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한반도 위기관리 2.0’을 위한 제언 남북군사력

 

 

<창작과 비평> 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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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왜 위기관리인가?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에 이어 올해 10월에는 임진각에서 남북 군대가 교전 일보직전까지 가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상이나 해상에서 각기 국지적인 교전의 위험성이 매우 커졌고, 위성항법장치(GPS) 교란사태나 해커를 동원하는 사이버전쟁도 진행 중이다. 더 나아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함으로써 향후 한반도 정세에 파국을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기가 발생할 개연성이 고조되고 있다.

밖으로부터는 아시아태평양의 해양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치가 강화되고 있다. 지금의 미중 갈등이 강대국 간의 본격적인 패권 경쟁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한반도 정세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외부효과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진 2010년의 경우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는 G2 대치국면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하며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다가 최근 예기치 않게 불거진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민족주의로의 회귀와 그 연장선에서 벌어진 영토분쟁 역시 우리에게는 잠재적 위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위기요인은 대선 정국에서 우리 내부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바로 북방한계선(NLL) 논란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극단주의가 있다. 첫째는 국제해양법이나 국내법인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법률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NLL로 설정한 서북해역이 우리 쪽 ‘관할수역’이라는 기존 정의를 초월하여 우리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우파 극단주의다. 이 주장이 현실화되어 대중 선동의 효과가 고조된다면 이는 국제사회에 대한 중요한 도전으로 인식되어 다음 정부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과도 날카롭게 대립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그 반대편에는 NLL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좌파 극단주의다. 비록 국제법적으로는 NLL의 논거가 취약하더라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불가침경계선으로 인정하였던 남북관계의 현실을 도외시한다면 이 또한 서북해역의 안정에 심각한 부정적 효과와 함께 우리 사회 내부에서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분쟁을 막자는 취지로 설정된 불가침경계선이 상대방을 배제함으로써 물리적 충돌을 유발시키고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분쟁선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반도의 위기관리는 그 목적과 수단, 방법이 매우 굴절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점을 깨우쳐 준다.

1962년의 꾸바 미사일 사태는 핵전쟁의 위협에 직면한 케네디 행정부가 정보력, 외교력, 군사력을 효과적으로 배합하여 위기를 통제하고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한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반면 1999년 6월에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는 남북한 어느 당사자도 교전을 할 의사가 없었고, 교전이 벌어질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6척의 북한 함정이 격파되고 적어도 100명이 사상되는 대규모 교전으로 악화된 위기관리의 실패사례였다. 오늘날 NLL 논란의 기원이 된 제1연평해전으로 알려진 이 교전이 발생하고 나서 3년 후에 절치부심한 북한이 보복 공격을 감행하여 우리 함정이 격침되고 6명이 전사하는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였다. 한 때는 생명의 바다, 평화의 바다였던 서북해역이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까지 겪은 오늘날에는 남북한 군대가 결전을 준비하는 죽음의 바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수역으로 돌변했다. 그 결과 북한의 군사력을 제압하고자 하는 군사정책이 위기관리와 동일시됨으로써 한반도 안정의 기제는 확연히 약화되고 있다.

남북 군대가 대치하는 전장은 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율신경계와 같아서 정치권력이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치권력이 남북한 군사력의 속성을 파악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하며, 만일 위기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대북정책을 준비한다 한들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2절에서는 현재 한반도의 위기구조를 개략적으로 살펴본 후에 3절에서는 그간 우리 위기관리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4절에서는 대안적인 위기관리의 방향을 위기관리2.0의 차원에서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5절에서는 결론을 대신하여 위기관리2.0 구현을 위한 과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2. 2013년 한반도 위기의 지형

 

