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보다 더 좋은 말 없을까요? 생생육아 칼럼

내가 품은 아이, 좋은 말로 좋은 에너지 받도록

제1166호
 
물타기연구소 홍보국장의 자녀. 첫딸을 낳고 둘째 아들을 입양했다. 조혜숙 제공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유기견 입양이 화제가 되면서 ‘입양’이란 말이 자주 언론에 등장했다. 사람 아닌 동물에게까지 입양이란 말을 쓰는 것에 입양가족들 사이에서 문제 제기가 되곤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동물도 가족의 일원’이라는 정서가 자연스레 반영된 세태일 것이다. 이젠 쓰임이 더욱 확대되어 ‘도로 입양’ ‘도시공원 입양’이란 말까지 등장하니 입양가족으로서는 새로운 단어를 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들여서 키운다’는 뜻의 ‘입양’보다 더 좋은 말이 없을까?

고심 끝에 내가 찾아낸 단어는 ‘양연’(養緣·인연을 키움)이다. 한자를 달리하면 ‘좋은 인연’(良緣)이란 뜻도 있으니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발음상 좀더 자연스러운 순우리말이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내가 속한 입양가족모임 ‘물타기연구소’에서 좋은 단어를 공모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응모는 내 개인 메일(juin999@hanmail.net)로 하고, 당선자에게는 물타기연구소의 영예로운 감사패를 드릴 예정이다.

입양을 사회구조의 문제로만 보는 이들은 ‘인연’이나 ‘운명’이라는 말과 관련짓는 것을 비판한다. 재난국가와 선진국 간의 국제 입양에서 일부 비윤리적 과거사가 있었으니 이런 비판에도 일말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입양은 구조적 문제 외에 혈연에 대한 배타적 집단의식이 깔려 있어 그리 간단치 않다. 이렇게 복잡한 시선이 교차하는 입양에 대해 나는 ‘인연’이라는 말을 쓰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비주의나 감상적 포장이라 여길지 몰라도 내게는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입양이란 말만큼 ‘버려진 아이’ ‘주워온 아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다엘이 초등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학교 마당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우르르 내게 몰려와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다엘을 주워온 거냐고. 당시 학부모들 대상으로 입양 강의를 했지만 아이들과는 얘기를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답했다. “아기는 누가 버려서 주워오는 물건이 아니야. 키울 준비가 안 된 사람이 아기를 낳았을 때 입양기관에 가서 부탁하게 돼. 그곳에서 아기를 잘 키워줄 부모님을 찾아주는 거야.”

실제 참담한 장소에 유기되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로서 준비되지 않은 이들이 버리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양육할 권리’라는 사실을 새겨본다. 나는 ‘버려진 아이’라는 말 대신 ‘해연(解緣·인연이 해체됨)아동’이라는 표현이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언젠가 이런 뜻이 담긴 쉬운 우리말을 찾아 쓸 날이 오길 기대한다.

입양을 보내는 이유가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아서’라고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자칫 입양부모도 상황이 나빠지면 양육을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되지 않도록 입양자녀에게 설명할 때 더욱 신중해야 한다.

물타기연구소가 국가정책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 정식으로 건의한 내용이 있다. 현행 교과서에 가족이 되는 방법으로 ‘결혼·출산·입양’ 세 가지가 실려 있는데 이를 ‘결혼, 생명을 품기’ 두 가지로 바꿔달라는 건의다. 입양아는 출산을 통해 세상에 오지만 입양을 거쳐 비로소 가족을 만난다. 출산은 생명이 세상에 오는 방법일 뿐 가족이 되는 방법은 아니다.
입양가족이 용어에 공들이는 것은 내가 품은 아이가 주변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으며 크길 원해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이 글은 한겨레21 제1166호(2017.6.19)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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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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