 현실 앞에 분노와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천진하게 웃는 내 아이와 입을 맞출 때마다

배 안에 있는 수많은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이 떠오르고,

혹시나 희망적인 소식이 있으려나 기대하며 기사를 검색하다 보면

목구멍이 꽉 막힌 듯 갑갑해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감정이 격해질 때면 남편을 부둥켜 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기껏 '좋아요'를 누르며 썩어빠진 제도와 권력에 적개심을 드러내고,

이전 대통령의 행적을 따라가며 한때나마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것도 그때 뿐,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제일 괴로운 건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텐데

과연 그게 되겠어? 의심부터 하게 되는 거였다.

 

그럴수록 세상은 점점 내편과 적으로 갈렸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돈에 휩쓸려버린 사회현상에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슬픔을 나누던 SNS 세상도,

이 또한 전체주의적 양상이냐 아니냐로 양분돼 갔다.

 

이러다 또 금방 사그라 들겠지.

나는 더이상 정부를, 정치를, 언론을,

책임감 없는 지도자를 세워낸 들끓는 여론을 못 믿게 되었다.

불신 사회.

슬프지만, 내가 보는, 내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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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부화기에 들어 있던 알에서 병아리들이 막 깨어나고 있었다.

주먹만한 생명체가 두 다리로 서서 삐약거리는게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어찌나 흥분했던지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부모님들께 전화를 걸어 이들의 탄생을 알렸다.

비록 기계의 힘을 빌려 피워냈지만 생명은 귀하고 신기한 존재였다.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와 함께 병아리가 살 집을 만들었다.

커다란 박스에 신문지와 담요를 깔아 푹신하게 한 뒤,

수건으로 한쪽 모서리를 덮어 아늑하게 해주고 온열기를 쬐어주었다.

남편은 현미와 잡곡을 믹서기에 갈았다.

몸뚱이를 맞대고 온열기 쪽에 나란히 붙어 서 있는 병아리들을 쉬쉬하며

한참을 들여다 본 뒤에야 우리 셋은 잠이 들었다.

 

둘째가 태어나 집에 오면 이런 풍경일까,

몇 달 뒤의 상황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래, 우리에겐 아이들이 있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아직 배에 남아 있는 아이들,

귀하고 귀한 우리 아이들.

 

 

아름다운 말만, 생각만 하자는 건 아니다.

좋은 게 좋지, 이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미약하지만, 그리고 어렵겠지만 나부터 해보려고 한다.

100% 대한민국을 즐거운 마음으로, 진심으로 대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우리 아이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길일 테니까.

 

내가 경계해야 하는 건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우리가 공동의 목표, 가치를 위해

연대하고 힘을 합치는 걸 막으려는 자들이다.

국민을 벙어리로, 귀머거리로, 꼭두각시로 만들고, 분열시키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자들,  수구, 독재, 일제 잔재 세력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가장 강력한 힘은 선거에서, 투표에서 나온다.

당장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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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하룻밤 만에 병아리들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시험 삼아 한 마리를 뒤뜰에 내려 놓았는데 어찌나 빨리 도망가던지 겨우 잡았다.

아직 이르다 싶어 다시 박스에 담아 서재로 데려왔는데,

요놈들, 어찌나 소란스럽게 삐약거리는지 정신이 없다.

 

이렇게 내 몫의 하루가 또 저물어 간다.

속은 여전히 복잡하고 착잡하지만 왠지 설렌다.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일들에, 일상에 몰두하고 싶어졌다.

미안한 만큼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그것이, 기쁘다.

아이들아, 너희들도 기뻐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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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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