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퇴근하는 길 아이가자란다어른도자란다

사무실을 나선 시각 6시.
천천히 걸어서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6시 10분.
지금 일하는 회사의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일 것도 없이 직장어린이집이 운영되는 거라고 대답할 거에요.


매일 6시 10분.
꺅~ 소리를 지르며 두 여자아이와 재회할 때면, 정신없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갈 대부분의 엄마아빠들, 그런 엄마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언니, 친구들을 모두 보내고 놀이터를 나선 시각 7시.
이날은 퇴근길이 단출했어요.
전날 밤 고열이 났던 둘째와 아빠는 어린이집과 일을 하루 쉬고 집에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수족구로 판명이 났지만 ㅜㅜ
어쨌든 그날만 해도 감기가 오려다 멈추었나보다, 가볍게 생각했지요.


평소에 자동차로 슝하고 지나치던 길을 걷는 건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즐겁습니다.
싱그러운 녹음으로 온통 녹색 길 위에는 참견할 것들 투성이에요.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양 손에 쥐고, 바삐 지나가는 개미떼랑 무당벌레 구경도 하고, 여기서 짹짹짹 저기서 지지지지, 마침 퇴근하던 팀장님 할아버지를 만나 인사도 나누고.
시들한 화단의 꽃이 마음이 쓰이는지 다음에는 같이 물을 주러 오잡니다.


문득 우리에게 둘만의 시간이 얼마만이었던가 싶어져요.
아픈 아이에게 얼른 가봐야지 하면서도 어쩐지 재촉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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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힘들다."
"그래? 그럼 좀 쉬었다 갈까?"


벤치에 앉습니다.
아이가 무릎을 베고 눕네요.
15년 전 대학캠퍼스 어딘가에선 네 아빠가 너처럼 엄마 무릎을 베고 있었어...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엄마는 지나온 시간이 아득하고 지금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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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엄마 휴대폰은 뮤직박스.
"준영아, 노래 들을까?"
"어, 또봇!"


아이가 좋아하는 또봇, 엄마가 좋아하는 낭만고양이를 같이 흥얼거립니다.
우리끼리 통하는 또다른 무언가가 생겼구나!
왠지 코끝이 찡해집니다.


배부른 젊은 여자만 봐도 눈물이 나고.
예능프로그램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펑펑 울고.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이 입에서 흘러나와도 울고 싶어지고.
하여간 엄마가 된 뒤로 이래저래 눈물만 많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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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한껏 예쁜 표정을 지어보는데 아이는 마냥 장난꾸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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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을 보며 마구 웃던 우리 모습을 남깁니다.
코 찡긋인걸 보니 이번엔 엄마도 '진짜로' 웃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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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준영이가 1등하는 것보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란 걸 알았으면 하고 기도해.
어젯밤에 태희가 열이 많이 났는데 잘 이겨냈지? 이따가 집에 가서 태희 만나면 칭찬해주자!
엄마가 오늘은 좀 힘든 하루였는데 말야, 준영이와 이렇게 신나게 웃다보니까 그 마음들이 다 사라졌어.

정말 고마워. 엄마의 딸로 태어나줘서.


아이를 등에 업고 말랑말랑한 궁둥이를 조물락거리며 이런저런 말을 건넵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다 이해했을까요?


다섯 살.
벌써 엄마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아이.
첫사랑처럼 애틋한 아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동네 표현대로 '짠한' 마음은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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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희가 사는 곳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수족구 진단을 받은 둘째 아이는 이틀 째 할머니 집에 있고요.
오늘, 집에 오자마자 잠을 자는 첫째도 열이 오르기 시작한 걸 보니 어쩌면 동생과 같은 증상일지도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엄마아빠, 그리고 우리 아이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네요.
모두 편안한 저녁 되세요.
(수족구 조심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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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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