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아이들, 어떻게 살려낼까 아이가자란다어른도자란다

한 아이가 밀폐된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8시간 동안 혼자 갇혀있다 의식을 잃었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고작 자판기나 두드리는데도 한숨이 날만큼 푹푹 찌던 지난 주 금요일.

내가 그 날을 기억하는 건 휴가를 앞두고 한껏 상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은 어린이집 등교시간.


인솔 교사는 차량에 남아 있는 아이가 없는지 확인을 안 했고,
기사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세차를 한 다음 대로변에 주차를 하고 내리면서도 아이의 존재를 몰랐고,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 출석 현황 파악을 제대로 안했고,
짙은 틴팅(일명 선팅) 때문에 차량 바깥에서는 내부가 전혀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고 하고...
그 결과, 아이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


이 무시무시한 사건을 오늘 아침, 휴가가 끝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 다음에야 알았다.
친정 식구들과 바닷가에서 놀고 있을 때, 그 내용을 신나게 블로그에 올릴 때, 우리 집 바로 옆 동네 사는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니.

한심하고, 화가 나고, 울화통이 터진다. 가슴이 시리고 머리가 멍하다.


나의 두 딸은 직장 어린이집에 다닌다.
아이들은 양육자와 등하교를 하고, 가끔 원 외부로 나갈 때만 차량을 이용한다.
기관 내에 도서관, 잔디 마당, 텃밭 등이 잘 갖춰져 있어서 외부 활동이 잦은 편도 아니건만.

나는 아이들이 버스를 타야하는 날만 되면 자동으로 불안해진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들의 아찔함을 자주 목격하는 탓이다.


과속, 신호 무시, 난폭한 핸들링을 일삼는 노란색 통학버스.

어른들만 탄 차라면 "무슨 저런 치가 다 있어!" 손가락질 한 번 하고 말텐데. 

저 노란 버스에는 상황 판단도, 대처 능력도 떨어지는 아이들 수십 명이 앉아 있다는 게 문제다.


안전벨트는 제대로 맸을까. 차량 안전 관리, 인솔 교사, 운전기사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나.

육아휴직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의 엄마들은 3개월, 6개월 만에도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는데. 그렇게 어린 아이들은 버스에서 어쩌고 있나.
노란색 바탕에 대비되어 더욱 시커멓게 보이는 창문 너머에는 겁에 질려 우는 아이들이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곤 했다.


뒤늦게야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보니 최근 발생한 통학차량 관련 사고가 내가 사는 광주 지역에서만 벌써 세 번째였다.
특수학교 통학버스 안에서 일곱 살 아이가 죽었고, 주차된 차량에서 두 시간 정도 방치되었던 다섯 살 아이는 다행히 잠겨 있지 않은 문을 스스로 열고 나왔단다.
지금 사경을 헤매는 아이는 네 살이다.


자동차 유리 틴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안전 교육이나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여러 대책이 논의되는 모양이다.
이번 사건의 운전기사와 교사는 입건되었다.
마땅한 지적이고 절차다. 하지만 마음 한 쪽이 허전하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걸까. 왜 똑같은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걸까.

혹시, 우린 좀 더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매일 아침 인솔 교사와 운전기사가 시간에 쫒기는 건 아닐까.

이들의 임금은, 노동환경은 정당한가.
교사, 직원, 운전기사가 좀 더 책임감과 프로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근무 환경을 구축하는 게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아이들 통학차량에 대한 일반 시민의 양보의식은, 우리 사회의 운전문화는 문제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


최근 <한겨레 21>이 추진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가 있다.
이름하야 ‘바글시민 와글입법’.

시민 스스로가 ‘법안’을 만들고, 그것이 제도화할 때까지 감독하고 추진하겠다는 거다.
최저임금 1만원법, 전·월세 상한제법 등 4개 법안 중 1순위로 꼽힌 ‘GMO 완전표시제법’ 을 통과시키기 위한 ‘나는 알아야겠당’이 곧 창당한다는 소식이다.


아이 엄마가 되기 전, 국회의원 정책비서로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 본다.

그때 ‘나는 알아야겠당’ 같은 정당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특정 이슈와 관련된 소비자, 생산자, NGO 단체들로 구성된 당원들(시민)이 토론을 통해 ‘알아서’ 법안을 완성할 테고.

해당 상임위원회 의원들, 지역구 의원들,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알아서’ 압박하고(설득하고).

이쯤 되면 대단한 사회 이슈로 부상할 테니까 언론은 옳구나 하고 ‘알아서’ 널리널리 전파할 테고.
법안 입안자도 수월하고, 지금 당장 필요한 법안도 마구 태어나고.

성공의 경험을 씨앗으로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다양한 이슈를 넘나들며 더욱 활발해질 테고.
그만큼 이 세상은 더욱 살기 좋아질 테고...


상상의 계단을 한걸음 더 올라가본다.
베이비트리에서도 이런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임신, 출산, 육아, 보육, 교육, 아동, 청소년과 관련한 일련의 ‘부모 입법 창구.’
어쩌면, 부모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입법 활동의 최고 적임자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우린 아이들을 지킬 권리를 스스로 지키는 법을 몰랐는지도 모른다.


병원에 누워 있는 아이가 꼭 힘을 냈으면 좋겠다.
얼른 눈을 뜨고 엄마 아빠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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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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