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급변사태 대비계획, 청와대 지시로 골격 완성 남북군사력

 

D&D Focus 2009년 5월호


고장 난 정부 외교․안보 시스템에 

북한체제 붕괴론 확산 중!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를 둘러싼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가 눈꼴사납다. 자신감 없는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공 던지지 않고 시간만 끄는 장면을 지켜볼 때 치밀어오는 짜증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는 가운데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북한체제의 급속한 붕괴를 가정한 새로운 정부의 대비계획을 수립 중이다. 현 정권 임기 중 닥칠지도 모를 북한 붕괴라는 거대한 대재앙에 대비하고자 하는 정부의 움직임이 급박하다.



이 대통령의 특별지시


작년 말,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체제가 붕괴되었을 때 우리의 대비책이 무엇인지 정부 외교안보 라인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이 당시 통일부의 ‘충무9000계획’, 군사계획인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9’외에 우리 정부 자체 북한급변사태 대비계획인 ‘○○계획(구 고당계획)’의 주요 내용이 대통령에게 브리핑되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 정도 계획 갖고 대비가 되겠느냐”며 “제대로 된 계획을 다시 수립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이 사실을 기자에게 설명해 준 정부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붕괴로 인한 고강도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대통령 지시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산하 대외전략비서실이 주관이 되고, 국정원이 실무를 맡아 북한 붕괴 시 정부 각 부․처의 시행조치를 담은 범 국가차원의 새로운 급변사태 대비계획이 4월말까지 대부분 종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급변사태 계획을 발전시키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급변사태 대비계획이 통일부․국정원․NSC 등 관련부처들의 협조로 작성되고 그 계획이 중구난방으로 분산되어 있던데 반해 이번에는 청와대 대외전략비서실이 큰 방향을 직접 컨트롤하고 국정원이 각 부처 계획을 단일한 안으로 종합한다. 국정원은 이미 작년 말에 각 부처에 ‘북한 급변사태 기본계획’을 작성하여 내려 보내면서 “각 부처의 시행 매뉴얼을 작성하여 국정원으로 제출하라”는 지침을 통보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8월 말 청와대가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을 장으로 하는 대통령 직속 국가위기상황센터를 발족시켜 국정원·통일부·국방부·합참 등과 함께 대비계획을 점검하기 시작한데서 출발한다. 청와대는 2주에 한 번씩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주재로 정세평가회의를 열어 북한의 위기 상황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중간 결과가 이명박 작년 말에서 올해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보고된 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번에 정부가 수립하고 있는 북한 급변사태대비계획이 기존의 계획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선 ‘북한체제의 급격한 붕괴로 인해 초래되는 한반도에서의 고강도 위기를 가정하고 계획을 수립한다’는 출발부터 기존계획보다 훨씬 더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청와대는 기존의 정부 계획은 북한의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시 한국으로 그 혼란이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어적 계획이며, 북한 체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미흡했던 것으로 본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우발적 상황으로 인한 국가 재앙에 위기의식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논의 자체를 금기시 하며 형식적 차원의 계획수립에 안주했다는 비판이다. 이것이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런 정도의 계획 갖고 되겠느냐”는 반응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단순한 행정적 조치만이 아니라 외교적․군사적 실행조치까지 담은 포괄적인 계획으로 구체화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입장이다.



고강도 국가계획 수립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작성하는 계획에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보다 강도 높은 정부의 액션플랜을 담으라”는 지침이 덧붙여졌다. 예컨대 북한 체제에 위기가 발생한 경우 기존계획에는 “국내 언론사와 보도 내용을 협조한다”고 되어 있으나 이번 계획에는 “정부가 확실히 언론을 장악하여 보도를 통제”하는 수준으로 시행조치의 강도를 높이게 된다. 그런가 하면 북한에 대한 행정 통치를 지원하기 위해 공무원을 동원할 시에도 과거에는 지자체에서 차출하는 것 정도로 계획에 나와 있으나 이번에는 “확실히 엄선된 요원을 투입하여 군의 민사작전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우리 정부의 북한에 대한 행정 통치를 조기에 완결하는” 내용으로 그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의 우발사태가 남한의 경제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강력히 시장을 통제하여 국민생활을 안정시킨다. 동시에 북한에 주민에 대한 심리전을 전개하고 탈북난민을 효과적으로 수용하는 등 입체적 계획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그러나 일선 부․처의 일하는 분위기는 청와대의 강력한 지침과 다소 괴리되어 있다. 청와대 지침을 전달받은 부․처 담당자들은 “도대체 무슨 자료를 참고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볼 멘 소리다. 청와대가 요구하는 수준의 정부계획은 계엄이 선포되고 국가 동원령이 하달된 고강도 국가 비상사태, 즉 정부의 비상사태 기준으로는 ‘충무 2종 사태’이며 군사대비태세로는 ‘데프콘 Ⅱ’에 해당되는 고강도 비상사태다. 이 단계는 이미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 버금가는 초대형 국가 위기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강도 높은 국가계획을 만들려면 전략적 마인드가 강한 국가 엘리트들이 모여 비밀계획으로 작성해야지 왜 부․처 담당 공무원들에게 해답을 내 놓으라고 다그치는지 모르겠다.”

