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약간의 술? 창의력엔 '굿'…건강엔 '노굿' 생명건강

cheers-839865_1920.jpg » 술의 건강 효과에 관한 이전의 연구들 중 다수는 비교 대상이 잘못 설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ixabay.com  

 

술과 건강의 관계는 J커브?

 

인류의 몸이 알코올 분해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1000만년 전부터다. 인간-고릴라-침팬지의 공통조상이 되는 영장류가 식생의 변화와 함께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오면서 발효된 과일을 먹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진화를 거듭했으니 이젠 알코올과 인간은 불가분의 평생 벗이 됐을까?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최근 개정한 ‘암 예방 수칙’에 따르면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암 예방을 위해선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해야 한다는 것. 그동안의 연구 결과들을 반영해 ‘하루 2잔 이내로 마시라‘는 규정을 없애고 아예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량의 음주는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연구도 간간이 나온다. 예컨대 와인 속의 항산화 성분이 심혈관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 등이다.  음주의 건강 효과를 주장하는 연구들은 대개 알코올 섭취와 사망률 사이에 J커브 모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소량 음주하는 사람이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오히려 낮다는 것이다.

al1.jpg » 소량의 음주는 오히려 사망 위험을 낮춘다는 J커브. University of Victoria, Centre for Addictions Research of BC

 

87개 연구결과 살펴보니

 

과연 소량의 음주는 건강에 괜찮은 걸까? 그동안의 논란들을 정리해줄 만한 연구 논문이 나왔다. 이전에 나온 87개의 연구 결과들을 검증해본 메타분석 결과가 나온 것. 87개 연구들의 대상자는 약 400만명, 이 가운데 사망자는 36만7천명이었다. 캐나다 빅토리아대 중독연구센터장 팀 스톡웰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이 <알코올과 약물 연구저널>(Journal of Studies on Alcohol and Drugs) 3월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소량의 음주(하루 최대 2잔, 하루 1.3~24.9g 알코올)가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 비교 대상 설계가 잘못돼 있었다. 소량 음주자의 비교 대상이 된 금주자들 가운데 음주로 인해 건강이 나빠져 술을 끊은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니 당연히 소량 음주자가 건강한 것으로 나왔다는 것.

 

al2.jpg » 잘못된 비교 대상을 보정하고 나니 소량 음주의 건강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왔다. University of Victoria, Centre for Addictions Research of BC

 

간헐 음주자 사망 위험 가장 낮아


연구진이 이를 보정하고 다시 분석해 보니, 평생 금주자나 간헐 음주자(1주일에 한 잔 이하 음주자, 하루 섭취 알코올 1.3g 미만)와 비교할 때 소량 음주가 사망 위험을 줄인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었다. 87개 연구논문 가운데 13개만이 이런 편향을 피했는데 이들 논문에선 소량 음주자들이 어떤 건강상의 이점도 보여주지 못했다. 사망 위험이 가장 낮은 그룹은 간헐 음주자였으나, 이는 생물학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양의 알코올이므로 술이 사망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음주에서 뭔가 긍정적인 건강 효과를 기대한 사람들에겐 실망스런 결과이다.

ch2.jpg » 술 마신 사람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빨리 문제를 풀었다.한겨레신문 자료사진

 

혈중알코올농도 0.075%서 창의력 최고

 

하지만 음주 애호가들에게 희소식도 있다. 약간의 술이 신체 건강에 좋을 수 있다는 건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정신 능력, 그 중에서도 창의력을 높인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증명이 됐다. 2012년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은에 발표한 논문에서 “맥주를 몇 잔 마신 남성이 술을 마시지 않은 남성보다 창의적인 문제를 더 잘 푼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남성 40명을 대상으로 3개의 단어를 제시한 뒤 4번째 단어를 유추하는 창의력 문제를 냈다. 그 결과 술을 마신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0%나 더 문제를 잘 풀어냈다. 문제를 푸는 데 걸린 시간도 술 마신 남성은 12초였던 반면, 마시지 않은 남성은 15.5초로 더 길었다. 술을 적당히 마신 사람이 문제도 잘 풀고 정답도 더 빨리 내놓은 것이다. 특히 혈중 알코올 농도 0.075%에서 가장 높은 창의력이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알코올이 분석적인 사고를 약화시킨다는 고정 관념과는 다른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ch1.jpg » 혈중알코올 농도 0.075%에서 창의력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한겨레신문 자료사진

