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이 우스꽝스러운 버스는 교통 대안이 될까 자동차교통

teb10.jpg » 2016년 5월 공개된 터널버스 모형. 유튜브 갈무리

 

짐 데이터의 미래학 제2법칙

 

“미래에 유용한 아이디어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법이다.” 앨빈 토플러와 함께 대안미래학의 길을 개척한 미래학자 짐 데이터(전 하와이대 교수)가 말하는 ‘미래학의 제2법칙’이다.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들은 그 당시의 눈으로 보면 엉뚱하고 비합리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그는 미래의 이머징 이슈를 판별하는 기준의 하나로 이 법칙을 활용하라고 권한다. 

 

teb4.jpg » 미국의 두 건축가가 교통 정체 해소를 위해 제안한 랜드라이너 상상도. 구글북스

 

1969년 뉴욕 건축가가 제안한 '랜드라이너'


1969년 미국의 젊은 두 건축가, 크레이그 호젯트(Craig Hodgetts)와 레스터 워커(Lester Walker)가 제안한 새로운 도시 운송수단은 이 미래학 제2법칙의 사례로 꼽을 만하다. 그들은 당시 뉴욕의 교통 정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한 끝에 기발한 착상을 했다. 도로 양쪽 끝에 베어링 레일을 깔고, 그 위에 길쭉한 다리를 단 열차를 달리게 하자는 것이다. 열차가 지상에서 몇미터 떨어져서 다니는 만큼 도로 정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열차 아래로는 버스와 승용차들이 지나다닌다. 이들은 이 운송수단으로 보스턴과 워싱턴까지 왕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보스-워시 랜드라이너’(Bos-Wash Landliner)라는 이름을 붙였다.

 

landliner.jpg » 랜드라이너 구상이 실린 1969년 2월24일치 <뉴욕 매거진>. 구글북스

 

 

버스를 집어삼키듯 들어올린다

 

그해 2월24일치 <뉴욕 매거진>에 소개된 랜드라이너의 개요는 이렇다. “보스턴행 랜드라이너가 센트럴 파크의 저수지 지역을 전속력으로 달려 통근자들을 태운 버스를 싣고 내려준다. 랜드라이너의 높이는 지상 5미터. 마찰력이 거의 없는 에어쿠션 베어링 위를 달린다. 랜드라이너의 폭은 도로 폭에 맞춰 60피트(18미터)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200마일. 도로 양 끝까지 걸쳐 있는 모습이 마치 진공청소기를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랜드라이너 안에는 극장, 체육관, 레스토랑, 스낵바, 무도회장, 회의실, 전망대 등이 갖춰져 있다. 랜드라이너는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와 같은 속도(시속 60마일)로 달리다 큰 갈고리를 내려 버스를 들어올린다. 달리는 속도는 컴퓨터로 제어된다. 버스가 랜드라이너 안으로 들어올려진 뒤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랜드라이너의 시설들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teb0.jpg » 2010년 발표된 터널버스 완성도. TEB 제공

 

40여년 뒤 베이징에 등장한 터널형 버스

 
당시로선 너무나 엉뚱한 발상이었던 탓일까? 이 아이디어는 결국 아이디어로 그치고 말았다. ‘다리가 달린 운송수단’ 발상은 40여년이 지난 뒤 태평양 건너 중국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10년 중국 선전의 선전화스미래주차설비라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수석연구원 송유저우가 제13회 베이징하이테크엑스포에 랜드라이너와 흡사한 운송수단을 들고 나온 것. ‘스트래들링 버스’(Straddling Bus, 다리를 벌리고 달리는 버스라는 뜻)라는 이름의 이 운송수단 역시 랜드라이너와 마찬가지로 길쭉한 양 다리로 선로 위를 달리고, 그 아래로는 승용차들이 지나다닌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터널이 움직이는 듯하다 해서 터널버스라고도 불린다. 그는 별도의 도로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도 한 번에 1천명이 넘는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버스라고 설명했다. 이번엔 반응이 달랐다. 베이징 당국은 곧바로 시험트랙을 건설해 타당성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해 이 운송수단을 ‘올해의 50대 발명품’으로 선정했다.

