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밀당의 고수 화순댁의산골마을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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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있는 거지?

 

우다다다다다 온 집안을 휘젓고 달리다 내 품으로 (퍽!) 달려와 안기는 31개월, 네 살짜리 딸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이건 대체 누구 유전자인지. ‘다른’ 사랑을 경험해볼 겨를도 없이 대학 들어가 처음 만난 상대와 결혼을 해 버린 엄마 아빠는 ‘밀당’의 고수 앞에서 늘 무릎을 꿇고 만다.

 

정말 이런 여우가 없다.
특히 어른들 여럿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마치 잊고 있던 중요한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일부러 다른 사람들 보란 듯, 내 어깨에 기대어 귓속말한다. 나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작 그 내용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작고 촉촉한 입술이 내 귓불을 간질이는 행위 자체에 함몰되곤 하는데, 참지 못한 내가 보드라운 몸뚱이를 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으려는 찰나, 요망한 여우는 단호하게 외친다. “그만해!”

 

아빠 등 뒤로 옮겨간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남겨진 내가 약간 슬픈 얼굴을 하면 여우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다시 달려온다. “왜 그래, 괜찮아? 울지 마, 걱정하지 마.” 하고 달래준 뒤, 내 턱을 한 손으로 잡고 살짝 쳐올린 다음 눈을 감고 내 코에 제 코를 갖다 대고서 이쪽저쪽 천천히 움직이는데... 아이처럼 눈을 감고 황홀경에 빠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에게 고백이라도 받은 착각에 빠져, 앞으로 너에게 내 모든 걸 다 바치겠소, 충성을 맹세한다.

 

둘째가 태어난 지난 10개월 중 대략 반년 정도는 나와 아이에게 최대의 위기였다.

 

지금처럼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게 ‘동생을 재운 다음 나가서 신나게 뛰어놀자’는 의미인 줄 몰랐던 아이는 말로만 “알았어!” 하고는 동생이 누워 있는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다 못해 매트리스 위에서 방방 뛰어 기겁하게 했다.
그럴 시기라서 그랬는지, 엄마의 품을, 젖을 앗아간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는지 잠도 무조건 엄마 옆에서 자야 한다고, 밥도 무조건 엄마가 먹여주라고 떼를 부렸다. 옷장, 책상 할 것 없이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고 그 안에 든 것을 다 벌려 놔서 가뜩이나 정리 벽이 있는 엄마 속을 박박 긁었다.
기는 것, 걷는 것, 다 꼴등이고 오로지 몸무게 하나 안 빠지던 아이는 유난히 말이 빨랐다. 그만큼 “싫어! 하지 마! 그만해!” 하는 ‘미운’ 네 살의 언어도 일찍 시작되었는데, 그때는 인내심을 갖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답변하는 일조차 버거울 만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두 돌 무렵이던 언젠가. 둘째를 먼저 재우고 기어이 엄마와 같이 자겠다는 아이 옆으로 와 누웠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준영이 잘도 잔다
따식이도 짖지 말고 꼬꼬 닭도 울지 마라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준영이 잘도 잔다

 

“자장자장 한 번만 더 하고 자는 거야!” 얼른 너를 재우고 자유를 만끽하려는 엄마의 음흉한 계획을 모르는 아이는 흔쾌히 “네!” 한다. 느릿느릿, 그 어느 때보다 정성껏 자장가를 불렀다. 따식이도 짖지 말고 꼬꼬 닭도 울지 말라는 부분에선 감히 혼을 실어 불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1절이 끝난 뒤 숨죽이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한참 지나도 “한 번 더! 계속해줘~”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정말 여기서 끝이야? 가자미같이 눈알만 옆으로 굴려 아이의 동태를 살피는데, 옆으로 돌아누웠던 아이가 내 쪽을 바라보며 한 마디 날렸다.

“엄마, 알라뷰~~”

 

알라뷰? 기계적으로, 귀찮기까지 한 심정으로 오로지 너를 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려던 내 가슴에 꽂히는 사랑의 비수. 아마 남편과 나의 대화에서 배웠겠지. 평소 자주 사랑해~ 고마워~ 하는 말을 무시로 하는데도 왜 그 단어에, 억양에 그토록 가슴이 쿵쾅거렸는지 모르겠다. 화들짝 놀란 기색을 감추고 “그래 나도 알라뷰 준영아~” 하고는 다시 자려고 옆으로 누운 아이를 꼭 껴안았던 그 날 밤, 나는 아마 자장가를 수십 번은 불렀을 것이다.

 

31개월. 아이가 부쩍 컸다고 느낄 때는 아침에 먼저 일어난 내가 자는 아이를 볼 때다. 산골 마을에도 봄이 온 덕분에 요즘은 가볍게 내복에 조끼만 입고 자는데, 두껍기만 하던 허벅지에 소녀의 둥근 곡선이 그려질 때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행복하면서도 아쉬운 탄식이 나온다.

 

넌 어떤 여자로 성장할까?
나는 아이의 말랑거리는 살을 만지작하며 상상에 빠져든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나는 전혀 손이 안 가는 분홍색에 열광하고, 매니큐어를 칠하고 할머니에게 얻어온 고데기를 제 앞머리에 얹어 놓는 걸 보면 분명 엄마보단 미적 감각이 나은 것 같다. 저 매끈한 다리가 훤히 드러난 짧은 치마를 입을 때가 오겠지. 내 립스틱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화장하는 데도 기꺼이 공을 들이는 여자일까? 첫 생리는, 첫 연애는, 첫 배낭여행은? 네가 결혼식을 하는 날, 집으로 돌아온 엄마 아빤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할지도 모르겠구나.
딸 바보 엄마의 상상은 아직 오지도 않은 일에 대한 그리움을 남기며 끝이 난다.

 

가끔 아이가 자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일하다가 아이에게 들킬 때가 있다. 아이는 구슬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엄마~~ 엄마~~” 대성통곡을 하는데, ‘그래 내가 네 엄마지, 그래 네가 내 딸이지.’ 요상하게도 나는 고통스럽게 우는 준영이를 볼 때마다 묘한 안도감 같은 걸 느낀다. 그리고 배 속에 이 아이를 넣고 다니던 때를 떠올린다. 매 순간 너에게 말을 걸고, 너와 함께했던 온전한 날들. 그 시절에 비하면 각자의 몸뚱이로 떨어져 나간 지금은 너나 나나 너무도 외롭지. 아이와 노래를 부르다 말고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아마 아이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곧 살며시 눈을 뜬 아이가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기저귀 갈아줘요.”
유치원 보육교사인 여동생은 준영이 정도의 표현력을 가진 아이가 아직도 기저귀를 안 떼고 있는 건 순전히 ‘양육자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데, 맞다. 나는 기저귀 갈이를 핑계로 아이의 매끄러운 엉덩이를 더듬는 일이 좋다. 아이의 방귀와 응가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며 웃는 일도, 어쩌다 찬물로 아이 엉덩이를 씻겨야 할 때 “앗, 차가워” 하며 황급히 도망가는 아이의 앙증맞은 뒷모습도 너무 사랑스럽다.

지금껏 혼자 뒤집고, 걷고, 뛰었던 것처럼. 겨우 엄마 아빠 하던 아이가 호주로 데려달라는 엄마를 제 등에 태우고는 아빠를 보며 “엄마랑 호주 갈 건데, 아빠도 같이 갈래요?”하는 것처럼, 때가 되면 알아서 할 거란 믿음도 있고. 그저 이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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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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