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라는 남자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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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기숙사에 있는 아들이 집에 오는 날..

정오가 지나면 아들한테 전화가 온다. 곧 전철역에 도착하니 데리러 나와 달란다.

30여분 기다리면 마을버스가 오지만 일주일치 빨래로 묵직한 배낭과 바이올린과 이런저런

물건들로 차 있는 보조가방까지 들고 오는데다 오후 2시에는 바이올린 레슨이 있어 시간도 빠듯해서

늘 차로 데리러 간다.

전철역 근처에 차를 대 놓고 역 입구만 바라본다.

전철이 도착했다. 사람들이 나온다. 작은 역, 작은 동네라 내리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올리는 없다.

서둘러 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뒤에 아들은 늘 그 속도대로 성큼성큼 걸어 온다.

검은 롱패딩에 검은 머플러에 검은 마스크를 낀 키 큰 아들은 사람들 속에서 금방 눈에 띈다.

내 차를 봤으면서, 운전석에서 저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알아챘으면서도 녀석.. 눈을 피한다.

훗.. 반가우면서 쑥스러운게지.

"어이, 반가워 아들"

"하이, 맘"

아들은 뒷좌석에 짐을 부려놓고 내 옆자리에 올라탄다.

윤기 나는 앞머리가 닭 벼슬처럼 솟아 있다.

바로 차를 돌렸다.

"자, 그럼 이제 초코파이를 사러 가 볼까?"

"오, 당근 그래야죠"

"집에 오는 날은 초코파이에 비빔라면이지?"

"그럼요!!"

"왠일로 머리를 감고 잤나봐? 아주 멋들어지게 뻗친걸 보니.."

"어제 새벽 2시에 머리 감고 잤어요"

"새벽 2시? 기숙사에서 마작이라도 하는거냐?"

"마작이라니요. 어제가 세미나 마지막 날이잖아요. 세미나 끝나고 기숙사 사람들끼리 뒷풀이 했다고요.

치킨 먹어가면서..."

"흠.. 치킨, 자주 먹는 걸? 거래처라도 있나봐?"

"허허.. 학교가 번화가에 있지않습니까. 치킨집은 널렸습니다"

"새벽까지 실컷 치킨을 먹었는데 초코파이는 생략해도 되겠구만"

"안되지요. 새벽까지 초코파이는 못 먹었다구요. 치킨하고 초코파이는 엄연히 다른겁니다.

둘 다 먹어줘야죠"

"2시까지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 끝나고 그 시간에 머리를 감고 잤다고? 왠일이야?"

"매일 샤워하고 머리감기가 이번 주의 목표였거든요. 그래서 계획을 열심히 지킨거죠"

"호오.. 그러면 오늘도 머리감고 자는 거임?"

" 그 계획은 금요일까지만 입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오늘은 쉬어야죠"

"나 참.. 집에만 오면 더러워지는구나..크크"

"책 사느라 돈, 많이 썼어요. 돈 좀 주세요"

"왠 책? "

"이 번 계절학교 주제가 '책'이거든요. 자기가 읽고 싶은 책 읽는거라구요.

그래서 안양 교보문고에 가서 책 한권 샀지요"

"학교에도, 집에도 책이 잔뜩 있는데 무슨 새 책을 샀어?"

"아르테미스'요"

"아르테미스? 평전이야?"

" '마션' 쓴 작가가 쓴 거예요"

"오호.. 재미있겠네? 그 책은 어떻게 알았는데?"

"인터넷 광고로요"

"흥.. 자본의 낚시질에 낚였구만"

" 좋은 책이라구요. 자본의 광고도 가끔은 이용해줘야죠"

"그래서, 그 책도 들고 왔어? 엄마도 읽어보자"

"아뇨? 아직 저도 안 읽었어요. 제가 산 책인데 제가 먼저 읽어야지요. 엄마는 기다리세요"

"쳇, 엄마 돈으로 사는 책이면서 주인 행세는..크크"

"방학하면 기숙사 사람들 우리 집에 오는거 다음주나 그 다음주예요."

"열 다섯명쯤 되나?"

"네 그쯤이요"

"언제든지 오라그래. 그 정도 쯤이야 뭐.."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가방 가득 빨래를 세탁 바구니에 쏟아놓고 바로 방에 들어가 쌓아둔 이불에

기대 누운 자세로 핸드폰 게임에 빠져든다.

"엄마.. 배 고파요. 비빔라면 빨리 주세요"

"알았어. 오이채 듬뿍 썰어 올려줄께"

"감사합니다"

아들이 잠시 게임에 빠져든 사이 나는 부지런히 비빔라면 두개를 끓여 채 썬 오이를 수북이 얹고

구운 돌김 열장을 썰어 아들을 불렀다.

아들은 핸드폰을 보며 오이채와 함께 비빈 라면을 바삭한 돌김에 싸서 연신 입에 넣는다.

"엄마.. 물 좀 주세요"

"야, 물은 셀프라고.."

"아잉. 엄마, 사랑해요"

"쳇.. 여기 있다 이놈아"

비빔면 두개에 김 열장에 귤 하나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아들은 초코파이를 우물거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6일만에 누리는 아들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방문을 슬쩍 닫고 나온다.

집에 오면 바이올린 배우고, 밥 먹고, 씻고, 가끔 텔레비젼 보는 시간 외에 밤 열두시 전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아주 알뜰히 이용한다.

어쩌다 집안일 좀 같이 하자고 아들을 부르려면 닫힌 방문을 두드려서 열게 한 다음 이어폰을 뺀

아들 귀에 대고 소리질러야 마지못해 꿈지럭거리며 몸을 일으키긴 하지만 기분 내키면

피아노도 한참이나 치고, 요즘엔 그렇게 사정해도 들려주지 않던 바이올린 연습도 종종한다.

닫힌 방문 너머로 아들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면 남편은 tv 소리도 줄이고

귀를 기울인다. 대견한 것이다.

그리고 자꾸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 아들을 곁으로 부른다. 같이 tv좀 보자고, 난로 불 좀 쬐자고,

그냥 좀 안고 뒹굴자고, 얘기나 좀 하자고...

아들은 아빠의 사정에 선심쓰듯 옆에 앉아 잠깐 tv도 봐 주고, 아빠를 껴안고 뒹굴어주기도 하지만

이내

"이젠 제 방으로 가도 되죠?" 하곤 일어선다.

남편은 늘 아쉬워하지만 나는 남편을 말린다. 일주일만에 집에 와서 누리는 아들의 자유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 때문이다.

아들이 집에 있다.

집안 공기도 달라진다.

밥을 차리면 먼저 먹는 남편과 딸들과 달리 아들은 꼭 "엄마도 어서 오세요. 엄마가 드셔야 제가 먹지요"

한다. 이런 저런 일 좀 도와달라면 잘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밥상에서는 누구보다 엄마를 챙긴다.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열일곱살인 아들은 허물없게 안기엔 너무 크고 가끔은 바라보는 것도 눈부시고

내 옆에 있기만 해도 가슴이 꽉 차 오른다.

저렇게 늘씬하고 빛나는 사람이 내 속에서 나왔네.. 생각하면 부끄럽게도 눈물이 돌곤 한다.

내 곁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아들은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들이 가고 나면 집안 공기가 다시 홀쭉해지는 것 같다.

가슴 한 쪽이 조금 여윈 기분..

엄마들은 늘 이런 기분을 가지고 멀리 있는 자식들을 기다리며 살게 되는 걸까.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다시 아들이 오는 날이다.

내가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

아들은 죽을때까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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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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