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사스보다 끈적해진 `코로나19' 바이러스 생명건강

covid1.jpg » 코로나19 바이러스 구조도. 겉에 툭 튀어나온 부분(빨간색)이 세포 침투할 쓰는 돌기 단백질이다. 미국질병예방통제센터 제공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스2' 바이러스의 정체는?


`코로나19' 감염병 발생이 세계보건기구(WHO)에 공식 보고된 것은 지난해 12월31일. 그로부터 불과 두달여만에 감염자 수는 100개국 10만명을 넘어섰다. 세계보건기구는 결국 3월11일 코로나19를 팬데믹(세계 대유행병)으로 선언했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치료제나 백신 개발, 예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에 한창이다. 1월31일 세계 103개 연구기관들은 코로나19 연구 결과를 신속하게 전 세계에 무료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보건기구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코로나19 관련 연구출판물은 1700개가 넘는다. 보건기구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시망(GISAID)에는 500개에 이르는 신종 바이러스의 게놈 정보들이 공유돼 있다. 특히 이번 신종 바이러스 연구에서는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M)의 활약이 눈에 띈다. 생체분자를 영하 150도 이하로 얼려 원자 수준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첨단 장비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합쳐 바이러스의 입체 구조를 상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기술을 개발한 세 명의 과학자들은 2017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수상했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실체를 얼마나 알아냈을까?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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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 수 3만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두배...표면 돌기단백질로 침투


과학자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이러스의 큰 덩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게놈을 구성하는 염기 수가 2만7천~3만4천개로 RNA 바이러스 중 가장 많다. 이번에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염기 수는 약 3만개다. RNA 바이러스 중 가장 작은 리노바이러스(약 8천개)의 4배에 육박하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약 1만3600개)의 두 배가 넘는다. 그래봤자 입자 크기는 125나노미터(0.125마이크로미터=0.000125미리미터) 안팎이지만, 상대적으로 공중에 떠다닐 가능성이 크지 않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고 대화하거나 식사한 사람끼리 전파되는 구강감염이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유전물질과 이를 둘러싼 막으로 구성된 아주 단순한 구조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두 가닥 사슬 구조의 DNA가 아닌 단일 가닥의 RNA다. 지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슬 구조가 아니어서 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RNA는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에 감싸여 있다. 그리고 RNA 덩어리 전체를 인지질 막이 둘러싸고 있다. 이 껍데기 곳곳에 돌기 모양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비롯한 네 가지 단백질이 곳곳에 박혀 있다. 돌기 단백질이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인체 세포 침투 도구다.

covid2.jpg » 극저온전자현미경으로 작성한 돌기 단백질의 입체 구조도. 위쪽 삐져나온 부분(초록색)이 세포결합 영역(RBD)이다. 텍사스오스틴대 제공


점액 친화력 2~3배+세포 결합력 10~20배=감염력 50배로


코로나19는 사스보다 4분의1 짧은 기간에 사스의 10배가 넘는 사람을 감염시켰다. 이 엄청난 감염력과 전파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바이러스 감염 과정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구강, 비강, 기도 등 호흡기관 표면의 점막에 흡착한다. 그 다음 세포 표면의 수용체 단백질 `에이스투'(ACE2=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2)와 결합한 뒤 이를 통해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 몸을 집이라고 하면 바이러스는 강도요, 에이스투 수용체는 현관 문, 돌기 단백질은 강도 손에 쥔 열쇠에 비유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우선 스파이크 단백질의 점액 친화력이 높아진 것을 발견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에 다당류(글리칸) 성분이 결합된 곳이 늘어났다. 설탕물처럼 끈적한 성질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음식물이나 물이 들어와도 잘 내려가지 않는다. 주철현 울산의대 교수(미생물학)는 "스파이크 단백질에 이런 부위가 4~5개 추가되면서 점액 친화력이 2~3배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 다음엔 세포와 결합인데, 이 힘도 강해졌다. 과학자들은 대략 세 지점을 살펴보고 있다. 먼저 돌기 단백질이다. 미국 텍사스오스틴대 연구진이 극저온전자현미경으로 `스파이크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만들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수용체 결합력이 사스 바이러스보다 10~20배 높게 예측됐다. 연구진은 돌기 단백질에서 길쭉하게 삐져 나온 부위의 모양이 세포와의 결합력을 높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효소를 주목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 세포에 들어가려면 스파이크 단백질을 자르고 끊는(활성화) 효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바이러스엔 효소가 없다. 그래서 숙주 세포의 효소 도움이 필요하다. 게놈 분석 결과 코로나19의 스파이크 단백질에는 세포 내 퓨린 효소를 만나면 활성화하는 부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퓨린은 폐와 간, 소장에서 두루 발견되는 효소다. 이는 이 바이러스가 여러 장기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에서는 퓨린 활성화 부위가 없다.

