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희우 전 공군 전투발전단장 인터뷰

T-50은 ‘진보 정신’의 승리


인도네시아에 T-50 수출의 청신호가 켜졌다.

이희우 충남대 군수체계연구소장(예비역 공군 준장)은 90년대에 T-50 탐색개발을 위한 ‘황매 팀’에 참여하는 등 공군에서 고등훈련기 개발의 산파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으며, 전투발전단 연구개발단장과 전투발전단장을 역임했다. 이 소장은 디앤디포커스에 T-50 개발의 비사를 소개하며 “이것은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진보 정신, 혁신 정신의 승리”라며 그 감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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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기 시장의 종주국이 되다


- T-50 개발 성공이 왜 ‘진보의 승리’인가?

지금과 같은 초음속 고등훈련기 개발은 처음부터 반대론자, 현실 안주론자에 의해 방해 받았다. 우리가 그런 훈련기를 어떻게 개발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자들 틈에서 도전과 혁신정신으로 무장한 진보주의자들이 이긴 것이다. 관료기관에 이 항공기 개발을 맡기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부터 그들(국방과학연구소)은 안 된다고 했고, 탐색개발 중에도 주도권을 업체에 뺏기지 않으려고 했다. 국과연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다.  


- T-50 인도네시아 수출은 어떤 의미가 있나?

우리나라가 세계 훈련기시장의 종주국이 되었다. 기본훈련기(KT-1)와 고등훈련기(T-50)를 모두 개발한 건 우리나라가 세계최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신형 훈련기를 생산하는 나라가 없다. T-50은 최고성능의 훈련기라 세계 훈련기 시장을 충분히 주도할 수 있다.

종주국이 되었다는 것은 훈련기 개발노하우가 우리나라로 모인다는 의미다. 본래 미국․러시아에 집중되어 있다가 스위스․브라질․이탈리아 등으로 옮겨간 노하우가 우리나라로 옮겨오는 거다. 우리가 기회를 잡은 거다.


 

- 종주국이 되면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나?

T-50은 처음부터 경전투기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때문에 향후 경전투기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마련된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F-16과 F-35의 중간단계를 매울 전투기가 없다. 따라서 우리 공군은 빨리 F-50 단좌 형 경전투기의 개발소요를 내야한다. 경전투기 시장은 노후화 된 F-5 전투기의 대체수요가 2000대에 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걸 국가산업화하지 못하고 있다. 공군 전력 측면에서도 F-35는 언제 인도될지 모르고 한국형전투기(KFX)는 2025년에 전력화된다. 그 때까지 무엇으로 공군전력을 유지하겠는가? F-50이 해답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를 굴복시키다


- 처음 개발을 착수할 때 반대가 많았던 걸로 아는데?

T-50의 태동은 미미했다. 1985년 항공산업육성위윈회가 설립되어 항공 산업 발전에 대한 정부 논의가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1989년 F-16 전투기를 도입하는 KFP 사업 추진과정에서 절충교역으로 국내 항공 산업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의 T-50을 개발하는 고등훈련기 개발사업(KTX-2)이 대두되다.

문제는 공군이 산정한 고등훈련기 필요시기가 1996년이라는 데 있었다. 연구개발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시기도 안 맞고 국방부는 훈련기 직구매를 천명한 상황에서 개발 착수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국내 항공 산업 발전을 위해 영국제 호크 고등훈련기 20여대를 구매하고 나머지는 연구개발한 고등훈련기로 충족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게 T-50개발사업인 황매사업의 시작이다. 그런데 호크 훈련기를 구매 한 후에도 고등훈련기 소요가 부족하자 미국에서 T-38 중고 훈련기를 도입해 T-50이 개발될 때까지 공백을 매울 수 있도록 했다.


- 개발을 하는 중에 위기는 없었나?

탐색개발 과정에서 2가지 위기가 있다. 우선 아음속으로 할 것이냐 초음속으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아음속 훈련기는 저렴하지만 훈련효과가 떨어지고, 초음속은 비싸지만 훈련효과가 좋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 때 공군은 아음속을 선호했다. 아음속만으로도 요구 성능을 충족시킬 수 있었고, 초음속으로 개발하면 개발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국방과학연구소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그런 현실 안주 정서를 격파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했다. 그런데 공동개발 주체인 록히드 마틴과 함께 마케팅 분석을 해보니 훈련기보다 경전투기 시장이 더 컸다. 이 때문에 록히드는 초음속으로 가야 훈련기와 경전투기 시장을 모두 노릴 수 있어 사업이 성공한다고 주장했다. 그 때 나는 공군 전투발전단 연구개발 단장이었는데, 록히드의 논리를 활용하여 공군을 설득하고자 했다. 

