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엄마와 나 아이가자란다어른도자란다

“엄마, 이거 무슨 냄새지? 방구 꼈어?”
눅눅한 수건으로 제 몸의 물기를 닦아주는 엄마에게 다섯 살 꼬마가 묻는다.

방구 아냐, 비가 많이 오니까 수건이 잘 안 말라서 나는 냄새야.
“아, 그래?” 엄마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아무것도 안 걸친 몸으로 최대한 버티고 싶은 아이는 이미 내 손을 벗어나 저 멀리 질주해 가버렸다.

눅눅한 수건에서 방귀 냄새가 나고, 그마저도 못한 빨랫감이 바구니마다 그득그득 쌓여가지만 난 어쩐지 이 계절이 싫지 않다.

아마 ‘장마’라는 단어만으로 떠오르는 풍경 덕분일 거다.


장마에 관한 기억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시로 나오면서 떠나온 나와 내 아버지, 할아버지의 고향, 전북 진안군의 산골마을에 머물러 있다.
산허리에 걸쳐 있는 구름도, 공기도 모두 짙은 회색이던 날. 사방이 어둑해지다 곧 손에 잡힐 듯 커다란 빗방울이 투둑 탁탁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민첩하게 빨래를 거둬들이고 기다란 나무 지렛대로 빨랫줄을 처마 밑에 고정시킨 엄마가 빨간 고무 다라이를 양쪽 처마 끝에 놔두면, 공식적인 장마의 시작이었다.


장마비는 속도도, 양도, 소리도 대단했다.

빗물은 커다란 고무통을 순식간에 채우고 철철 흘러넘쳐 뜰팡을 따라 마당으로, 삽작거리에 있는 개울로 일제히 몰려갔다.
나는 책 한권을 들고 장독대가 있는 뒤뜰 방향으로 작은 쪽문이 나 있던 작은방으로 갔다. 문을 절반 정도 열어젖히고 눅눅한 이불에 누웠다.
그 맘 때 뒤뜰은 온통 녹색 천지였다. 감나무, 밤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오디나무, 탱자나무와 농사꾼 할머니가 취미 삼아 장독대 주변에 심어놓았던 꽃들.

비에도 색깔이 있다면 장마비는 당연히 녹색이리라. 녹색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진한 녹음과 장대비는 무척 잘 어울렸다. 비가 내릴수록 지상의 색깔은 더욱 선명해졌다.


우당탕탕 추추추추 쏴아쏴아.

산골마을에 당도한 심포니, 태초의 음악이라고나 할까.

기왓장으로, 비닐하우스로, 장독대로, 흙 마당으로. 비가 떨어지는 장소마다 소리도, 강약도, 분위기도 다 달랐다. 그 낯설지만 강력하고 웅장한 화음에 압도된 열살 즈음의 나는 가슴이 쿵쾅거려 도저히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왜 아직도 집에 안 오시는 걸까. 거인 같은 장대비를 맞고도 꼿꼿한 저 가녀린 꽃대들의 생명력은 도대체 뭐고.

나는 바깥에서 비를 맞는 이들이 걱정이면서도, 기왕 올거면 우리 동네와 학교가 있는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를 덮쳐버릴 만큼 왕창 내려서 내일 학교에 안 가도 되기를 바랐다.


제각각이던 빗소리가 일정하게 느껴질 무렵 책으로 눈을 돌려본다. 그러나 사실 내가 기다리는 건 따로 있었다. 드디어 인기척이 난다. 아, 고소한 기름진 냄새!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김치전, 호박전을 우물거리고 있을 때면 나는 정말이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행복한 아이였다.


집안 식구가 모두 모이면 엄마는 바빠졌다. 부침개를 한참 더 부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수돗가에 벗어둔 진흙 범벅이 된 옷을 빨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쌀을 안치거나 부침개 하고 남은 채소와 김치, 감자, 풋고추 같은 것을 넣고 칼칼한 수제비를 끓였다. 언젠가 술을 찾는 시아버지를 위해 막걸리를 받아오기도 했겠지.
장마라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의 젊은 날은, 저녁은 늘 분주했다.


엄마가 부엌에 있을 때는 나도 부엌에, 엄마가 수돗가에 있을 때는 나도 수돗가에. 나는 동분서주하는 엄마 옆을 뱅뱅 맴돌았다.
엄마가 밀가루 반죽을 개는 동안 할머니가 밭에서 들고 온 망태기 속에서 엄마가 좋아할 만한 뽀얗고 오동통한 애호박이랑 향이 진한 깻잎을 꺼내왔다. 빛바랜 주황색 바가지에 깨끗한 물을 담고 기다리다가 엄마가 “그만” 할 때까지 반죽그릇에 주르륵 흘려보냈다.
찬장을 열어 소금, 고춧가루가 담긴 그릇 뚜껑을 열어 엄마의 엄지손가락 집게손가락 사이에 끼워주고, 종지에 간장을 담고 깨를 뿌렸다. 진흙으로 범벅인 옷을 빨 때는 고무 다라이에 담긴 빗물을 부지런히 퍼 날랐다.

'바쁜' 그녀를 돕는다는 만족감이 가장 컸기 때문일까. 나는 특히 엄마가 수제비를 뜰 때 바닥에 눌러 붙지 않도록 국자로 한번씩 휘휘 젓는 일을 제일 좋아했다.


2016년. 올해도 장마는 왔다.

며칠 내리던 비가 멈추었던 아침. 사무실로, 유치원으로 출근하기 전,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아이들은 비가 멎고, 그래서 놀이터로, 서점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그저 즐겁다.

나는 남편에게 달려가 안기는 두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으며, 나중에 성인이 된 두 아이가 이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에 대해 생각했다.


개구리 울음소리, 가끔 볼 수 있던 두꺼비와 뱀. 종이배를 띄워보내던 시냇가와 빨간 고무 다라이와 매미 소리와 장대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또래 남자친구와 커다란 소.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내가 물려주고픈 장마 풍경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내가, 엄마가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어갈 테고,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의 아름다움을 기록할 것이다. 그래서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 두고두고 꺼내보며 힘을 얻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기억은, 추억은 그런 존재다.


그저 함께 뛰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주는 것.

살면서 엄마에게 가장 고마운 것도 이거였다.


사는 것 자체가 고달팠을 젊은 날의 엄마가 밥을 지을 때도, 빨래를 할 때도 지친 기색 없이 나와 놀아준 것.
엄마의 소중한 젊은 날의 시간을 기꺼이 우리와 나눠준 것.

갑작스레 비가 내리던 날, 자식에게 유난이라고 시어머니에게 핀잔 들을 걸 각오하고 학교 앞에서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려준 것.


이젠 내가 갚을 차례다.



장마1.jpg


2016 여름, 장마비가 잠시 멈추었던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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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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