어떤 국가와 정부든 자신들이 겪는 위기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찰스 허먼(Charles F. Hermann)은 대부분의 위기발생과 전개 유형을 일반화하여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위기도 그 일반적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위기의 강도(저강도/고강도), 위기의 예측 가능성(예견된/예기치 않은), 위기의 대응시간(급박한/여유 있는)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국제정치에서의 위기를 유형화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 위기구조를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기의 강도를 기준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전략적 위협이다. 미중 간의 군사적 대결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과 같은, 우리 군사적 대응의 범위를 초월한 최상위의 위협이다. 군사적으로 대비되지 않는 강도 높은 위기는 정치력과 외교력으로 보완함으로써 사전에 그 위협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밑에는 한반도 전구(戰區) 차원의 작전적 수준의 위협으로 재래식 전쟁의 가능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는 한국전쟁 당시처럼 북한이 탱크로 부산까지 밀고 내려오는 식의 대규모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남북한 군대는 재래식 2세대 무기체계에 의한 지상에서의 대규모 교전의 양상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대비하지 않을 수도 없는 위협이다. 맨 아래에는 한반도 전체에 위기를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신속하게 발생할 수 있는 특정 범위에 국한된 전술적 차원의 위협이 있다. 비록 소규모이지만 그 심리적 충격은 크고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둘째, 위기의 예측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우리의 직관과 상식을 초월한 천안함 침몰 사건과 같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 있는 반면, 천안함사건 여덟달 뒤에 벌어진 연평도 포격은 충분히 예견되었고 경고를 받은 사건도 있다. 향후 한반도 위기는 충분히 예견되어 대비할 수 있는 유형보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상식의 배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재래식 전쟁수행능력에서 군사력 균형이 무너지고 열세에 처한 북한은 우리가 예측하고 대비하는 영역을 벗어나 의표를 찌르는 군사전술로 자신들의 열세를 만회하려 할 것이다. 또한 상비군으로 지상과 해상의 경계선을 방위하고 항공력으로 공역을 통제하는 전통적 안보 개념을 벗어나서 비군사적 수단으로 국가와 사회의 핵심 기반망을 교란하고 마비시키는 새로운 위협도 출현했다. 이 경우에는 군사력 비교란 무의미하며 경계선도 필요하지 않다. 2006년에 비정부기구(NGO)에 불과한 헤즈볼라가 중동 최강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공군과 육군을 완전히 제압한 것도 비군사적 수단(사이버전, 전자전)과 군사적 수단(무인항공기)을 적절히 배합하는 매우 ‘낯선’ 전쟁기술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군의 패전을 지켜본 전쟁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세계의 전쟁기술은 평등화되었다”고 선언했다. 당시 헤즈볼라의 전자전 능력은 상당 부분 이란이 제공한 것인데, 이미 북한은 이란과 군사기술을 교류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헤즈볼라의 전쟁수행방식을 자체적으로 내재한 하이브리드 전쟁기술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위기의 대응시간 면에서, 위기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하고 대응할 시간이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무런 경고 없이 갑자기 나타나 통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1999년의 제1연평해전은 그해 6월 6일에 시작된 무력시위가 6월 15일의 실제 교전으로 이어지는 데 9일이 걸렸다. 그러나 최근 서해 분쟁을 보면 남북한의 서해 전투부대가 각기 서울과 평양의 정책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현장에서 즉시 대응하는 구조로 지휘통제가 전환되었다. 유사시 정책결정의 속도를 단축하는 빠른 지휘체계가 출현한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가 서해사령부를 방문하여 지휘권을 현장 지휘관에게 전부 위임하는 발언을 했고, 이명박 대통령 역시 같은 메시지를 군에 전달한 바 있다. 신속한 군사적 대응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남북한의 정치권력이 중요한 군사적 결정을 상당 부분을 현장지휘관에게 위임함으로써 속도에서의 승리를 추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반도 위기의 유형이 국지성, 불예측성, 신속성이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위기관리의 행위자로서 정부의 합리성이 훼손됨을 의미한다. 군대가 수행하는 군사행동은 정치권력이 합리적으로 설정한 목표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인데, 군대가 그러한 정치적 목적의 범위를 초월하여 과도한 행동을 감행할 경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모두 허약해지는 현상이 바로 합리성이 붕괴되는 경우다. 최근 서북해역에서 군이 ‘자위권 행사’에 대한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상부의 지시 없이 곧바로 군사행동을 하도록 한 것은 위기관리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3. 위기관리 1.5의 시대 - 기계적이고 주관 없는 사고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까지 청와대에는 위기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을 주한미군과 미국정부에 의존하는 체제로서 위기관리1.0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이때까지 청와대는 비서실에 안보상황을 파악하고 판단을 내릴만한 수단이 전혀 없었고, 단지 대통령 경호실이 정보기관, 군부대와의 통신을 통해 대략적인 안보상황을 파악할 뿐이었으며, 그 주된 목적도 위기관리가 아니라 쿠테타 방지, 즉 대전복 임무에 맞추어져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이 안보상황을 관리하면서 대통령 위기관리를 위한 초보적인 수단을 갖추기 시작한 김대중 정부 중반기부터 현재까지는 지속적으로 안보상황에 대한 관리가 가능한 방향으로 상황실이 보완되어 위기관리1.5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기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그 중요성과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대부분의 위기관리가 실패한 과도기로서 1.5의 시대로 보여 진다.

