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달에 인류문명실록을 보내다 우주항공

arch1.jpg » 달 도서관을 구성하는 니켈 디스크 25장의 맨윗부분. 아치미션재단 제공.

남는 것은 기록뿐...영원한 기록 남기기

 

조선왕조 5백년의 기록이 담긴 조선왕조실록이 숱한 전쟁과 화재 등에도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건 여러 곳에 사본을 보관해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전국이 쑥밭이 되고 중요 시설이 화재로 사라졌던 임진왜란 때도 전주에 있는 보관소는 화를 면해 기록을 보전할 수 있었다. 조선의 조정은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은 뒤론 아예 보관소를 오대산, 태백산 등 깊숙한 산속에 만들어 보안을 더욱 강화했다. 그럼에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부가 사라졌다. 하지만 여러곳에 같은 기록이 있던 덕분에 방대한 기록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조선 역사를 들여다보는 창문 구실을 하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구에서 번성한 인류 문명도 예외가 아니라면 그 기록도 어딘가엔 남겨야 하지 않을까? 지구 환경이 위태롭다면 보관 장소는 지구가 아닌 우주가 그럴듯해 보인다. 극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이런 문제의식에서 아주 먼 훗날 일어날 수도 있는 비상사태를 대비해 인류문명의 디지털 실록을 만들어 우주 서고에 보관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arch2.jpg » 디스크 상단은 디지털 판독장치가 없더라도 읽을 수 있도록 아날로그 이미지와 문서들로 구성했다. 아치미션재단 제공

아치미션재단의 억만년 보관소 프로젝트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곳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 `아치 미션 파운데이션'(Arch Mission Foundation)이다. 2015년에 출범한 이 재단은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억만년 보관소'(Billion Year Archive)라고 붙였다. 적어도 10억년 이상 존속할 수 있는 기록물을 만들어 남긴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들이 만든 디지털 실록이 현재 달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지난달 이스라엘의 민간 비영리기업 스페이스일이 쏘아올린 최초의 민간 달 탐사선에 실려 있는 이 기록물의 이름은 `달 도서관'(Lunar Library)이다. 애초 타임캡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기록물은 3천만쪽 분량의 인류 역사와 문명에 관한 데이터를 담은 DVD 크기의 저장장치다. 먼 훗날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인류가 습득하고 쌓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후손이나 외계 문명에 전달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문명 백업 프로그램의 첫 성과물이다. 4월11일 달 착륙선 베레시트가 달 표면에 착륙하게 되면, 이 디스크는 최초의 달 도서관이 될 것이다. 

arch8.jpg » 달 도서관은 얇은 니켈 디스크 25장을 겹겹이 쌓아 만들었다. 아치미션재단 제공

 

200기가 바이트의 인류문명기록 담은 `달 도서관'


내용 중엔 이스라엘의 역사와 노래, 어린이그림 등 이스라엘과 관련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위키피디아 영어판, 수만개의 소설과 논픽션 책자들, 롱나우재단이 만든 5천개 언어의 15억개 번역 샘플 등 백과사전식 지식정보들이다. 용량은 200기가바이트가 넘는 이 정보들이 두께 40마이크론, 크기 12cm의 아주 얇은 디스크 25장에 새겨져 있다.

재단은 디스크의 상단 네 장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날로그 이미지를 새겨 넣었다. 여기엔 6만개의 책과 사진, 일러스트, 디지털 데이터를 읽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자료 등이 들어 있다. 특히 맨 윗부분은 디지털 판독장치가 없더라도 현미경으로 100배만 확대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아래 디스크 세 장에 담겨 있는 이미지와 문서를 읽으려면 1000배율의 현미경이 필요하다. 나머지 23개 디스크는 디지털로 기록한 데이터들이다. 

