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만난 생태주의 생생육아 칼럼

다엘의 겨울방학을 맞아 뉴질랜드 시골의 친지 집을 방문했다.
14년 전 이민을 택한 오빠네 가족을 방문하는 여행이었다.
오빠네는 이민 생활의 많은 시련을 겪은 후, 작년에 도시 외곽의 숲 속 집으로 이사한 터였다.
건축가인 전 주인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은 오래된 카우리 나무에 둘러싸여 자그마해 보였지만,
집 안 구석구석 가장 아름다운 경치에 시선이 닿는 방향으로 창이 나 있었다.
창을 통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과
창 밖의 초록색 나무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풍경은 참 보기 좋았다.

 

풍경.jpg » 거실 뒤쪽의 작은 창으로 보이는 풍경. 이런 경치를 담기 위해 건축가 할아버지가 열심히 설계도를 그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오빠 부부는 뜰 곳곳에 텃밭을 마련해서
유기농 채소를 자급자족하려는 시도 중이었고
가족들의 소변을 모아 액화비료를 만들어 쓰는 등 복고풍의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다엘은 얼마 안 가서 집안의 온갖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숙모가 텃밭 일을 할 때 앞장 서서 따라가고
이른 아침 삼촌이 마당에 널린 나뭇가지와 개의 배설물을 치울 때마다 함께 했다.
밭에 물 주기는 기본이요, 자신의 자랑스런 수확물인 듯 각종 채소를 따왔다.

 

어느 날은 앞집에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금방 친구가 되어 양쪽 집을 오가며 놀았다.
아는 표현이라곤 두세 마디밖에 없던 다엘의 영어가 일취월장할 거라고 다들 기대했으나
얼마 안 가서 앞집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해 있었다.

 

인적 드문 시골이라 수도 시설 대신 물탱크에 빗물을 받아서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기 때문에
비가 잘 오지 않는 여름철인 지금은 때때로 물 배달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세탁기를 드물게 돌리는 건 물론이고 샤워도 조심조심 물을 아끼며 하거나
물에 잘 분해되는 효소 비누 하나 들고 집 앞 개울에 씻으러 가곤 했다..
가족 모두 이런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방문객인 우리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적응하기 시작했다.
평소 샤워를 싫어하던 다엘은 이게 왠 떡이냐 싶은 듯
며칠이 지나도 씻을 생각을 안 하며 좋아했다.
나는 마음껏 물을 낭비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씻을 때마다 어린 시절 불편했던 때의 향수(?)에 젖기도 했다.

 

예전에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자급자족과 무상교육을 실천하는 변산 공동체를 다녀왔는데
화장실 사용과 목욕이 어려워서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곳에선 재래식 화장실에다 변을 본 후, 재로 덮어 묵혀서 퇴비로 쓰고 있었다.
변산 공동체를 일군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을 최근에 만났을 때,
‘다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변산으로 오라’는 말씀을 듣고
맘에 걸렸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소소한 편의성을 포기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껏 깨끗함을 강조하는 문화에 물들어 살다 보니
배설물은 최대한 눈에 안 띄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배운 것은 그 반대였다.
숨결이 들고 나는 것처럼 음식이 내 몸으로 들어왔다가 밖으로 나가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극히 자연스런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새길 수 있었다.

 

세계 곳곳에 생태주의 공동체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내가 돌아갈 곳이 저런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 작은 가능성을 뉴질랜드에서 보았다.
첨단 농법을 피하고 기다림과 느림을 기본으로 한 텃밭 농사를 통해
땅에서 난 채소를 바로 뜯어 식탁에 올리는 일,
명상하는 마음으로 밭의 식물을 하나하나 돌보는 모습,
지천으로 널린 자연의 혜택도 최대한 아끼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웠다.

 

그간 나의 관심은,
다엘이 대안학교를 나온 후 주류 사회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진입하느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안적 삶을 찾아 나서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생태주의를 실천하는 삶이었고,
지금은 막연하게 윤곽만 그려보며 꿈꾸는 수준이지만
이를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변산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고
작년 여름에 참석했던 땅끝마을의 템플 스테이도 마찬가지였다.
다엘은 암자에서 스님과 함께 된장을 풀어 넣은 라면에 찬밥을 말아 먹었던 일,
차담을 하며 있었던 일 등을 종종 얘기하곤 했다.

 

내가 굳이 상세한 설계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가슴 가득 대자연을 품는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틀에 박힌 삶이 아닌 대안적 길을 다엘이 스스로 찾길 바란다.

 

국가 투명도가 최상위권이면서 복지 기반도 탄탄한 뉴질랜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볼 때 이상향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얼만큼이었겠는가.
대안적 길은, 남이 만든 이상향에 무임승차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고난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뉴질랜드에서만 자라는 카우리 나무는 최대 4천 년도 넘게 산다고 한다.
오빠네 집의 카우리 나무들은 80년 정도 된 걸로 추측하는데
마당 한 쪽 나무 밑에는 전 주인 할아버지가 세운 작은 기념비가 있다.

 

memory1.jpg » 할아버지의 딸이 세상을 떠난 후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담아 세운 기념비. 생전에 고인은 이 집의 뜰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100년도 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오래 된 나무 앞에서 다시 새겨 보고
지금 살아있는 이들이 모두 사라져도 울창하게 남을 이곳 나무들을 생각했다.
뉴질랜드의 숲 속 집에서 생태주의 삶의 한 자락을 맛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묵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삼촌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몸과 마음이 부쩍 자란 다엘도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마루와다엘3.jpg » 삼촌 집 뜰에서 애완견 ‘마루’와 함께 한 다엘.

 

 

TAG

Leave Comments


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