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tv] 3분평화칼럼-우리가 속한 세계를 멀리서 낯설게 보기 편집장의 노트

2013. 10. 9 방송

 

 

1968년 10월 11일, 미국의 조종사 월터 쉬라가 아폴로 7호를 타고 우주로 향했습니다. 그는 지구궤도에 머무른 시간은 11일간. 그 때 쉬라는 육안으로 베트남 전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밤이면 소총의 불빛까지 보인다. 베트남 상공에서 깜박깜박 빛나는 걸 보았을 때 번개인가 했다. 그러나 번개의 경우 반드시 구름 속에서 빛난다. 그런데 베트남 상공은 맑았던 것이다. 그래서 전쟁의 불빛임을 알게 되었다. 밤에는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 했다. 그게 전쟁의 불빛이 아니었다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때까지 그는 소련을 이기겠다는 냉전의 신념으로 가득 찬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불빛이 아름다웠다는 느낌에 그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전쟁에 대한 그의 사상과 철학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다음은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심경입니다.

“우주에서 보면 국경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국경이란 인간이 정치적 이유로 마음대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고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이에 두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죽인다. 이건 슬프고도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군인으로 살아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전쟁이라도 그 전쟁에 이르게 된 정치적․역사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 이 지구에 전쟁이 없는 시대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인식이 있더라도, 우주에서 이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위에서 지구인 동료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전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게 생각되는 것이다.”

월타 쉬라의 이 말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감도는 한반도를 바라보고 난 뒤의 심경입니다. 다름 아닌 그는 한국전쟁 시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편 쉬라와 함께 아폴로 7호를 탔던 또 한명의 우주비행사가 돈 아이즐리입니다. 그는 우주시대가 오면 미소의 대립구도도 와해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기껏해야 냉전은 앞으로 30~40년이라고 생각한다. 그 세월 동안 제3차대전을 일으킨다든지 하는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민족국가(national state) 시대에서 행성지구(planet earth) 시대로 돌입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과도기이다. 생각해보면 민족국가 시대는 인류사 가운데 기껏해야 최근 300~400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 두 명의 우주비행사는 ‘행성지구’라는 거시적인 맥락을 봅니다. 그리고 아이즐리의 예언대로 마침내 냉전은 종식됩니다. 물론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냉전종식 이후 지구적 관점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은 분명 ‘행성지구’로 가는 과도적 시기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유독 아폴로 7호를 탄 우주인들이 이렇게 커다란 심경의 변화를 겪은 이유가 뭘까요? 다른 우주선들은 달로 향했던데 반해 아폴로 7호는 지구궤도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 11일간 지구를 매일 쳐다보면서 인간과 역사, 그리고 우주에 대해 성찰할 여유가 있었던 겁니다.

이 체험이 없었더라면 그 두 명의 조종사는 귀환한 이후 환경운동가, 평화운동가의 길을 걷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다 멀리서 우리가 속한 세계를 바라볼 때 우리가 갖고 있던 사상과 지식은 달라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지구를 멀리서 ‘낯설게’ 보았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사상과 철학이 달라졌습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얼마 전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우주에서 한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여기서 지구를 보니 국경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지구 표면 위, 평면적인 시야에서 만들어진 국제정치의 온갖 지식을 멋지게 초월하는 말입니다.

저는 평화를 추구한다고 할 때 이제는 멀리서 우리가 속한 세계를 낯설게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온갖 국제정치 이론이나 전쟁과 평화에 대한 담론들은 대부분 평면적 시각에서 나타난 미시적인 현상을 다루는데 치우치지 거시적인 맥락에서 원대하게, 입체적으로 우리가 속한 세계를 바라보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가 말하는 보수나 진보, 좌파와 우파 같은 이념의 영역에서는 우리의 지식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전쟁의 일으키는 유전자의 독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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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