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달한 징병제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국방개혁

6사단 현장지도 (11)[1].jpg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상황에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제기한 “징병제 폐지, 모병제로의 전환”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다. 그러나 이 반응들을 유심히 뜯어보면 예의 색깔론에 입각한 헐뜯기나 상투적인 안보논리, 포퓰리즘 논쟁과 같은 반응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병역제도 논란이 이렇게 감정적으로만 다룰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당장 모병제를 도입하기에는 여러 문제가 수반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개병주의가 제대로 운영되는 것인지,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은 것인지, 최소한의 성찰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한국의 국민개병주의는 이미 극심한 피로와 한계에 직면하여 있다. 사회적으로는 가진 자, 권력자의 병역 기피가 만연될 대로 만연되어 있으나 이를 국가가 제대로 응징한 적이 없이 어물쩍 넘어갔다는 점이 징병제의 취지를 반감시킨다. 헌법에서 표방한 병역의 의무는 사회적 평등의 기제였으나 거꾸로 반칙과 특권의 온상이 되었다는 점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지금껏 아버지와 아들이 공히 국민개병을 실천한 국가지도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아들이 유일한 사례다. 그 이외에 대한민국 헌정 이래 대통령과 그 자제가 모두 국민개병을 실천한 사례는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와서 청와대 고위공직자의 병역 면탈은 당연한 것처럼 보여 질 정도다. 역사가들은 천년을 유지한 로마가 쇠락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묘사할 적에 바로 이런 식의 특권과 반칙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징병제의 한계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먼저 군 운영 측면에서 보자면, 일단 징병을 한 이상 전투력이 있는 자원이든, 아니든 군에서 내보내지 못하고 국가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다. 실제로 군에는 전투에 부적합한 자원을 지나치게 운용하고 있다. 군에서는 연간 2~3만 명에 달하는 입실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그 중 70%는 치료를 요하지 않는 정양환자들이다. 일반 병원 같으면 퇴원시키면 그만이지만, 군에서는 완전히 회복되기 이전에 야전으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군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해 있는 임무수행의 부적격 자원들이다.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 의료진과 병원시설, 의무행정 조직을 필요로 한다.

군은 또한 대규모로 전과자를 보유하고 있다. 연 평균 6000여 건의 범죄가 발생하는데 이들을 사법처리하고 수용하기 위해 또다시 6000여명의 헌병을 투입하고 있고, 영창, 교도소를 운영해야 한다. 수천 명 규모의 법무조직도 필요하다. 범죄자는 아니지만 군 복무수행 중에 발생하는 연간 3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와 그 관리를 위해 별도의 업무와 조직이 필요하다. 문제 사병을 특별 관리하기 위해 비전캠프도 운용하고 있지만, 지휘관은 ‘사고예방’에 전념하다보니 정작 해야 할 전투발전에 전념할 수 없다. 현재 1개 대대 당 문제 사병은 15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다가 징집된 자원은 국민이 공짜로 제공한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여 전투와 무관한 군 골프장, 복지시설, 휴양소에 5000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 또한 군에서 민간에 아웃소싱해도 문제가 없을 인쇄창, 정비창, 보급창 등 창급 기관에 2~3만 명을 투입하고 있다. 총을 쏠 줄 모르는 군인들이다. 이 외에도 군 종교시설과 학교기관에도 인력을 투입하고 있고, 정훈, 통역과 같은 행정 업무도 상당수의 병력을 요하는 분야다. 게다가 군의 5000여명에 달하는 취사병, 민간 건설회사에 비해 효율성이 지극히 낮은 공병에 수 만 명 등등, 병력 소요는 끝이 없다.

