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세계를 '따라하며' 말을 배우는 아이 화순댁의산골마을육아일기

생후 20개월 째인 아이의 최근 몇달 간 성장 과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언어'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언니, 오빠, 이모, 삼촌' 같이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부터 '맛있어, 귀여워, 예뻐, 무서워, 시원해, 더워, 추워' 같은 서술어, '엄마, 두유 주세요, 물 주세요, 안아 주세요, 토마토 먹어요' 등 두 단어로도 곧잘 말한다.

혼자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거나, 볼펜이나 막대기 같은 것을 귀에 대고 마치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는 것처럼 "네, 네" 할 때는 언제 이렇게 자랐나 새삼스럽다. 처음 듣는 단어나 표현의 경우 마치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 혼자서 여러번 반복하며 익히는 모습도 무척 흥미롭다.

 

 

1.jpg

 

아이의 언어 발달이 단순히 얼마나 다양한 단어를 인지하고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가치관, 좀 더 확장하면 한 사회의 문화와 연관이 돼 있다고 느낀 것은 최근 일이다.

아이는 단순히 부모를 통해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제 상황에 맞추어 재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시골에 사는 덕분에 강아지, 토끼, 닭, 풀, 꽃, 상추, 벌레, 경운기 같은 말은 익숙하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 마트 같은 단어는 인지만 할 뿐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밭에 상추를 뜯으러 가자"고 하지, "마트에 상추를 사러가자"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쓰는 감탄사나 "땡큐" 같은 단어도 아이 입을 통해 고스란히 다시 나온다.

아이가 요즘 좋아하는 책에 샌드위치가 나온다. 내가 몇 번 "아 맛있겠다, 엄마 샌드위치 먹고 싶다" 했더니, 언젠가부터 아이는 샌드위치 그림을 가리키며 "맛있어" 한다.

시골에 살면서 '벌레'와 마주치는 건 일상 중의 일상인데 집안에서 그것들이 출몰할 때마다 내가 호들갑을 떨어서 인지, 아이는 벌레를 보면 "무섭다"고 하거나, 발로 밟아죽인단다(이것은 남편의 증언). 대상을 설명하는 말과 행동에 담긴 부모의 감정마저 아이에게 고스란히 답습되는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의 언어에는 어떤 가치관과 정체성이 스며 있는가.

그 가치관과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그리고 그것은 내 아이가 따라하기에 안전하고 바람직한가.

 

 

 2.jpg

 

이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가장 끔찍했던 건 낱낱이 까발려진 한국 사회의 민낯, 그리고... 일련의 사태를 묵과해온 힘 없고, 용기 없는 우리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지도층의 비리, 부도덕, 무책임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수많은 열사와 민초들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때 그들에게 총칼을 겨눈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 기득권 세력이 되었고, 정치권과 재벌기업으로 안착한 그 자손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주 투사, 노동자, 시민, 학생, 그리고 개발의 미명 아래 자연과 사람이 죽고 파괴당했다. 바로잡아 보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빨갱이, 종북'으로 몰리면 게임 끝.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한 보호나 정의, 평등, 평화와 같은 가치 대신 물질만능주의가 점령해 버렸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됐을까.

왜 우린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우린 어려서부터 감정을 통제하는 데 익숙했던 것같다. 아니,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다는(가르침 당해온)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 사회 폭력, 국가 권력기관의 폭력...

이렇게 억압사회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위정자들이 어떤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도 '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불가피한 것으로 축소시켰다. '그놈이 그놈'이란 말로, 그들의 부정부패를 눈감아 주었다.

그러니 잘못을 저지른 이들도 본인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죄할 필요가 없었다.

얼렁뚱땅 책임을 전가하고, 진실을 조작하고 은폐하며 시간을 벌다보면 어느새 잠잠해지니까. 어차피 이번 선거에서도, 다음 선거에서도 국민들은 또 달콤한 권력을 부여해 줄 테니까. 이것이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반복해온 역사였다.

 

 

 3.jpg

 

"사랑해, 고마워, 예뻐, 귀여워, 미안해~"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 중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지만 나는 '미안하다'는 말에 유난히 마음이 쓰인다. 아니,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미안해"는 "사랑해, 고마워" 같이 예쁜 말과는 다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힘든' 말이다.

아이 역시 저 단어들 중 '미안해'를 가장 어렵게 배웠다. 왠일인지 "이럴 땐 미안해요 하는 거야"하면 처음엔 억울하단 듯이 울기부터 했다. 어리긴 해도 그 표현이 필요한 상황의 무게감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나는 이 사회에 더욱 많은 의구심을 품을 것이다.

사실 세상은 온통 내가 부딪혀온, 깨부셔야 할 것들 투성이다.

 

"여자애가 조신한 데가 있어야지." 나는 어려서부터 '아들, 벌초감' 밖에 모르던 할아버지와 앙숙이었다.

남녀고용평등, 여성의 일과 가정(육아) 양립 정책의 확립은 남성 위주, 가부장제 사회의 폐단을 완화시켜줄 것이다.

"손가락 빨지 마라, 오른손으로 먹어라, 그건 위험해 하지마!" 혹독하고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5.18을 겪으며 세 아들을 키워낸 시아버지의 말 속에는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숨어 있다.

조기교육이 어쩌고 하며 부모의 심리를 자극하는 온갖 광고들. 유치원에서 밥을 먹을 때 조차 순위를 매기는, 남보다 앞서가는 게 잘 사는 것이라는 그릇된 교육 이데올로기.

몇 개월에 젖을 떼고, 기저귀를 떼고, 한글, 숫자를 떼고... 하는 육아에 대한 획일적인 지침들.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내 편, 네 편 선 긋기를 좋아하는 흑백논리들...

 

 

 4.jpg

 

그러나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나도 모르게 내 언어와 행동, 삶에 스며든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들을 먼저 풀어놓아야 한다.

부모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사고하고, 정의와 평화를 삶에서 실천해야만 내 아이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이 떠오른다.

가치 있는 삶을 살며 가치 있는 생각을 하는 것. 이것이 어찌 글쓰기에만 국한된 이야기랴.

 

TAG

Leave Comments


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