한 담당 공무원의 말이다. 계속되는 그의 하소연.

“하도 급하게 대책을 내 놓으라고 하니 대충 작성하고 있다. 다른 부․처에도 알아보니 무성의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베낄 자료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다. 관계부처에 자료를 보여 달라고 하면 잘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 공무원의 말대로 전문성이 없는 부․처의 비상대비 업무 담당자들이 동원되어 만드는 급변사태 계획이란 그 실효성이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먼저 북한의 급변사태란 것이 과연 무엇이고, 이것이 왜 국가 위기인지, 그리고 국가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국가 강령 차원의 방향제시가 나와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엘리트 그룹이 계획 작성을 이끌어가야 한다. 현재 이러한 역할은 청와대 대외전략비서실과 국정원이 수행하고 있으나 그 기본취지가 공무원들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일선 공무원들의 이러한 분위기와 달리 이번 급변사태 계획 발전의 지침에는 “기존에 가정하였던 북한 우발사태보다 훨씬 강력한 위기상황임을 가정하고 계획을 수립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만큼 그 추진의지는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보고 베낄 자료조차 없다는 하소연에 대해 이 문제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국정원의 기본계획만 잘 보아도 부처가 충분히 시행계획을 작성할 수 있다. 안보의식이 결여된 공무원들이 일하기 싫어서 만들어 낸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이와 별도로 군 당국은 한․미 동맹을 기초로 한 훨씬 심도 깊은 대비계획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산 차원의 계획 정상화


잠시 노무현 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2004년 10월 26일 한국을 방문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했다. 당시 언론은 6자회담과 관련한 협의가 이루어졌다고 보도했으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중요한 대화 내용이 있다. 미국의 네오콘이 걸핏하면 북한의 체제전환이나 정권교체를 말하며 북한을 자극하는데 불만을 가진 노 대통령이 파월 국무장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두 가지만 묻겠다. 첫째는 북한 체제가 정말 붕괴할 것으로 보는가? 두 번째는 그러한 붕괴가 과연 바람직한가?”

예기치 못한 질문에 파월은 당황했다. 그러나 침착하게 응수했다.

“대비는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정적이 흐르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미 이 둘은 상대방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대화는 없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NSC)는 1999년 한․미가 합의하여 만든 북한 김정일 유고와 대량 탈북사태를 가정한 개념계획 5029를 주목했다. 이 계획의 문제점은 북한이 붕괴된다하더라도 북한 지역에 대한 한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유엔군 사령관의 모자를 쓴 한미연합사령관이 북한을 관리하는 주체로 되어 있다. 또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통제를 위해 미국이 주도적으로 북한지역에서 작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청와대는 이러한 계획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았고, 더군다나 한․미 합의대로 5029가 개념계획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실행을 위한 작전계획으로 전환된 것은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이 2005년 초 한미연합사에 전달되자 리언 라포트 전 연합사령관은 “한․미 동맹 깨자는 거냐”며 격렬히 반발했다. 한․미 동맹이 이 사건 하나만으로 상당한 불협화음을 냈다. 이에 대해 리처드 롤리스 미 동아태담당 부차관보도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2005년 중순 미국을 방문한 이종석 NSC 차장을 숙소로 찾아가 “도대체 우리가 한국정부의 어떤 주권을 침해했다는 거냐?”며 몹시 흥분했다. 결국 2005년 4월, 한․미는 5029를 작전계획이 아닌 개념계획 수준으로만 유지하기로 절충했다.

이 시기 대북 햇볕정책은 체제 위기에 처한 북한을 연착륙시키면서 점진적으로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지 북한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획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 붕괴를 막는 것이 국가 정책이었다.

