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화요일의 ‘삼각지 쇼크’ 무기의 세계

<한겨레신문> 2013년 9월 27일.

 

 

모든 언론이 공군 차기전투기로 미 보잉사의 에프15 사이런트이글이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화요일 오후에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사업 부결’이라는 뜻밖의 결과를 발표했다. 8월에 최종 가격입찰을 단독으로 통과한 보잉사 전투기에 대한 세간의 비판여론에도 꿈쩍도 않고 밀어붙이던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이제껏 검토결과를 전부 무효화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세간의 혼란과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9월 12일에 공군 총장 출신 예비역 대장 15명의 에프15 반대 성명이 나오자 이를 전해들은 박 대통령은 “왜 정부가 적법한 절차대로 하는 일을 공군 총장이 흔드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이튿날인 13일에도 박 대통령은 방위사업청 업무를 보고받으면서 배석한 김관진 장관에게 “(차기전투기는) 국가안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하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결정하라’는 의미는 조속히 전투기 기종을 결정하라는 말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부결’을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15일부터 김 장관을 접촉한 사람들은 김 장관이 전투기사업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뭔가에 몹시 흔들리는 것 같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장관의 측근이자 방추위 위원인 이용대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이 방추위 위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예정된 기종결정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에프15라도 수용하겠다”던 공군과 방사청이 술렁이면서 추석 연휴가 지나갔다. 그리고 24일에 소집된 방추위 회의에서는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통상 방추위 의결은 복수안을 비교하여 표결로 결정하는 방식을 따른다. 예컨대 1안은 기종결정, 2안은 연기, 3안은 부결과 같은 안을 놓고 최적의 안을 토론하고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3안에 해당되는 부결안만 상정하고 여기에 위원들이 서명할 것이냐, 말 것이냐 만을 선택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극히 일부 위원들이 사업이 지연되면 공군의 전력공백이 예상된다며 서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방부는 단 두 시간 만에 종료된 방추위 회의 직후 사업 부결을 발표했다.

사업 부결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재검토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껏 대통령과 장관이 말해오던 취지와 전혀 다른 정책이 어떻게 단 몇 일 만에 뒤집어지고 겨우 두 시간의 회의를 통해 결정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과연 어떤 세력이 어떤 영향력이 그렇게 짧은 기간에 8조3000억원의 국책사업에 대한 대통령과 장관의 판단을 정반대로 바꾸어놓았느냐는 의문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계획대로 사업추진’ 지침이 있었던 13일 오후 3시 30분의 청와대 회의로부터 김 장관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여 지던 15일 오전 10시 사이, 약 43시간 동안 도대체 박근혜 정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는 궁금증이다.

사실 에프15가 차기전투기사업의 단독후보로 검토되던 8월부터 국내 보수여론은 미국이 판매하려는 에프35 스텔스전투기를 구매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경죄’를 묻는 여론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스텔스전투기 판매는 미사일방어(엠디)와 더불어 미국의 핵심 동맹정책이다. 여기에 따르지 않는 우리 정부를 흔드는 거대한 중력은 대통령이건 장관이건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그 힘이 작용하자 공군의 전력공백 보완, 한국형 전투기 개발 기술 확보라는 국가의 핵심이익도 뒷전으로 밀어내며 오직 미국이 원하는 전투기 기종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변경시켰다. 너무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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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