teb1.jpg » 터널 버스 아래로는 높이 2.1미터 이내의 차량만 다닐 수 있다. TEB 제공

 

악명 높은 베이징 교통 체증의 해결사로

 

그가 터널형 버스를 구상하게 된 건 베이징의 극심한 교통 체증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내비게이션 회사 톰톰(TomTom)은 지난해 세계 최악의 교통정체 도시 50곳 가운데 약 3분의 1이 중국 도시들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도시 교통 정체 현상이 갈수록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한 해 2천만대가 넘는 새 자동차가 도로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득이 늘면서 자가용족의 꿈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탓이다. 2020년께는 신규 등록 차량이 한 해  3천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국에선 주차장과 번호판 발급 규정을 엄격히 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처하고 있지만 언발에 오줌누는 격이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행렬도 교통 체증을 악화시킨다. 2015년 현재 56%인 중국의 도시화율은 2020년 60%로 높아질 전망이다. 4년 안에 도시 인구가 6천만명 가까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의 예상대로 2030년 도시화율이 70%까지 치솟게 되면 2억명이 더 늘어난다.

 

teb2.jpg » 터널버스 탑승장의 옥상은 주차장으로 쓰인다. TEB 제공

 

높이 2미터 이내 승용차가 터널을 지나듯


터널버스는 그러나 당시 경제성, 안전성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시험트랙 건설이 취소된 이후 한동안 뉴스에서 멀어졌다가 6년만인 올해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송유저우는 이번엔 TEB(Transit Explore Bus)과학기술발전유한공사라는 업체 이름으로 지난 5월 제19회 베이징 국제하이테크엑스포(19th International High-Tech Expo)에 참가해 터널버스 시스템의 축소모델을 선보였다. 터널버스의 총길이는 58~62미터, 총높이는 4.5~4.7미터다. 2개 차로에 걸쳐 있는 터널버스의 폭은 7.8미터다. 터널버스는 네 개의 칸으로 구성돼 있다. 2층으로 된 각 칸의 길이는 12미터이다. 위층은 승객들이 앉는 공간이고 아래층은 양쪽 다리 부분으로 탑승하고 하차하는 공간이다. 다리 높이는 2.1~2.2미터이다. 따라서 높이가 2미터 이내인 승용차는 터널버스 아래를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다. 운행 속도는 평균 시속 40킬로미터, 최고 시속 60킬로미터이다.

 

teb11.jpg » 터널버스는 한 번에 최대 1200명을 태울 수 있다. TEB 제공

 

일반 버스 40대와 맞먹는 수송 능력


최대 탑승 인원은 버스 한 칸에 300명씩 모두 1200명이다. 일반 버스 40대와 맞먹는 수송 능력이다. 베이징 간선도로 40킬로미터 구간에 40대의 터널버스를 투입할 경우, 매일 40만명을 실어나를 수 있다고 한다. 업체 쪽은 터널버스가 베이징 간선도로의 교통 체증을 35% 이상 줄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지하철보다 제작비 싸고 건설기간도 짧아


이 버스의 가장 큰 장점은 수송 능력은 지하철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건설비용은 지하철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점이다. 이 업체가 추정한 제작비용은 킬로미터당 1억2천만위안이다. 6억위안에 이르는 지하철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차량 제작 및 선로 건설 기간도 5~6년 걸리는 지하철에 비해 훨씬 짧아 1년이면 족하다고 한다.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는 점도 터널버스의 장점이다. 베이징의 대기오염을 고려한 선택이다.  현재 중국에서 버스 한 대가 소비하는 연료는 연간 21.6톤에 이른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66톤이나 된다. 터널버스 한 대가 40대의 기존 버스를 대체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864톤의 연료와 2640톤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35701979f77f1918b9f7b783b01210f0.jpg » 시범 운행할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TEB 제공

 

지하철과 BRT 장점을 결합했다


베이징에는 4가지 유형의 대중 교통수단이 있다. 지하철, 경전철, BRT(도심과 외곽을 잇는 간선도로를 전용차로로 달리는 급행버스), 그리고 버스다. 지하철은 지상 공간과 교통 체증을 유발하지 않지만 건설비가 많이 들고 제작 기간도 오래 걸린다. BRT는 도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소음과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게 단점이다. 친환경적이면서도 교통정체를 해소해주는 경제적인 대중교통수단은 없을까? 이 버스는 이런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법이다. TEB는 “터널버스는 BRT와 지하철의 이점을 결합한 운송수단”이라고 설명한다.

