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는 쉬울 줄 알았습니다만 아이가자란다어른도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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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맘 때 사진입니다. 조카와 두 아이와 하루를 보내면서 오메, 셋은 참말로 징허다.했는데 내년 여름이면 딱 이런 풍경의 일상이 펼쳐지겠군요^^



“세 번째는 좀 낫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호의를 베풀려는 착한 사람들의 말에 허탈한 웃음부터 나온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도 아니고 무려 세 번째니까. 게다가 임신 5개월 차 쯤 되면 없어서 못 먹는 임신 호황기가 펼쳐지는 시기가 아니던가. 안타깝게도 실상은 정반대다. 처음만큼, 아니 그보다 아찔해서 당황스럽다.


난 여전히 입덧에 시달리는 중이다. 아니, 전 임신을 통틀어 가장 심한 입덧을 경험하고 있다. 철분이 부족한 탓인지 입술이 갈라지고 터지다 허옇게 벗겨지기를 반복한지 두 달 가까이 됐고, 감기까지 겹쳐 아이들 밥해주기도 버겁던 지난주엔 두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친정에 다녀왔다.

오직 임신부를 위해 특별 제작된 고동장과 파김치를 안고 귀환했건만. 입덧도 그대로고 고동장과 파김치도 냉장고에 덩그러니 누워만 있다. 온갖 싱싱하고 달달한 과일이 넘쳐나는 계절에 이렇게 축 쳐져 있다니. 그래도 세 번째 라고. 아직까지 입덧이 가시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도 않지만 또 그러려니 한다.


하필 퇴사하자마자 남편이 몇 달 간 다른 지역에서 교육을 받게 됐다. 소위 말하는 독박육아란 걸 처음 해보는 중인데 기특하게도 여섯 살, 네 살 두 딸이 큰 힘이 돼준다. 혼자 먹어야 하는 점심은 대충대충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먹는 아침, 저녁식사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 고달프기보다 오히려 다행이다.

밥상은 최대한 간단하고 간소하게 차린다. 시어머니가 해다 주신 국거리와 반찬, 내가 좋아하는 된장국과 아이들이 잘 먹는 만둣국을 번갈아 준비하고, 계란말이나 계란찜, 소고기볶음이나 감자, 양파볶음에 가끔 생선을 굽고 과일을 낸다. 너무 질린다 싶을 때 데우기만 하면 되는 카레나 스파게티를 차리면 아이들은 최고라며 앙증맞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내가 챙겨야 하는 누군가가 없었다면 난 분명 매일 인스턴트식품에 밀가루를 달고 살았을 것이다.


못 먹는 것도 고역인데 먹은 것을 토해내는 것은 더 못할 짓이다. 나는 자주 헛구역질을 하는 타입은 아니고 한 번 토했다 하면 대형사고가 나는 축이다.


여름에 들어서기 몇 주 전 주말, 캠핑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정말 맛있는 칡 냉면, 지금 이 단어를 자판에 튕기는 것만으로도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면도, 육수도, 시원한 정도도 완벽했던 냉면과 버섯불고기를 만족스럽게 해치우고 차에 올라탄 지 20분쯤 지났을 때였다. 콜드 플레이의 선율에 빠져 거의 잠이 들락날락 하던 찰라, ‘이런 올 것이 왔군!’ 감이 왔다.


난 드라마 주인공들이 하는 것처럼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른손을 허공을 향해 휘휘 저었다. 다행히 세 아이 아빠로 살아갈 남자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릴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그가 재빨리 바깥쪽 차선에 차를 세웠다.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차 문을 열고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나는 맨발의 디바가 되어 허리를 숙이고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고는 격렬하게, 열렬하게 토악질을 해댔다.


눈물, 콧물과 입을 물로 대충 헹군 다음 확인해야 하는 장면은 처참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가끔 출산하다 그런 경우가 있다던데, 하여간 나는 이렇게 토를 하고 나면 목부터 얼굴까지 혈관이 터져서 마치 빨간 점이 온 얼굴을 뒤덮은 것처럼 된다. 대략 열흘 정도 지나면 얼추 가라앉지만 원래 있던 주근깨나 기미와 섞여 있다가 가끔 붉은 빛을 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뒤로 한동안 잠잠해서 이제 호황기가 시작됐군 방심하다 며칠 전 또 한 번 대단한 구토를 하고 다시 의기소침해졌다. 왜 자꾸 이런 증상이 반복될까.

공통점이 있었다. 시원하고 맛있는 냉면, 엄마의 비빔국수. 칼칼한 고추가 들어간 음식, 면, 그리고 식사 뒤 바로 차 안에 있었다는 점. 앞으론 이 세 가지를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미리 잡았던 약속들을 하염없이 미뤘다.


무자비한 입덧을 빼면 임신의 일상적인 증상들이 대부분이다. 눈에 띄게 묵직해지면서 쳐지기 시작한 가슴 밑에 땀이 차고 찌릿찌릿 자극도 시작됐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숨이 찬다. 허리를 삐끗한 것처럼 뻐근해지기 시작했는데 아마 네 살 둘째 아이를 차에 태우고 내리고, 변기에 앉히고 내리고 하는 동작들 때문에 무리가 가는 것 같다. 끝없는 두통과 변비, 더위와 불면, 오락가락하는 감정은 출산하고도 한동안 나의 동반자일 테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확실히 세 번째 쯤 되니까 여유가 있다. 임신 출산 육아가 동반하는 ‘변수가 있다'는 자체에 익숙해졌달까. 지금 겪는 일쯤이야. 출산 뒤 차례차례 닥쳐올 일들에 비하면 양반이란 것도 이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해봐서 아는데, 하는 거드름을 좀 피울 정도로 수월하면 좋겠는데. 일상의 복작거림이나 출산에 대한 공포도 입덧만큼 여전하다.

그러나 이 과정 없이 어찌 우리가 자식과 부모로 만날 수 있으랴. 가끔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가라앉을 땐 정말 너무한다 싶다가도 곧 아이와 나 둘이서만 오롯이 감내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열 달이 더 특별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이런 얼굴로 평생 살아야 한대도 너만 건강하다면, 너만 괜찮다면 나는 괜찮다.'

첫아이 임신 때 구토 후 실핏줄이 터지는 첫 경험을 했던 5년 전. 일기장에 이런 문장을 적어 놓았었다. 


지금도 똑같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다시 임신부가 되었지만 새로운 생명이 품고 있는 변화와 새 날들에 무척 설렌다. 회사를 그만두고 앞으로 몇 년 간은 무조건 열심히 읽고 쓰겠다는 다짐을 할 때만해도 이런저런 계획 세우기에 바빴는데 지금은 오직 눈부신 신록의 아름다움을, 하늘과 바람과 별을, 살아감의 축복을 노래하고만 싶다.

이렇게 익숙한 듯 어색한 듯 나는 또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


아, 그나저나 오늘 점심으로는 뭐가 좋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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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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