우리는 이제껏 남북한 정부가 각자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행위자라는 관점에서 남북관계의 제반 현상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서해의 안보위기는 양보할 수 없는 국가 이익을 구현하기 위한 남북한 정치권력의 의지가 충돌하는 공간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같은 이해방식은 큰 그물로 큰 물고기만 잡고 바다 속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바다 속에는 큰 물고기만이 아니라 작은 생물도 있기 때문에 작은 그물도 던져보아야 그곳을 알 수 있다. 한반도 위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조직행태적 시각’과 ‘정부정치라는 시각’이라는 작은 그물을 필요로 한다. 북한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기발생 원인 전부로 보는 태도를 벗어나, 우리 내부의 위기관리 조직의 행태와 정부 관료집단 내부의 정치적 요인을 망라한 정책결정론 시각에 따라 위기가 악화된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 위기관리의 비합리성을 이해하려면 스타인부르너(J. Steinbruner)가 설정한 인식론적 모델에 그 길을 묻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스타인부르너에 의하면 위기시 정책결정자의 인식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일상적인 기계적 사고(grooved thinking)다. 이러한 유형의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수립된 절차, 즉 표준행동절차(SOP)에 따라 자동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며, 더이상의 창조적인 고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고로 인해 위기가 악화된 경우는 1999년의 제1연평해전이 해당된다. 이는 애초 남북한 모두 교전의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평화적인 해결이 가능했고, 소형 고속정으로 충분히 방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북한 함정의 무력시위가 벌어진 6월 6일부터 9일까지는 별다른 교전의 징후가 없었다. 그런데 6월 13일에 국방부와 합참이 ‘대형 함정에 의한 방어’를 청와대에 건의하고 해당 해역에 출동시키자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전투능력이 없는 수송함(LST)과 구조함(ATS)을 NLL 선상에 도열하도록 조치하자 이에 놀란 북한이 어뢰정을 출동시켜 군사적 긴장이 급격히 높아진 상황이 벌어졌고, 6월 15일에 북한의 어뢰정으로부터 우리 대형함정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선체를 충돌시키는 공격을 감행하자 북이 응사하면서 대형 교전이 벌어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형함정에 의한 방어라는 국방부의 결정에 현장 지휘관인 2함대 사령관도 반발했다는 점이다. 당시 국방부 결정은 육군 위주의 합참이 해상 상황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마치 지상의 군사분계선을 방어하는 것과 유사한 군사작전을 무리하게 잘못 적용하여 판단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전투능력이 없는 대형 함정이 NLL 선상에 늘어서 있으면 마치 우리가 해상경계선을 방위할 위지를 더 과시하는 단순한 인식이 작용한 결과다. 육군 일색의 합참이 지상군의 표준행동절차를 해상에서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위기관리에 악영향을 준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국방부와 합참의 결정에 아무런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사태가 악화되도록 수수방관하는 무능력을 드러냈다.

