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방향 잃은 질주, F-X 사업 무기의 세계

 

 

무모함이 부실함으로 얼룩진 F-X 사업

10조원대 국책사업이 졸속으로 가는 까닭

 

디펜스21+  2013년 7월호(2013. 6. 17.)

    

 

6월 가격입찰, 7월중 기종결정이 예상되는 차기전투기사업(3차 F-X)의 종착역이 보인다. 방위사업청은 F-35, F-15SE, 유로파이터 3개 기종에 대한 가격과 절충교역에 대한 협상을 6월에 마무리 짓고 가격입찰을 실시한 다음, 7월에는 기종선정위원회 구성에 이어 김관진 국방장관 주재로 기종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로써 약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단군 이래 최대 무기도입사업이 매듭을 짓게 된다. 이번 전투기 도입은 북한 및 주변국의 위협에 체벌을 가할 수 있는 최고 성능의 전투기 도입이라는 점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고, 향후 약 16조원에 이르는 한국형전투기 개발사업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표인 창조 경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우주 산업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는 초대형 이벤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사업추진 과정에 몇 가지 이상 징후가 발견되어 사업 전망이 다시 안개 속으로 가고 있다.

 

 

문전박대 당한 방사청장

 

6월 초에 이용걸 방위사업청장은 기획재정부를 직접 방문하여 “현재 8조3000억원으로 책정된 차기전투기사업(F-X) 예산을 2조원 증액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기획재정부는 5월말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140개 국정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공약가계부’를 발표하였는데 여기에 앞으로 5년 간 134조8000억원이 소요된다. 이 중 약 80조원이 정부예산을 구조 조정하여 그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한 푼이 아쉬운 기획재정부로서는 F-X 사업에 그만한 추가재원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7월 기종결정이라는 방위사업청의 계획은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어려워져 심각한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청와대의 별도 지시가 없을 경우 예산 증액은 일절 없다”는 입장이고, 그나마 청와대가 협의해 올 경우에도 “증액 불가 의견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방위사업청은 7월 기종결정 이전에 F-X 사업 추진에 대해 청와대 5군데 보고해서 모두 동의를 받아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국방비서관, 외교안보수석, 안보실장,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이다. 청와대가 사업비 증액을 위한 특단의 결정을 하려면 위 5명이 모두 도와주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만약 예산 증액이 불가능해 질 경우 사업의 추가 연기나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육군 출신으로 싹쓸이 한 현 정부의 안보 의사결정구조에서 공군이 정치적 지원을 받아 순탄하게 전투기사업이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7월에 F-X 사업이 좌절되면 9월에 결정될 예정인 한국형전투기사업(KFX) 추진도 불투명해 진다. 그러나 방사청 안팎이나 항공업계에서도 “7월 기종결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과연 3개 기종에 대한 충실한 평가와 협상이 내실 있게 진행되었느냐는 점이다. 그동안 방위사업청의 사업관리 과정을 보면 기종 결정 시점이 4번이나 번복되었다. 최초에는 작년 10월까지 기종을 결정하겠다고 하다가 12월로 연기되었고, 다시 올해 2월로 연기된데 이어 7월로 또 연기된 상황이다. 애초 작년 10월 결정이 무리한 일정이었다면 부실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전투기 시험평가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어야 한다. 그러나 기종결정 시점을 2~4개월씩 쪼개서 여러 차례 연기한 것 자체가 그때그때 행정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사업을 관리한 것이지 부실했던 시험평가를 제대로 보완하는 목적이 아니라는 문제점이 있다.

여기에서 첫 번째 의문이 제기된다. 어차피 사업이 늦어질 바에야 처음부터 6개월이나 1년 정도 연기했더라면 사업관리가 훨씬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을, 방위사업청이 마치 무엇에 쫓기기나 하는 것처럼 수시로 일정을 변경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특히 개발이 되지 않은 기종을 평가하는 이번 사업은 부족한 평가 자료를 보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로 했다. F-35는 개발 중이라는 이유로 우리 조종사가 직접 탑승하지 못하고 시뮬레이션이나 관측으로 대체된 변칙적인 평가였다. 우리 조종사는 F-16에 탑승하여 F-35 비행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관측하는 간접 평가에 다름 아니었다. 기동성이 뛰어난 F-16에 탑승하여 기동성이 떨어지는 F-35를 과연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당연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F-15SE 역시 실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아닌 이스라엘로 가서 F-15E 기종으로 평가를 대체하는 ‘유사기종 평가’라는 생소한 방식이었다. 실물이 아닌 관측이나 다른 기종으로 대체평가를 한 것은 우리 방위사업 관련 법령이나 규정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는 이상한 방식이다. 몇 개월씩 쪼개서 연기하는 사업관리를 진행하는 동안 미래 전투기의 성능을 보장할 수 있는 추가적인 보완책을 도모할 여건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검증이 불가능한 시험평가