이런 식으로 징집된 자원을 전투 임무와 무관하게 너절너절한 기관들에 분산시키고 나면 65만 대군이라 하더라도 실제 전투임무에 투입된 인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적다. 게다가 지난정부에서 수립한 국방개혁 2020을 기준으로 2020년경의 우리 군의 상황을 예측한다면 육군의 경우 전방 전투부대에 투입될 징집 사병은 아무리 많게 잡아도 20만 명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징병제라는 이름하에 대규모의 징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운영 면에서는 전사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 조직을 유지하는 그 자체에 매몰된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면 전투임무의 최일선에 투입된 병력들의 운용실태는 어떠한가? 가장 많은 병력이 투입되는 한국군 보병대대의 현실을 보면 암담하기 짝이 없다. 무기는 한국전쟁과 월남전에서 사용했던 2세대 급 무기에다가 적을 볼 수 있는 눈이 미흡하여 야간전투능력이 제한되어 있고, 지휘통신과 데이터 공유가 미흡하여 아직도 육성 지휘에 의존하며, 기동수단이 미비하여 아직도 도보이동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보병 부대의 화력이 거의 보강되지 않은 결과 연대 화력이 대대화력보다 뒤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고, 지금도 57mm 무반동총과 같은 2차 대전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화력을 보면 한국군이 어느 시대의 군인지도 의심스럽다. 지금 서방 국가의 군대는 거의 다 모바일 전투체계로 전환하였는데, 한국군은 아직도 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건 두 세대가 뒤쳐졌다는 의미다.

여기에다가 십 여 년 전부터 병영시설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30년 이 넘은 노후시설에서 열악한 주거생활을 하는 곳이 태반이고, 개인 장구류나 의복 역시 형편없는 수준에서 월 10만원으로 버티는 실정이다. 이러한 보병부대 운용 양상은 산업혁명 시기의 근대전쟁에서 보여 진 소모전의 양상을 답습하는 것으로, 전투원의 생명가치가 거의 존중되지 않는 비윤리적 군대 운영이다. 병사 1인당 유지비 역시 미국과 일본에 비해 1/10 수준에 불과한 실정으로, 병사를 사람으로 대하는 것인지, 소모품으로 인식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것이 한국 징병제의 본질이다. 

이런 징병제도는 방치하면 할수록 군 발전도 지체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막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식으로든 손을 봐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근원적인 성찰이 요구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군대가 청년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힘들고 어려운 임무수행 때문이 아니라 군대의 내무생활, 즉 인간관계다. 일상생활에서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억압적이고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다보니 강압적인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군대가 통제와 규율이 강하다는 특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군의 경우는 임무수행 과정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을 강요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 정신적 피해는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최근 징병제 폐지 논란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징병제의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노력, 즉 병력을 감축하고 군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대의에 대한 공감대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에 모병제 도입이 시기상조라면 앞으로도 이런 징병제도와 소모적 군 운용을 방치하자는 얘기인지 더 답답할 따름이다. 장차 한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되어야 할 당위성은 이미 충분한 것이고 문제는 언제, 어떤 조건으로 전환할 것이냐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우선 고려해야 할 점은 한국군의 싸우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다. 현대 전쟁은 대량의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하면 이겨도 지는 전쟁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비록 제한적이라 할지라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필수적 군사력을 갖추자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소모전 방식, 몸으로 때우는 방식으로는 유사시에 그 자체로 대량 사상이라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고, 전쟁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 측 피해가 두려워서 군사적 대응을 망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럴 바에야 하루속히 군사력 규모를 축소하면서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한 실질적 전투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한 전환은 병력 수와 상관관계가 매우 낮다. 오히려 병력을 줄이면 병력 관리에 소요되는 돈과 에너지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 점에서 한국군의 싸우는 방법을 혁신해야 할 강력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둘째, 전문성이 뛰어난 군, 싸우는 전문가로서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징병제를 하루 속히 지원병제로 바꾸는 것이 좋다. 만일 당장이 어렵다면 단계적으로라도 추진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치밀하게 계산되고 기획된 계획에 의해 추진됨이 옳다. 그러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 군대는 선진국에 세 세대 이상 뒤처진 군대로 낙오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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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