2002년 6월 27일의 제2연평해전 역시 현장 지휘관의 통제에서 벗어나 ‘예전에 하던 대로’ 2함대 소속 참수리 고속정 두척이 북한 경비정에 접근하였다가 기습을 당한 사건이었다. 당시 해군 고속정이 당시 아무런 전투대형도 유지하지 않은 채 접적수역에서 북한 경비정 코앞까지 접근하여 스스로 표적이 된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처벌받을 만한 사안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유엔사령부 정전시 교전규칙에서 규정한 자위권 행사 요건 네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상황으로 근접 차단기동은 고려하기 어려운 대안이었다. 그러나 합참은 “북한 함정과 3km 이상 거리를 둘 것”을 이미 지시한 2함대 사령관을 무시하고 2함대 상황실을 통해 전투부대에 직접 근접기동을 지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정상적 지휘계통이 작동하지 않고 비전문가에 의한 부당한 간섭과 부적절한 지시가 커다란 참극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 날 교전이 발생하는 동안에도 청와대는 월드컵 마지막 날의 축제 분위기에서 전 직원이 청와대 근처에서 점심 회식을 하는 동안 주요 직위자들에게 상황의 심각성이 보고되지 않았고, 서해 교전사태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상황실이 제대로 가동되지도 않았다. 사건 발생 직후 국정상황실이 조사에 착수하였으나 조사도 부실하였고, 그나마 조사결과도 국정상황실은 비서실장에게 비대면 보고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였다. 제2연평교전의 결과에 대한 책임논쟁은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청와대가 “발포하지 말라”며 군사작전에 간섭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전에 무관심한 채로 개입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당시에는 청와대에 위기관리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교전에 관한 사항은 “국방부가 알아서 했을 것”이라는 기계적이고 일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발견된다.

둘째는 이도저도 아닌 주관적 사고(uncommitted thinking)로서, 고위 의사결정자가 소신 없이 일단의 보좌관들이 하는 말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경우다. 이명박정부의 위기관리 행태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예컨대 천안함사건에 대한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나흘 뒤에 나온 5․24조치는 한미연합 서해 해상훈련을 실시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등 고강도 군사적 대비책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해 8월, 막상 11월로 예정된 G20 서울정상회의를 앞두자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미국 항공모함이 동원되는 서해 해상훈련을 전격적으로 취소시킨다. 매번 서해에 항공모함을 보내려는 미국에게 훈련 취소를 통보하는 바람에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로 출항했다가 두 번이나 되돌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만일 서해에서 한미연합 해상훈련이 진행되면 후 진타오(胡錦濤) 주석이 G20 정상회의에 불참하겠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문제 역시 “만일 북한이 심리전 재개에 공격을 감행하면 대비책이 무엇이냐”는 월터 샤프 연합사령관의 문제제기에 답변이 궁색한 청와대와 국방부가 알아서 취소한 결과였다. 5․24조치의 핵심 목표가 서해에서 더 이상의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목표와 수단, 방법의 합리성이 붕괴된 결과가 바로 연평도 포격사건을 허용한 배경이 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지고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러한 행태는 선거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둔 3월초 이명박정부는 탈북자 송환 문제, 제주도 해군기지 강행, 국방장관의 연평도 방문으로 북한 의제를 한꺼번에 부각시키면서 대북 강경조치와 종북 논란을 통해 공포와 갈등을 조성했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끝나고 북의 미사일 발사와 ‘특별행동 선언’ 등으로 위기가 더 고조되었지만 이번에는 일체의 반응 없이 차분하게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이는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함으로써 북한 변수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정국에서 NLL 논란이 가열되자, 비밀리에 연평도를 방문한 데 이어 임진각에서 탈북자단체의 전단 살포를 지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북한이 갱도진지의 포문을 개방하는 등 전투준비를 취하자 그때서야 전단 살포를 막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사전에 남북 간에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비하지 않았다가 막상 위기가 고조될 조짐이 보이자 그때서야 정책을 바꾼 것이다. 이렇듯 면밀한 분석 없이 성급하게 정책을 결정했다가 스스로 이를 취소하는 악순환이 정권 내내 이어지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의 대북 강경책이 사실은 소리만 요란한 허풍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시켜 위기관리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소에 안보의 이익을 최대화(maximizing)하는 위기관리 정책을 수립하지 않고 최고결정자에게 최초로 인식된 가장 그럴듯하고 적당한(satisficing) 선택을 한 뒤, 막상 위기가 발생하면 그 때 자신이 결정한 선택을 뒤집는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셋째는 가장 바람직한 사고로서 논리정연하고 이론적인 사고(theoretical thinking)다.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관성과 안정성이 있는 믿음 체계(belief system)를 가지고 소신껏 의사 결정을 하는 태도이다. 2013년 정부가 한반도 위기관리에 임하는 태도가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위기관리 의사결정에 있어 몇가지 개선된 인식이 필요하다.