 

teb8.jpg » 지난 5월 열린 베이징하이테크엑스포 전시장에 설치한 TEB의 터널버스 시스템 모형. 유튜브 갈무리

 

8월중 허베이성 친황다오에서 첫 시범운행


TEB는 올 여름 시범 운행을 목표로 현재 장쑤성 창저우에서 실물 차량을 만들고 있다. 이미 난양(허난성), 친황다오(허베이성), 선양(랴오닝성), 톈진, 저우커우(허난성) 등 5개 도시와 시범운행 계약을 맺었다.  왕펑 선양상공회의소 회장은 “2010년엔 단지 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라고 말했다. 선양시 당국은 지난 5월 19킬로미터의 시범트랙을 건설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들 도시는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수백킬로미터의 시범트랙을 건설할 예정이다. 터널버스의 첫 시범 운행은 올 여름 친황다오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친황다오는 1킬로미터 길이의 시범트랙을 만들고 있다. TEB는 고속도로에 투입할 수 있는 차세대 터널버스도 연구 개발 중에 있다고 밝혔다.

 

teb12.jpg » 터널버스의 내부. TEB 제공

 

원저작권자 호제트의 반응은?


애초 제기됐던 안전성 문제는 해결됐을까? TEB는 안전을 위해 터널버스가 지나가는 트랙과 일반 차로 사이에 가드레일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충돌시 충격을 70% 가량 흡수해 버스와 다른 차량의 피해를 줄여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터널버스 안쪽에는 높이 2.1미터 이내의 차량 운행만 허용된다. 코너를 돌 때는 아래쪽에 있는 차들은 버스가 다 돌 때까지 기다리도록 했다.
중국의 터널버스 소식을 들은 뉴욕의 건축가 호제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중국의 터널버스를 계기로 자신의 옛 아이디어가 다시 거론되는 것을 기뻐하며 “놀라운 전환”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이제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 저작권에 대해서는 “일단 아이디어가 공개되면 저작권은 없다. 나는 그것이 공공의 영역에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 다가와서 그것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이 터널버스는 과연 교통 체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도시들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출처
http://english.china.com/news/china/54/20160523/665098.html
http://fortune.com/tag/youzhou-song/
http://www.nytimes.com/2016/05/27/world/asia/china-elevated-bus.html?emc=eta1&_r=0
http://www.citylab.com/tech/2016/05/can-chinas-futuristic-straddling-bus-finally-become-a-reality/483953/

https://en.wikipedia.org/wiki/3D_Express_Coach

http://www.treehugger.com/cars/3d-fast-bus-is-taking-a-long-time-coming-like-40-years.html
http://www.treehugger.com/public-transportation/watch-straddle-bus-eat-cars-it-speeds-down-highway.html
<뉴욕매거진> 랜드라이너 기사
https://books.google.co.kr/books?id=ZccDAAAAMBAJ&pg=PA36&dq=Landliner&hl=en&ei=qlfPTKmOI4umsQOyysmfAg&sa=X&oi=book_result&ct=result&redir_esc=y#v=onepage&q=Landliner&f=true
2010년 송유주의 프리젠테이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v8_W2PA0rQ
버스 시뮬레이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piFJsWdCuY

https://www.youtube.com/watch?v=APybYjcm_j4

 

2010년 기사
http://www.nytimes.com/2010/08/18/business/global/18bus.html?_r=0
http://www.chinahush.com/2010/07/31/straddling-bus-a-cheaper-greener-and-faster-alternative-to-commute/
http://cleantechnica.com/2010/08/03/3d-fast-bus-in-china-goes-over-cars/#more-13628
2016년 박람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APybYjcm_j4
2010년 타임이 선정한 50대 발명품
http://content.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2029497_2030622_2029706,00.html
http://content.time.com/time/specials/packages/0,28757,2029497,00.html

TEB 회사 홈페이지
http://www.tebtech.com.cn/intro/technology.php

TAG

Leave Comments


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