이걸 설득하기 위해 훈련효과지수라는 기법을 새로 개발했다. 훈련효과를 수치로 산출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를 바탕으로 아음속 훈련기보다 초음속훈련기가 더 훈련효과가 좋다는 것을 증명했고, 결국 공군정책회의에서 초음속 훈련기로 결정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진보의 승리다. 아음속으로 개발했다면 체계개발 단계에서 록히드의 참여를 장담할 수 없었고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1억불 절감하고 파면당한 장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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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나이팅게일이 영국의회를 설득하기 위해 통계기법을 개발하여 부상병 의료비를 받아낸 사례가 있는데 그것과 비견될만하다.

두 번째 위기는 체계개발을 누가 주도하느냐 하는 것이다. 록히드는 정부주도(국방과학연구소 주도)개발로는 관료주의 때문에 투자효율성이 안 나온다고 생각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호락호락 개발 주도권을 내주겠나? 그 때 사업단장이 전영훈 예비역대령인데 국방과학연구소 소속이었지만 T-50 개발 사업은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는 안 된다고 판단해 견제를 받으면서도 업체주도로 전환했다. 공군과 국방부도 전향적으로 판단했다. 정부는 1994년 11월 국방과학연구소와 업체(삼성항공, 현 한국항공우주산업)로부터 다 제안서를 받았는데, 이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 때 삼성항공 내에서도 리스크 부담하지 말고 국방과학연구소에 맡기자는 사람들과 업체주도로 하자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정부주도 형태의 제안서를 내기로 했다. 그런데 국방부가 제안서를 업체 주도 중심으로 다시 내라 해서 2주 만에 다시 제출해 결국 T-50체계개발은 업체주도로 진행되었다. 국내 최초로 군이 관리하고 업체가 주도하는 선진적 연구개발 모델이 출현한 것이다. 지금은 국방연구개발에서 국방과학연구소에 의한 사업 쪼개기식 분리발주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예전의 선진적 연구개발방식에서 퇴보한 것 같아 유감이다.


- 업체주도로 체계개발이 전환된 이후에는 더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 같다.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체계개발에 착수한 지 두 달만인 1997년 말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외자로 개발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환율이 배로 오르자 비용관리 어려움이 생겼다. 이 때문에 삼성항공은 외화지불유예, 자본 유치 등을 통해 위기를 넘겼지만, 신용장이 개설되지 않아 결국 보증금을 주고서야 개설할 수 있었다. 정부가 주도했다면 그런 대처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빡빡한 일정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기술진들은 회사에 야전침대를 놓고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도면생산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록히드 마틴도 크게 놀랐다.

T-50의 주익(날개) 생산문제도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주익은 록히드가 생산했는데 값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겠다고 하니 로열티 8천만 달러를 요구했다. 우리가 계산해보니 로열티를 주고도 1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기술획득 차원에서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의 이익을 우선하기로 하고 로열티를 주고 주익 생산권을 얻었다. 그런데 팀 내에서 장교 1명이 T-50 개발은 잘못되었다, 개발능력이 안된다고 감사원에 민원을 냈다. 대규모 감사인력이 투입되어 몇 명을 파면하라는 감사결과가 나왔다. 결국 검찰이 나서서 조사 후 공군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감사원의 파면결정을 철회시켰다. 파면 대상이었던 사람들은 사재로 변호사를 고용해 방어에 나서야 했고, 아무런 보상도 못 받았다. 이게 제일 아쉽다.

- 최근 K계열 무기의 부실개발 사태에 비추어보면 고등훈련기 개발은 많은 귀감이 될 것 같다.

위험을 기피하는 보수주의로는 첨단 장비 개발에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고등훈련기는 고정관념에 갇혀있는 우리의 잠든 의식을 해방시키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었다. 그 바탕 위에서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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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