bere2.jpg » 이스라엘의 민간 달 착륙선 베레시트에는 `달 도서관'으로 명명된 디스크가 들어 있다. 스페이스일 제공

수명이 수천년에 이르는 특수 니켈 디스크


물론 이 기록들은 디스크가 달의 엄혹한 자연환경을 벼텨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재단은 그래서 달 온도보다 10배나 더 높은 온도에서도 데이터가 끄떡없는  저장장치 개발을 지원했다. 나노피치(Nanofiche)라는 이름의 이 저장장치는 값이 저렴하고 내구성이 매우 좋은 니켈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니켈은 스테인리스강의 주된 소재로 단단하면서도 부식에 강한 금속이다. 디스크 전체는 보호 봉투와 절연 물질로 씌웠다. 니켈 디스크의 내구력은 얼마나 될까? 재단이 구현하고 싶어하는 궁극적인 내구 연한은 태양의 남은 수명으로 예측되는 60억년이지만 아직 이런 기술은 없다. 재단은 일단 평소 달 표면에 떨어지는 작은 운석은 디스크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로선 수억년, 수십억년간 온전하지는 못하겠지만 1천만년 이상, 잘 하면 5천만년은 버텨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기록보다 100만배는 더 긴 기간 동안 기록을 보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arch6.jpg » 2018년 2월 스피에스엑스의 팰컨헤비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전기차 로드스터엔 우주복을 입은 인형 스타맨과 함께 아시모프의 SF 소설을 담은 디스크가 실려 있다. 스페이스엑스 제공

우주 보관소 영감을 준 아시모프의 파운에디션 시리즈

 
사실 이 재단이 우주 공간에 인간문명에 관한 데이터를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재단은 앞서 지난해 2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가 우주로 보낸 전기차 테슬라 로드스터에 석영디스크를 태워 보냈다. `태양계 도서관'으로 명명된 이 첫 우주 디스크에는 유명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담겨 있다. 재단 설립자인 시맨틱 웹의 개척자이자 IT벤처 투자자 노바 스피백(Nova Spivack)은 가상의 은하제국을 다룬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이 프로젝트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로드스터는 지금도 타원형으로 태양 궤도를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은 지난해 10월엔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성 스페이스체인에 영어판 위키피디아 디스크를 실어 보냈다. 이 디스크에는 `저궤도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는 미국의 우주로봇 개발업체 아스트로보틱(Astrobotic)이 2020년을 목표로 추진중인 달 착륙선에 두번째 `달 도서관'을 담아 보내는 것을 협의하고 있다. 재단은 일부가 사라지더라도 기록 보전에 큰 영향이 없도록, 가능한 한 많은 우주 공간에 인류문명 실록을 보낸다는 계획이다.

record-diagram.jpg » 1977년 보이저호에 실어보낸 골든 디스크. 위키미디어 코먼스


달을 보며 사실 인간문명에 관한 정보를 우주로 보내는 프로젝트는 1970년대 나사의 파이오니어10호와 11호에 실어보낸 금속 명판, 보이저 1, 2호에 실어보낸 골든 디스크가 원형이다. 파이오니어 명판엔 태양계 지도와 남녀 인간의 모습 등을 담았고, 골든 디스크엔 한국어를 포함한 55개국 언어와 약간의 과학이론 등 좀더 자세한 인간 문명 자료를 담았다. 당시의 시도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외계인과의 통신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반면 이번 프로젝트는 인류문명의 기록을 영원토록 남긴다는 성격이 더욱 짙다.
훗날 우주 어딘가에서 이 디스크를 꺼내든 후손들이나 외계인이 뭘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런 프로젝트가 과연 열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다만 스피백은 적어도 달을 볼 때마다 인류의 문명 가운데 한 조각이 저기에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류는 지구만의 종족이 아닌 다행성종족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자극제는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작은 우주 도서관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지구에서 우주로 넓혀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까?

 
출처
https://www.nbcnews.com/mach/science/30-million-page-library-heading-moon-help-preserve-human-civilization-ncna977786
https://www.livescience.com/64899-lunar-library-launched-to-moon.html
https://www.archmission.org/spaceil

스페이스일에 담긴 디스크
http://www.spaceil.com/general/spaceil-iai-to-send-time-capsule-on-israels-historic-moon-mission/
달에 떨어지는 운석 포착 사진
https://www.nbcnews.com/mach/science/watch-moon-get-rocked-meteorite-during-weekend-s-lunar-eclipse-ncna961441
테슬라 로드스터 실시간 위치
https://where-is-tesla-roadster.space/live
https://www.businessinsider.com/elon-musk-tesla-roadster-space-spacex-orbit-2019-2

TAG

Leave Comments


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