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열며...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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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24일. 나는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장소는 속초. 낙산사와 접해 있는 ‘속초유스호스텔’을 예약하고 배낭에 1인용 코펠과 버너, 쌀, 밑반찬, 그리고 포도주 한 병을 챙겨 넣고 출발했다.
세상은 새천년이 시작되었다며 밀레니엄의 거품으로 여전히 출렁거리던 새 해. 나는 공식적으로 마악 서른이 되어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20대를 정리하고, 30대의 날들을 계획해보자며 나름 비장하게 떠났던 여행이었다. 속초가 목적지인 버스는 눈보라치는 양양 길가 정류소에 나만 덜렁 내려놓고 떠나 버렸다. 작은 눈 알갱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옷 안으로 달려들었다. 1층 102호..창밖으로 눈을 이고 있는 언덕과 소나무가 보이던 방에 짐을 풀었다.

눈은 밤새 내렸다.
자고 일어나보니 60센티나 쌓여 있었다. 10년만의 대설로 대관령과 한계령이 막혔다는 뉴스가 들려 왔다. 강원도로 이어지는 모든 길이 끊겨 있었다. 예약한 사람들은 모두 취소를 하고, 나는 그 건물에 투숙한 유일한 손님이 되어 버렸다. 눈 속에 갇혀 작고 낡은 방에서 혼자 밥을 끓여 먹고, 이따금 온통 눈으로 덮인 낙산 바닷가를 걸었다. 눈쌓인 산은 본 적이 있지만 눈 쌓인 해변은 처음이었다. 그 눈위에 뒹굴고, 그 눈위를 하염없이 걸으면서 나는 내 나이와, 내 미래를 생각했다. 눈위를 걸어온 내 발자국을 카메라에 담고, 눈위에 누운 내 모습을 찍으면서 멀리 떠나와도 두고 올수 없는 내 고독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날밤... 나는 늘 가지고 다니는 일기장 첫머리에 문득 이렇게 쓴다.
‘아가야...’
깜짝 놀랐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던 단어였다. 그냥 몇 몇 마음을 나누는 친구에게 쓰거나 아니면 내 이름을 부르며 일기를 쓰긴 했지만 아가라니... 아가라니... 어디서 갑자기 ‘아가’라는 말이 떠올랐을까. 그러나 ‘아가야’를 부르고 나자 나는 갑자기 내 안을 채워오는 따스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건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내 삶의 언젠가는 만나게 될 내 아이를 향한 애정과 그리움이었다. 나를 닮은 아기가 맑고 천진한 눈망울로 내 품에서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왈칵 눈물이 고였다. 그날 밤 나는 봇물이 터진것 처럼 미래에 만날 내 아이를 부르며 끝없이 긴 이야기를 적고 또 적었다.

내 20대의 날들은 힘겨웠다. 나는 늘 나를 상하게 하는 사랑에 매달렸고 번번이 상처를 입었다. 상대방의 기준과 가치에 연연하는 내 사랑은, 늘 불안하게 흔들리고 왜곡되고 뒤틀렸다. 상대방이 원하는 내 모습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동안,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랑은 결국 상처만 주고 만다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되는 똑같은 결과에도 나는 깨닫지 못했다. 깨달았다 하더라고 변할 수 없었다. 의지하고 매달렸던 사람이 떠날 때마다 나는 내가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 두려움은 너무 절박해서 늘 숨이 막혔다. 사는 게 무서웠다. 누구한테도 사랑받지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자상한 남편과 사랑스런 아이들이 있는 그런 따스한 가정을 평생 가져보지 못하고 늙어 갈 것만 같은 무서운 절망이 나를 삼켰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늘 쿨하고 명랑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지만, 실제의 나는 늘 위태롭고 흔들거리며 자학과 연민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내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내 안의 힘을 기르고 싶어 떠났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그 밤, 문득 터져나온 ‘아가’라는 말은 나를 떨게 했다. 그것은 내 삶의 언젠가는 내가 한 생명의 엄마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부족하고, 모자라고, 상처투성이고 나약한 사람이지만, 미래의 언젠가는 이런 나를 온 존재로 사랑하고, 따르고, 바라보는 한 생명의 엄마가 될 것이었다.


그 생명에게는 내가 전부이고 충분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장 소중한 사람일 것이었다. 그 깨달음이 나를 떨게 했다. 사랑하고, 상처받고, 자학하고, 애쓰며 살아오는 동안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다. 모든 것은 그날 밤 내게 다가왔다. 나는 언젠가 만날 내 아이의 바탕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 그 생명은 내 건강과, 내 기억과, 내 감정과 정서 위에 한 생명으로서 첫 뿌리를 내리고 자라날 것이라는 자각. 따라서 내가 행복하면 그 생명도 행복할 것이고, 내가 건강하면 그 생명도 건강할 것이라는 것. 나는 그 생명의 첫 우주이자 집이라는 사실을 그날 밤 깨달았던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이 우주, 이 세계를 돌보고 아끼고, 사랑하는 일..
이것이 언젠가 만날 너와 네 아빠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나는 네 영혼의 집이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이 집에 있는 어둡고 그늘진
곳을 열고, 들여다보고, 밝은 햇빛을 들일 것이다.
아가.. 눈 내리는 깊은 밤, 고요한 세상 한 가운데 서서 네 이름을 부른다.
그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마음 가득 품어 본다.’