covid4.jpg » 증식을 마친 바이러스들이 세포를 뚫고 나오는 모습. 미 국립보건연구원 제공


감염 5일 이내 바이러스 배출 절정...사스의 1000배 넘어


또 다른 과학자들은 스파이크 단백질 대신 헤마글루티닌(적혈구응집소) 단백질을 퓨린 활성화 부위로 주목하고 있다. 이 분자 역시 바이러스와 세포를 결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 분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 감염력이 좋은 바이러스들에서 공통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이다. 그러나 퓨린 활성화 부위의 역할이 과대평가돼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 검증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18년 스페인독감을 일으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엔 퓨린 활성화 부위가 없다. 아직까지는 예측 내지는 가정일 뿐이다.
돌기 단백질이 세포에 달라붙고 나면 바이러스 막과 인간 세포 막이 융합하면서 바이러스 유전물질이 세포 속으로 들어간다. 주철현 교수는 점막 흡착력과 세포 수용체 결합력의 변화를 합치면 대략 감염력이 50배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예측이다. 주 교수는 "신종바이러스가 나오고 분자생물학적으로 증식 기전이 제대로 규명되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며 "지금 나오는 논문들은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전파력은 어떨까? 어느 정도 증식을 한 바이러스는 세포밖으로 나온다. 또 다른 증식처를 찾아서다. 그런데 친화력이 강해 바이러스가 몸 안 깊숙한 곳 대신 호흡기관 상부에서 증식을 하니 작은 기침에도 밖으로 쉽게 튀어나온다. 그 비밀은 감염 초기의 엄청난 바이러스 배출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연구진이 경증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 농도는 감염 후 4일째에 정점을 찍었다. 이 시점에 환자 인후두에서 채취한 표본 1개당 바이러스 수는 7억개였다. 2003년에 유행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의 최대 검출량 50만개보다 1000배 이상 많았다. 5일 후부터는 바이러스 수가 서서히 감소했고, 10일이 지난 시점에선 감염력이 사라졌다. 감염 초기 환자 격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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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에서 기원....중간숙주는 미스터리


바이러스는 스스로 살아가는 생물이 아니다. 숙주세포에 붙어 끊임없이 유전물질을 증식해나갈 뿐이다. 복제가 완성되면 다시 세포밖으로 나온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는 인간과 포유동물, 조류다. 인간한테서 발견된 것은 대부분 박쥐가 숙주다.
박쥐는 포유류이기 때문에 사람과의 종간 감염 장벽이 낮다. 그러나 동굴에서 사는 박쥐가 사람과 접촉할 일은 거의 없다. 대개 중간 숙주를 거쳐 사람에게 전파된다. 2002년 사스는 고양이, 2012년 메르스는 낙타가 중간숙주 역할을 했다. 사스와 사향고양이의 바이러스 일치율은 99.8%였다. 고양이가 중간숙주로 간주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중간 숙주는 어떤 동물일까? 한때 중국에서 불법 거래되는 천산갑이 중간숙주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유전적으로 99%가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천산갑은 비닐처럼 생긴 두꺼운 등껍질이 있는 야행성 포유동물이다. 나중에 이는 전체 게놈이 아닌 수용체결합영역(RBD)의 일치율이었음이 밝혀져 폐기됐다. 전체 게놈 일치율은 90.3%로 낮았다. 현재로서 가장 높은 일치율은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96%이다. 그러나 RBD 영역에선 큰 차이가 있어 박쥐에서 직접 전파됐다고 단정하기엔 여전히 무리가 있다. 추가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뱀을 중간숙주로 지목한 중국 연구도 있었으나, 그동안 인간에게서 발견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포유류를 거쳐왔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중간숙주를 거쳤든 아니든 인간에게 전파된 시기는 11월 초~중순으로 추정한다. 초기에 검출된 코로나19 바이러스 간의 변이 정도가 매우 작았다는 점이 그 근거다.

cov0.jpg » 코로나19 바이러스인 Sars-Cov2의 계통 분류 그림. 네이처 제공



사스와 같은 종....`19' 작명은 주기적 출현 염두에 둔 것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n Taxonomy of Viruses)가 계통분류법에 따라 붙인 코로나19 병원체 정식 명칭은 `사스코로나 바이러스2'(SARS-CoV-2)다. 일단 사스 바이러스와 같은 종에 속하는 바이러스로 분류했다.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형제 관계라는 뜻이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유전적 일치율은 79.5%다. 메르스 바이러스와의 일치율은 50%에 불과했다. 특히 숙주 세포와 결합하는 방식이 사스 바이러스와 똑같았다. 하지만 사스의 항체는 코로나19에선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앞으로 데이터가 쌓이면서 계통분류상의 위치는 변경될 여지가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과(Coronaviridae)과의 4개속(알파, 베타, 델타, 감마) 속 중 인간에게 감염되는 건 알파와 베타다. 신종 바이러스는 사스, 메르스와 같은 베타속에 속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아데노바이러스, 리노바이러스와 함께 감기를 일으키는 3대 바이러스로 꼽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한테서 확인된 7번째 코로나 바이러스다.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세번째, 2012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6번째였다. 21세기 들어서만 5번째 변종이 발견됐다. 세계보건기구가 2월11일 발표한 코로나19 감염병의 정식 명칭은 `코비드-19'(COVID-19)다. ‘CO’는 코로나(corona), ‘VI’는 바이러스(virus), ‘D’는 질환(disease), 19는 발생 연도인 2019년을 뜻한다. 보건기구가 이름에 발생연도를 붙인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이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면 기사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326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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