 

게다가 공군의 시험평가 방식 역시 기종 간의 우열을 검증할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2002년의 F-X 1차 사업 당시에 공군 시험평가단은 라팔, 유로파이터, F-15K 3개 기종에 대해 주요 성능을 우수, 보통, 미흡 3단계를 부여한 뒤, 이를 다시 상(+), 중(0), 하(-)로 나눠 총 9단계로 평가했다. 왜 이렇게 여러 단계로 점수를 매기느냐 하면 전투기 성능의 우열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공군 시험평가 교범에서 이렇게 평가하라고 엄격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국방부는 이러한 공군의 평가를 인정하지 않고 ‘적합’, ‘부적합’이라는 두 단계로만 평가하라고 지침을 내려 공군의 평가의견이 최소한으로 반영되고 상급기관에서 정치적으로 기종을 결정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마치 대학교수가 학생의 시험 점수를 매기는데 학점을 A와 F 둘 중 하나만 부여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우수 학생을 교수가 아닌 학교 측에서 정치적으로 선발하겠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엉터리 지침에 당시 공군시험평가단은 국방부 지침을 따르지 않고 자체 소신대로 평가를 강행했다. 그 주역인 조주형 당시 현지시험평가단장이 국방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당했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에 진행된 시험평가 역시 공군 교범대로 평가한 것이 아니라 적합, 부적합만을 평가하도록 제한되고 있음이 발견된다. 역시 전투기 시험평가가 기종 간 우열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게다가 2002년 당시에는 공군 시험평가단이 공군 내 최고의 조종사로 선발되어 강한 소신과 엄정한 평가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 시험평가단의 경우 다수가 1차 진급자가 아니고 심지어 진급적기 경과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음은 공군의 시험평가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식의 이해할 수 없는 사업관리는 10조원대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전 세계에는 국가 간에 단일 무기구매로는 이 정도와 규모의 거래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무기시장에서 슈퍼 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절충교역 협상에 있어서도 3개 공급회사가 제안한 각종 기술이전 및 투자대안에 대한 엄밀한 가치 평가와 이행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을 법한데, 4번의 촉박한 기종결정 변경은 업체가 “자료 제출 시간 부족”을 이유로 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측면이 있다. 오히려 항상 촉박하게 설정한 일정은 우리의 협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3개 회사는 절충교역을 위한 성실한 이행계획서 제출과 각종 보증서류 제출을 등한시 한 채 “무언가 한방 터뜨리고 보자”는 식으로 장밋빛의 매력적 대안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예컨대 록히드 마틴은 F-35 한국의 구매 시에 국산 고등 훈련기인 T-50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약속은 T-50 개발이 진행되던 1993년에 이미 우리가 들었던 20년도 더 된 약속이다. 이제껏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 이제 와서 마치 새로운 약속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석연치 않을뿐더러, 계약에 명기되지 않은 약속을 믿고 전투기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보잉의 경우 F-15SE를 우리가 구매할 경우 국내 항공 사업에 최대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하며 국내에 항공전자장비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보잉사의 F-15K를 60대나 구매하면서 보잉과는 상당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왔고, 센터 건립 역시 이번 전투기 사업과 무관하게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유로파이터를 구매하면 60대 중 53대를 국내에서 조립하고, 우리 항공 산업에도 20억불을 투자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미국제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유럽 회사가 가장 획기적인 제안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효성 문제는 따져 보아야 할 대목이다.