반면 미국의 네오콘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의 정권교체와 체제전환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유사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미국이 조기에 통제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북한 체제가 통제력을 잃을 경우 핵 물질이 외부로 반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이것이 미국의 안전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위협요인이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미국 주도로 북한의 급변사태 초기부터 개입해야 할 필요와 명분은 북한의 핵개발이 진행될수록 강력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롤리스 부차관보 등이 줄기차게 급변사태계획의 필요성을 주장하자, 이것이 북한을 자극하는 빌미가 되는 것을 우려한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부에서는 “롤리스가 자신의 장관 자문위원직 유지하면서 한국문제에 개입하려는 장사 속에서 자꾸만 북한을 자극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 과거 정부가 남북관계가 국가 주권 차원에서 고려되었던 작계 5029 문제는 즉각 한․미 동맹 강화 차원으로 그 문제의 초점이 바뀌며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국방부 관계자의 말.

“정권이 바뀌고 개념계획 5029는 작전계획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미 작년에 작전계획으로 다 전환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실 작전계획 5029는 99년에 착수한 이래 오랜 전에 이미 완성된 계획이다. 이것이 이제 와서 개념계획이냐, 작전계획이냐, 라는 논란조차 무의미해진 상황이다. 그냥 책상 서랍에서 꺼내기만 하면 된다. 한․미간에 이 문제에 대한 이견이 해소되어 요즘은 연합사 한국군 장교들이 ‘일하기 편하다’는 말을 할 정도다.”

  

 

통일의 기회는 없다


한편 기자가 이런 내용을 모아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4월 22일,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대한상공회의소 강연에서 “북한의 불안정한 사태, 즉, 급변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준비 중”이라며 “이미 이 계획을 연습까지 했으며 우발상황 때 즉각 적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한국과 미국은 이를 통해 즉각적인 전투태세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의 맥락은 작전계획 5029가 재추진되고 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

'작계 5029'는 북한에서 정권교체와 쿠데타 등에 의한 내전, 북한 내 한국인 인질사태, 대규모 주민 탈북, 핵과 생화학무기 등 6가지 불안정한 사태에 대한 유형별 군사 대비계획을 담고 있다. 특히 핵과 생화학무기 부분은 미국이 단독으로 북한에 개입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애초 개념계획으로 5029를 유지하고자 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마지막까지 논란이 되었다가 국방부와 NSC가 참여한 노무현 대통령 주재회의에서 인정하기로 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군 관계자들은 북한이 혼란에 빠졌을 때 대한민국이 아닌 유엔의 이름으로 북한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으로 이미 기운 것으로 보여 진다. 작계 5029에 위하면 미국은 북한 체제의 동요 조짐이 보이고 정권의 체제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될 경우 즉각적으로 개입 의사를 천명한다. 북한의 핵무기가 중국이나 제3세력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목표로 조기에 개입을 서두른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유엔군 사령관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북한 지역에서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 국제법적으로 한국과 북한은 엄연히 별개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미국은 북한 지역에 대한 작전에 있어 한국을 배제하고 중국과 협상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만일 미국이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할 때 중국도 역시 한반도 북단 39°선까지 들어와 자신의 ‘관할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러한 ‘중국 개입설’에 대해 지난 2003년 초, 미국의 체니 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당시에도 미국은 한반도 우발사태 문제에 대해 중국과 협상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몽골에 5군데 대규모 탈북 난민촌을 만드는데 중국 정부의 양해를 받아내려고 은밀히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문제를 또다시 강대국의 협상물로 전락시키는 ‘21세기 판 얄타체제’가 재현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정전상황을 넘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영구적인 분단체제가 출현할 가능성이다. 이점은 ‘북한의 혼란을 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한국 내 보수 세력의 기대와는 달리 사태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주권의 문제를 제쳐 두고 단지 ‘북한의 우발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 하나만으로 국방부가 작전계획 5029를 전부 인정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추인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여기에는 현 정부 들어와서 벌어진 ‘특수상황’이 한 몫 했다. 바로 김정일 건강문제다.  

지난 11월 중순, <월간조선>이 “우리 정보기관이 8월 중순에 북한 김정일의 뇌 사진을 확보해 뇌졸중임을 정확히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 “우리 정보당국은 ‘김정일의 통치가 5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히면서 “정보당국의 보고서가 지난 9월 9일 노동당 창건일 행사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전했다.

