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 글쓰는 엄마> 어떠세요? 아이가자란다어른도자란다

제목을 빈 칸으로 두고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립니다.

없는 건 제목만이 아니에요.

내용도, 사진도, 정해두지 않았어요.

물론 미리 짜 둔 기승전결도 없고요.

이 글이 어떻게 끝날지(과연 끝맺음을 할 수 있다면). 그 결과가 무엇일지는 저도 끝까지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베이비트리에 이런 방식으로 글을 올리는 건 지금이 처음이랍니다.

보통은 아이들이 자는 동안 며칠에 걸쳐 쓰고, 수십 번을 읽고 고친 다음 남편에게 검토를 받아 완성한 글을 기성품처럼 똑같이 복사 붙여쓰기 한 다음 휴 끝냈다, 만세! 하는 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요. 손가락 끝으로 자판을 치는 건 여전해도, 마치 한지로 된 편지지 위에 붓펜으로 천천히, 행여 번지지는 않을까 조심조심하며 글씨를 쓰는 기분이랄까.

오늘 밤 잠들기 전에는 꼭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통해 여러분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저의 진짜 결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런 생각마저 듭니다.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요.

엄마로 사는 것도, 베이비트리에 글을 남기는 것도.

아마 잘하고 싶어서였을 거에요.

육아도, 글 쓰는 것도. 무엇보다 화순의 산골마을에서 사는 일도.

 

1인 출판사만으로는 도저히 못 살겠는 통에 월급을 주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왔습니다.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어도, 가끔 무언가가 날카롭게 가슴을 할퀴고 지나가곤 했어요.

지난 2년 동안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정말 도시로 뛰쳐나올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는가.

누추함, 불편함, 지독한 먹고 살 걱정, 막막함, 두려움, 그리고 전업육아의 짐.

실은 이 모든 것을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이렇게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다른 소재로 연재를 시작하는 건 면목 없는 일이다, 하는 것도 '잘 하고 싶은' 저의 지독한 강박이겠지요.

 

이제 이 괴로움을 조금씩 덜고 싶습니다.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임무같은 비장함보다 꾹꾹 눌러 손편지를 쓰는 설렘으로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요.

"거창한 미래보다 지금의 행복을 선택했어요"

양선아 기자님은 화순에 사는 우리에 대한 기사 제목을 이렇게 달으셨더랬어요.

지금 제 마음이 딱 이렇습니다.

어쩌면 저 문장이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화순에서보다도 더.

 

생생육아에 새 코너 제안을 해주신 양기자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저희의 화순 생활을 응원해주셨던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앞으로 나눌 이야기는 주로 일하는 엄마, 일하는 여자들에 관한 것들이에요. 

그래서 생각해 본 코너명이 <안정숙의 일하는 엄마, 글쓰는 엄마>인데, 여러분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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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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