 

 

누가 갑인지 헷갈리는 사업

 

우리가 해외 공급업체의 제안 내용을 까칠하게 따져보아야 하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세계적인 방산 업계의 불황 때문에 이제는 무기시장이 공급자가 아닌 구매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미국에 매달려 “제발 전투기 좀 팔라”고 사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가 슈퍼 갑의 위치에서 그간 불리하게 작용해 왔던 각종 불이익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더 낳은 조건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쳐도 무방한 시대가 되었다. 그간 우리의 전투기 도입의 경험을 회고해본다면, 기종 결정전에는 우리가 갑의 위치이지만, 일단 기종을 결정하고 나면 거꾸로 외국 회사가 갑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우리가 고스란히 감수해 왔다는 점이 드러난다. 기종이 결정되고 나면 우리의 추가 요구사항에 대해 공급업체는 매정하게 무시하거나, 후속군수지원, 성능개량 등 무기체계 운용 과정에서 우리의 아쉬움은 뒷전으로 밀려나 이제는 거꾸로 미국 업체에 사정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 왔던 것이다. 이제는 이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한다. 둘째, 향후 전투기 생산국가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가이익이 너무나 명확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2020년경에 우리가 자주국방을 달성하고 중견 항공국으로 도약하려면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항공전자, 비행제어, 무장, 스텔스 등 핵심기술을 차질 없이 확보해야 한다. 과거 F-X 1차 사업 당시에도 사업 구상 당시에는 이 점이 명확했으나 사업 추진과정에서 외국의 압력에 밀려 우리의 요구사항을 스스로 포기하고 을의 위치를 자초한 것은 매우 뼈아픈 경험이었다. 단지 안보상황이 절박하다고 해서 과거의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 안 된다. 그렇다면 매번 기종결정 시한을 촉박하게 정해놓는 ‘시간 위주의 접근’보다 우리의 요구사항이 어느 정도 충족되느냐는 ‘조건 위주로 기종’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의 사업관리에 있어서 가장 불안한 대목은 단지 시점만이 아니다. 이 사업을 누가 책임지며, 최고 전문가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작년에 10월에 기종을 결정하겠다던 방사청은 9월에 항공기사업부장을 공군 J소장에서 K준장으로 전격 교체하였다. 방사청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F-X 팀장은 사업 착수 이후 N대령, Y대령으로 교체하였다가 역시 작년 9월에 돌연 K대령으로 바뀌었다. 1년 새 3번이나 실무책임자가 바뀐 것이다. 최고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위의 사업 책임자가 기종결정 직전에 교체되는 것은 일하는 사람 따로, 책임지는 사람 따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방사청의 잦은 실무자 교체는 고도의 전문성과 일관성이 요구되는 국책사업에서 사업관리의 불안한 요인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고, 잦은 실무자 교체가 기종결정 일정의 수시변경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한편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 지난 정권 말기에 청와대 직원들이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전투기 공급회사나 그 협력업체와 줄을 대려고 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특히 청와대 외교안보, 정무수석실 등에서 일하던 일부 행정관들이 “내가 전투기 팔도록 해 주겠다”며 외국 업체를 접촉하거나 퇴직 후 일자리 보장 등을 적극 타진했다는 증언이다. 이 사실을 필자에게 증언한 한 정부관계자는 “청와대 일부 인사의 ‘외국 업체를 직접 만나게 해 달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자 온갖 인신모욕에 가까운 협박과 모멸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에 의하면 지난 정권 말기에 F-X사업은 정치권력의 마지막 전리품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뚜렷했기 때문에 “그때 기종이 결정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덧붙인다.

이런저런 의문과 잡음이 난무하는 거운데 “일주일이면 가격입찰이 가능하다”는 게 방사청의 설명이다. 2002년 F-X 1차사업 당시에는 38회의 유찰과 9개월이 걸린 가격입찰을 전광석화처럼 진행하겠다는 건 정권이 교체된 혼란스러운 시기와 맞물려 사업의 위험성을 증폭시킬 우려도 크다. 벌써 공급업체들은 “협력업체와 가격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촉박하다”며 또 ‘시간 부족’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 7월 기종결정에는 올해 9월에 결정할 예정인 한국형전투기사업(KFX) 이전에 F-X 사업 결정을 먼저 끝내겠다는 의도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필요하다. 미래 한국공군의 전투기 수요를 충족시키는 한국형전투기를 개발하겠다면 그것은 이번 F-X에서 미래 전투기 개발의 기술 확보라는 핵심적 국가이익을 반드시 구현하겠다는 높은 수준의 결의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수시로 흔들리는 사업관리에서 우리는 어떤 일관성과 정책적 비전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국민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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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