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아이가 가르쳐주는 사랑 화순댁의산골마을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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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네 옆에서 자고 있지 않다는 걸 넌 어쩜 그리 잘 아는 걸까.

 

이른 아침, 네가 조금 더 자야 하는 시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깨금발로 화장실로 왔건만,

곧 투투투투 하는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빼꼼히 문이 열리며 등장하는 반가운 얼굴.

 

화장실 앞에 턱하니 앉아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너를 얼른 안고 싶어

서둘러 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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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아 달라, 뽀로로를 틀어 달라, 네 방에 가서 놀자며

엄마가 일하는 노트북 곁을 어슬렁대는 네가 조금 귀찮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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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다려줘. 엄마가 금방 마무리 하고 놀아줄게."

 

방바닥에 앉혀 놓고 놀거리를 주었는데

너는 계속 엄마 엄마 엄마, 엄마만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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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열 번 쯤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한참 지나 뒤돌아 보니

넌 다시 잠이 들었다.

 

잠자리로 옮기려고 조심스럽게 너를 안는다.

온기 없는 방바닥에 금새 서늘해진 네 뺨,

밤새 척척해진 기저귀,

조그맣고, 귀엽고, 단단한 허벅지와 엉덩이, 그리고 너의 숨결.

 

아, 너와 눈을 맞추고

너와 한바탕 논 다음에 해도 충분한 그저 그런 일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음성을 모른척 했다니.

네가 처음 나를 '엄마'라고 부르던 날의 감동을 잊은 채

너에게 등을 보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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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내일 아침 네가 일어나면 온전히 너에게만 집중할게.

엄마가 먼저 네 방으로 가서 놀자고,

신발 신고 따식이와 꼬꼬야와 토기를 보러가자고 할게.

내려 달라고 할 때까지 안아주고, 노래를 불러줄게.

 

너그러운 너는,

너의 모든 사랑을 다 쏟아부어주는 너는,

엄마가 오락가락 한다는 것 따위 어느새 잊고

"준영아!"하고 부르면 곧장 달려와 안기고, 뽀뽀해 주고,

그 환한 미소를 지어주겠지.

그렇게 엄마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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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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