기사가 보도된 직후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특급 대북정보가 언론에 유출된 진원지는 국정원이 아닌 청와대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청와대 역시 ‘내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한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문제의 보고서는 9월 4일에 열린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 국정원이 제출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 회의는 국정원이 요청하여 소집되었고 외교․안보분야 장관들이 전원 참석했다. 회의 당시에만 해도 국정원의 보고서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으나 9월 9일 북한정권 창건 기념일인 9․9절 행사에 김정일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외교안보 수장들의 분위기는 국정원 보고서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김정일의 부쩍 야윈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후계구도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북한 내 혼란에 대해 이제는 외교안보 라인들이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완전히 기울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샤프사령관 미스터리


그런데 돌연 샤프 사령관의 대한상공회의소 발언이 전해진 4월 22일, 국방부와 한․미 연합사는 “개념계획 5029가 작전계획 5029로 전환된 바 없다”며 사태 확산을 진화하고 나섰다. 때마침 정부 외교․안보 라인들은 북한과 대화의 통로를 뚫기 위해 총동원되어 있던 상황. 이제까지 급변사태 대비계획 만든다고 요란 떨던 정부가 이제는 갑자기 대화 분위기로 돌아서 “작전계획 5029는 없다”고 부인하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뒤집힌 샤프 사령관의 말은 우발적으로 터진 ‘사고’였을까? 이에 대해 정통한 연합사 출신 관계자의 말이다.

“샤프 사령관의 연설은 사전에 치밀한 법적 검토와 정무적 판단을 거쳐 나오게 되어있다. 펜타곤과의 사전조율도 다 된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의 발언이 절대 우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전임 벨 사령관이 다소 정무적으로는 어리 숙한 원칙주의자라면 현 샤프 사령관은 자신의 발언이 미칠 파장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정치군인 스타일이다. 이미 자신의 발언으로 인한 파장까지 다 예상하고 있었다고 본다.”

이 관계자의 말을 재해석하면 펜타곤과 주한미군 사령부는 작전계획 5029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이미 굳어져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될 수 있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 통치, 길어야 5년’이라는 보고서가 정부 외교안보 라인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었다”고 말한다. 작년에 이 거대한 태풍을 예고하는 기상특보에 중장기 국가안보전략을 준비하지 못한 청와대는 크게 흔들렸었다. 그러나 돌연 최근에는 대화 분위기로 상황이 바뀌니까 이번에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갑자기 고조되어 샤프 사령관의 발언을 강력히 부인하는 것이 정부 분위기다. 엄청난 혼란이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중장기 대북정책의 원칙과 방향, 전략이 확고하지 못한 고장 난 정부 위기관리의 현주소다. 특히 작전계획 5029는 북한체제가 붕괴되었을 때를 대비한 ‘미국식 북한 봉쇄계획’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상생공영을 표방한 우리 정부 대북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점을 간과하고 미국의 안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군사계획이 구체화되고 연습까지 하는 것을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거꾸로 이를 부인해야 하는 딱한 상황이다. 전략 부재가 초래한 위기관리의 공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전문가들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북한체제의 내구력을 상기시킨다. 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의 분석.

“북한 김정일의 건강 악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설령 김정일이 5년 내에 통치력을 상실한다 하더라도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 중에서 현재의 선군정치 노선을 크게 변경시킬 수정주의자가 없다. 게다가 북한의 군부는 모든 정치적 결정에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고 잘 통제되는 조직이어서 군부 쿠테타와 같은 가능성은 보여 지지 않는다.”

결국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전망이 북한 내재적인 관점이 아니라 남한의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타당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예전에도 한국은 물론 미국도 이와 같은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황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은 89년 중국의 베이징에서 민주화 시위로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랜드 연구소와 같은 유수의 연구기관이 ‘중국 군부 쿠테타설’을 제기했던 사례를 지적한다. 당시 군부 쿠테타를 조심스레 전망했던 미국의 관변학자들은 중국체제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북한 문제를 접근했던 것이 오늘 우리가 보게 되는 정부의 대혼란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전 정부가 한국과 북한을 나(I)와 너(you)의 관계로 보았다면 현 이명박 정부는 나(I)와 그것(it)의 관계로 본다.  북한은 이해의 상대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그것(it)이다. 이럴 경우 북한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깊이가 다르다. 북한을 알지 못함으로써 불안은 더 커진다. 따라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필요성은 구체적인 어떤 정보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보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분명히 현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한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에 기초해 있지는 않다. 어디서 주어 온 조각 정보들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국가정보원을 통해 청와대로 흘러 들어간 융합되지 못한 조각정보들은 이제 현 정부의 국정기조를 크게 혼란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것이 김영삼 정부가 이미 저질렀던 오류인 ‘길어야 5년 신드롬’이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북한 우발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이에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전략적 판단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다는 것은 공연한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 작금의 정부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