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아버지 우리집에 일찍 오셨네

<한겨레> 건강 면과 베이비트리에 ‘행복한 육아’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는 일찍이 대형마트의 비교육성을 지적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하나의 물건이 마트 진열대 위에 놓이고 또 그것을 사려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노동이 필요하지만, 카드로 긁어버리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마트의 현장에서는 노동의 흔적이라고는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1+1’의 계산된 유혹에 못이긴 어른들의 충동적인 대량소비를 보며 아이들도 장난감 선물을 기대하면서 벌어지는 피할 수 없는 실랑이도 골칫거리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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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자격, 남자의 자격

모 정치인의 얘기다. 정치에 뜻이 있어 국회의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공천 심사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개인적으로는 큰 아픔이었는데 아내는 담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귀가해보니 엉엉 울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아이가 시험을 봤는데 여섯 개나 틀렸다는 게 통곡의 이유였다. 그 정치인은 아내에게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 검사의 얘기다. 중학교에 다니는 애가 있는데 아내는 남편이 술을 먹으면 12시를 넘겨서 오길 바란다고 했다. 일찍 마치고 귀가하면 아이와 마주치게 되는데, 내 새끼 예쁘다고 한 번 안아주고 쓰다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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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가족'의 마지막 가을

가을이 갔다. 2010년 가을이 완전히 지나갔다. 겨울이 오고 또 한 해가 저물면 나이 한 살 더 먹게 되니 가을을 보내는 일은 언제나 아쉽지만, 올해는 그 아쉬움의 정도가 더 크다. 우리 가족에게는 다시 못 올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성윤이가 태어난 지 세 번째 가을. 2008년 6월에 태어난 녀석은 그해 가을에 겨우 뒤집기를 시작했고 그 다음해 가을에는 아직 공갈 젖꼭지를 물고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상태였다. 생애 세 번째 가을에 접어들자 녀석은 전격적으로 기저귀를 뗐고, 야심한 밤에 침대에서 30분은 뛰어야 잠이 오는 혈기왕성한 유아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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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몰라요, 내 맘대로 랭킹

   평일 저녁 일찍 귀가하면 녀석은 “아빠”를 연달아 부르며 무척 반갑게 손을 잡아끈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자신과 함께 있던 이모님에게는 신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끙끙 거린다. 아빠 왔으니 할머니 빨리 가시라는 얘기다. 요 녀석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저는 저한테 잘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돼요.”  여러 가족이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장인·장모님이 올라와계신 주말이라면, 녀석은 아침에 잠이 깨면 엄마·아빠를 낮은 포복으로 타넘고 침대를 내려와 할머니·할아버지가 계시는 거실로 직행한다. 물론 녀석의 선호에서 밀렸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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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

“맞벌이 하면서 애를 데리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대단한 거야.” 지난 토요일 동료기자의 결혼식에서 만난 또 다른 동료기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조우한 그 친구의 옆에는 44개월짜리 아들이 함께 있었다. “애 엄마는 같이 안 왔어?” “응, 오늘 출근했어.” 그 친구의 아내는 군인이다. 현재 서울의 한 군 시설에서 헌병대장을 맡고 있다. 기자 아빠와 군인 엄마. 두 사람은 모두 퇴근이 늦어 평일에는 본가에서 아이를 맡아 키워주시고 금요일 밤에야 아이를 데리고 오는데, 업무 특성상 아내가 휴일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아서 토요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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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열린 '노팬티' 시대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가 보니 녀석은 곤히 잠들어있었다. 웃옷만 걸친 채. 아내도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져 있었다. 기저귀를 차지 않으려 반항하는 녀석과 싸우다 지쳐 잠든 모양새였다. 침대 모서리에 걸쳐있는 기저귀를 들고 녀석에게도 다가갔다. 그런데 축축~하다. 기저귀를 거부하는 녀석의 교만함의 끝은 잠자리를 향한 ‘실례’였다. 녀석의 웃옷은 물론이요, 전날 갈았던 극세사 침대 시트와 베갯잎까지 오줌으로 젖어 있었다. 불과 2주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변기에 앉아서 일을 보기 시작했다. 변기에 보다가 기저귀에 보다가 들쭉날쭉하던 녀석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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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첫 경험 '어부바'

나는 조카가 무려 다섯이다. 큰조카는 내일모레 고등학생이 될 정도로 장성했다. 첫 조카를 본 지 그만큼 오래 됐지만 나는 총각 시절 ‘어린것들’을 돌본 적이 없다. 그저 녀석들의 번데기 같은 고추나 들춰보며 희희덕거렸을 뿐... 육아 경험이 전무했기에 아빠가 되고 나서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하루하루가 가슴 떨리는 첫 경험의 연속이랄까. 녀석이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서 내 아이를 처음으로 안아본 날. 그 조그만 핏덩이를 안아 올리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형제들은 “저 애아빠 팔 뻣뻣해지는 것 좀 보라”며 놀려댔다. 어디 그뿐인가. 30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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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로 사느니 아버지로 죽겠다

큰아들. 철부지 어린 동생들 건사하고 부모님께는 극진히 효도할 것 같은 큰아들. 이름만 들어도 든든하다. 그러나 요즘 엄마들이 말하는 ‘큰아들’은 어째 든든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주말에 ‘동생들’ 돌보기는커녕 낮잠만 실컷 자고, 또 가족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구름과자’는 왜 그리도 즐기는지... 이땅에 족보도 없고 호적도 없는 ‘큰아들’이 더 이상 양산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난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 향후 결혼생활의 이념으로 ‘호혜평등주의’를 역설했다. 한국 사회의 가족제도에서 남성의 기득권은 여전히 공고하기 때문에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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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눈물은 없다

비교적 일찍 퇴근한 지난 화요일. 현관에 들어서자 녀석이 공손히 배꼽인사를 했다. 깨어있는 녀석을 오랜만에 보게 되면 순간 반가우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함께 실컷 놀아보자는 일탈의 욕망과 그래도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잠을 자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 사이에서의 고민. 물론 아이를 일찍 재우고 싶은 건, 내 안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때론 나도 혼자서 쉬고 싶기에.   아무리 ‘짬짬육아’라지만, 그래서 녀석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고는 하지만, 이날도 나는 일탈보다 원칙을 택했다. 이틀 만에 아빠를 본 녀석의 장난은 계속 됐고 마지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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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소심한 복수

월요일치를 만들어야 하는 신문사 특성상 기자들은 보통 ‘격주 주5일제’로 일한다. 토요일은 항상 쉬지만 일요일은 격주로 출근해야 하는 것. 이번 주말은 토·일요일을 모두 쉴 수 있는 순번이었다. 평일에 제대로 얼굴도 못 보는 녀석과 회포를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내게 그 시간은 그리 달콤하지 못했다. 먼저 일요일 밤에는 ‘베이비트리’ 육아일기를 마감해야 했다. 법조팀으로 발령받은 뒤 육아일기를 계속 쓸지 잠깐 고민했었지만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아 ‘못 먹어도 고’를 외쳤다. 한 주를 마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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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김 기자”보다 “성윤 아빠!” 라고 불러주길 원하는 김태규 한겨레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