이런 글들을 일기장에 적어 가면서 나는 내 온 존재를 채워오는 한 생명을 느꼈다. 언젠가 만날 그 생명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 겨울의 며칠을, 눈 쌓인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미래의 내 아이와 함께 지냈다. 외로울 때마다 그 아이를 부르며 일기를 썼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다시 일상을 시작한 후에도 흔들리고 약해질 때마다 그 생명을 떠올리는 것이 나를 견디게 하고, 다시 중심을 잡게 했다.

언제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진다 해도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서른 한살 봄에 마라톤을 시작했고, 그해 가을 춘천에서 풀코스를 완주했다. 다섯 시간이 넘게 달려 골인을 하는 그 순간, 나는 미래의 내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그 다음해 봄, 나는 남편을 만났고 3개월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그 가을에는 첫 아이를 가졌다. 내 안의 생명과 처음 만난 날 이후부터 모든 일들이 실타래처럼 자연스럽게 풀려 나갔다. 이윽고 나를 돌아봤을 때는 젊은 날 그토록 불안에 떨며 의심하고 원하던 모든 것들이 이미 내게 와 있었다.

2002년에 결혼을 하고, 2003년 6월에 부천의 한 조산원에서 세 시간의 진통 끝에 첫 아이를 안았을 때 내 가슴위에서 주름진 그 작은 눈을 떠서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보며 '너였구나. 그 겨울에 나를 찾아왔던 생명이 너였구나.' 눈물을 흘렸다. 필규는 내가 서른이 되는 그 겨울의 여행에서부터 이미 내 안에 있던 생명이었다.
그 뒤로 2007년 3월에 집에서 둘째 아이 윤정이를 낳았고, 꼭 마흔이 된 올 해 1월에 셋째 이룸이를 역시 집에서 낳았다. 10년 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홀로 떠났던 겨울의 여행지에서 언젠가 만날 아이를 생각하며 고독을 견디던 처녀는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결혼 8년 동안 세 아이를 낳고, 열심히 젖 먹이고, 기르는 일을 하며 살았다. 결혼 전에는 나름대로 내 분야에서 인정받던 사회복지사였지만 일을 그만두고 가정을 택한 일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원했던 선택이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자연스런 출산을 준비하면서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산업적 출산의 문제점들에 눈뜨게 되었고, 젖과 천 기저귀로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그렇게 길러주신 부모님의 정성을 새삼 깨닫던 날들이었다. 내 아이가 소중하다보니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더 잘 보였고,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고민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겪는 시행착오와 실수, 보람들을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지내는 일은 내 인격의 가장 밑바닥까지 나를 끌어 내리게도 하고, 내 안에 있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정들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 일이다. 어렵고, 고달프고, 힘들기도 하지만, 벅차고 뿌듯하고, 감격스럽고 기쁘고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만이 줄 수 있는 행복들이 있다. 그 순간에만 보이는 보석들과 그 시절에만 알 수 있는 감동들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일을 선택했다면 보지 못했을 아이들의 하루 하루를, 그 놀라운 변화들과 성장들을 곁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날들 속에서 아이들이 내게 주었던 행복과 감동, 아쉬움과 깨달음, 그 찐한 시간들을 욕심껏 기록하고 간직해 왔다. 그 추억과 기억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들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아이를 낳았지만,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오고, 나를 철 들게 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매 순간 나를 열망하고, 내 관심과 인정을 바라고, 내 손길과 사랑과 품을 원하는 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한 생명에게 이렇게 지극한 애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동스럽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 모든 의지와 노력을 이끌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노력을 멈출 수 없게 한다. 내가 아이들을 낳았지만, 아이들은 매일 나를 너 나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엄마가 되고 부모가 되는 일은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의 참 맛을 느끼기도 전에 육아에 대해 너무 미리 겁을 내고, 부담을 느끼고, 돈 걱정을 먼저 한다. 분명 아이 키우는 일은 어렵기도 하고, 힘들고, 돈 없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는 일은 지출이 늘어나는 일이기보다 내 삶의 행복과 감동이 늘어나는 일이다. 삶이 더 풍부해지고, 신비해지며, 아름다워지는 일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 순간을 눈과 마음을 열고 대하면 아이들은 보석처럼 제 존재를 빛내며 우리를 새롭게 일깨운다. 지난 8년 동안 내가 겪은 시간들이 그랬다.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 숨겨진 보석들을 더 열심히 찾아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

행복한 육아는 결코 돈과 비례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주는 모든 경험들을 기꺼이 껴안으며 그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다.
우리 자신은 아이가 만나는 첫 환경이다.
나 자신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한 생명의 집으로서 나 자신을 돌본다면 누구에게나 임신, 출산, 육아는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들로 채워질 것이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부모로서, 아이들을 키우며 새롭게 세상을 배워가는 이야기를 이제부터 써보려고 한다.
우선 생명을 품고 맞이하는 과정을 돌아보고 병원이 아닌 곳에서 이루어진 세 번의 출산, 그 속에 담겨진 의미들을 풀어내면서 산업화된 출산 문화를 짚어보고 싶다.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엄마와 아이 사이를 어렵게 하는지도 살펴보자. 행복한 육아와, 건강한 교육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 매일 지지고 볶는 가족 이야기와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찐한 행복과 감동들도 함께 나누고 싶다. 같이 공감하고, 어떤 주제들은 새롭게 고민도 해보고, 무엇보다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서로 힘을 얻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행복한 임신, 자연스런 출산, 건강한 육아와 더불어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을 찾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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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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