 

어떻게 된 것일까? 연구를 이끈 제니퍼 와일리 제니퍼 와일리(Jennifer Wiley) 교수는 알코올이 뇌의 작업기업 용량을 줄임으로써 문제를 푸는 창의성을 높인다고 밝혔다. 작업 기억 용량이란 특정한 것에 집중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용량이 줄어든 부분에 다른 생각거리들이 들어와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아진 셈이다. 다만 술을 마신 상태에서 기억력은 저하됐다. 와일리 교수는 “너무 한 군데 집중하면 새로운 가능성을 방해할 수 있으며 창의적인 문제 해법을 떠올리는 데는 주의가 산만하고 느슨한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같은 연구결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이 술을 즐겨마시면서도 어떻게 해서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고 덧붙였다. 

 

ale3.jpg » 와일리 교수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만든, 창의력을 높이는 덴마크 맥주 '프로블럼 솔버'. 병 겉면에 권장 음주량 눈금 표시가 있다. problemsolverbeer.com/

 

창의력 높여주는 맥주도 나와

 

덴마크의 한 광고회사(CP+B Copenhagen)가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광고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3시간 동안 한 그룹은 언제든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하고, 다른 그룹은 물만 마시게 한 뒤 광고 기획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최고 기획으로 선정된 5개 아이디어 중 4개가 술을 마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광고회사는 한 맥주 회사와 함께 이 연구결과를 제품화해 '프로블럼 솔버'(Problem Solver)라는 이름의 맥주를 내놓기도 했다. ‘프로블럼 솔버’는 알코올 도수 7.1%의 인디안 페일 에일(IPA) 맥주다. 맥주병 겉면에는 성별과 몸무게별로 창의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맥주의 양이 표시돼 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직원 워크숍을 열 때 창의성 발휘를 돕기 위해 이 맥주를 제공한다고 한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면 혈중알코올 농도 0.07%에 이를까? 일부에선 대략 맥주 500cc 두 잔이나 와인 두 글래스를 마신 상태라고 전한다. 하지만 각 개인의 신체 상태나 알코올분해 능력에 따라 편차가 크므로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명심할 점은 혈중알코올농도 0.07%는 면허정지(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 수준의 적지 않은 음주량이라는 점이다.

 

 

적당한 음주는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변화를 알아채는 능력도 강화시켜준다. 와일리 교수팀의 변화맹시(change blindness=연속으로 제시되는 장면에서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있을 때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 시험 결과를 보면, 술 취한 사람이 변화를 더 재빨리 간파해냈다. 이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된 때 역시 공교롭게도 창의성이 최고조에 이르는 혈중알코올농도와 같은 0.071~0.082%인 상태일 때였다.

 

출처

건강 효과 관련
http://medicalxpress.com/news/2016-03-moderate-good.html
http://www.cbc.ca/news/health/alcohol-health-1.3501314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16/03/160322080515.htm
http://www.medicalnewstoday.com/articles/308200.php
논문 보기
http://www.jsad.com/doi/10.15288/jsad.2016.77.185
창의력 관련
http://www.fastcocreate.com/3040103/finally-a-beer-that-will-solve-your-creative-problems
http://www.medicaldaily.com/drinking-alcohol-may-significantly-enhance-problem-solving-skills-240105
http://www.problemsolverbeer.com/
변화 감지 능력 관련 실험
https://news.uic.edu/drinking-may-improve-ability-to-detect-changes

캐나다 음주가이드라인
http://www.ccsa.ca/Resource%20Library/2012-Canada-Low-Risk-Alcohol-Drinking-Guidelines-Brochure-en.pdf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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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