 

 

4. 안보의 합리성 구현 - 위기관리 2.0의 방향

 

먼저 목표의 합리성이다. 새 정부의 합리적인 안보 목표는 기존의 유엔사령부 정전시 교전규칙과 유엔헌장이 정한 자위권의 개념에 충실하면서 저강도 위기가 고강도 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구사할 줄 아는 유능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유능함이란 ‘강압’과 ‘흥정’의 전술을 적절히 배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는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압적 수단을 준비하되, 이 수단을 활용하는 데 있어 더 큰 위기로 발전할 확률이 50%를 넘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가고자하는 위험한 벼랑 옆에 완만한 언덕이 있다는 점을 북한이 인식하도록 안내하는 흥정 또는 협상의 수단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을 완만한 언덕으로 안내하는 수단은 북한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는 수단이다. 꾸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 미국이 유럽에 배치된 중거리 핵미사일을 철수시켜 흐루쇼프(N. Khrushchov)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이를 위해 국가 최고의 전략적 두뇌들을 대통령 주변에 결집시켜 강력한 위기관리 조정통제력을 발휘함으로써 군사적 수단만이 아닌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수단들이 위기관리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를 재구축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수단의 합리성이다. 국지적인 위기에는 적절한 소규모 대응수단이 있음에도 불필요하게 대형무기 또는 과도한 전력을 투입함으로써 ‘도끼로 모기를 잡는’ 실수를 계속 반복해왔다. 앞에서 언급한 제1연평해전의 경우가 바로 수단의 비합리성에 해당되는 사례다. 천안함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재평가될 수 있다. 백령도 인근은 대청도, 연평도와 달리 북한의 해안포(장사정포), 경비정, 지대함 미사일(실크웜), 잠수정의 위협이 모두 중첩되어 있는 유일한 해역이다. 이 해역의 작전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유사시를 대비하여 은신하고 있는 작고 빠른 고속정이 가장 합리적인 대응수단임에도 비교적 대형함정인 초계함을 투입했고, 더구나 접적지역에서 최저 속도로 기동함으로써 위협에 노출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이것은 작전이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기동이었다. 천안함사건 일주일 전인 2010년 3월 19일에 해군 2함대 사령관 출신 예비역 제독이 김태영(金泰榮) 국방장관에게 핵심 전력을 접적지역에 전진 배치한 당시 ‘NLL 대비계획’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직접 설명했다는 증언도 있다.

군사적 수단 자체도 비합리성을 내포하는 순간 위기로 연결되지만, 군사적 수단 외에 외교력, 정보력, 경제력에 의한 수단을 가용한 목록에 정렬시키고, 이것을 배합하고 융합한 위기관리의 기술을 청와대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절차와 규범의 합리성이다. 이명박정부에서 서해 군사정세가 급격히 악화된 가장 결정적 계기는 2009년 1월에 북한의 총참모부가 ‘대남 전면대결태세 선언’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국방부가 2월에 새롭게 ‘NLL 대비계획’을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사령부 교전규칙에서 제시한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이제껏 소규모 충돌에 제한적 군사력으로 서북해역을 방위하던 계획을 크게 수정하여, 지상에 배치된 자주포, 공군의 KF-16, F-15K 전투기, 대형 수상함의 함포로 초기에 북한을 제압한다는 것이 이 새로운 계획의 핵심이다. 이 계획이 언론에 누설되자 북한은 해안포와 후방의 장사정포를 100문 이상 증강하고 서해의 전투기 출격회수를 6배 증가시키는 등 결전을 위한 준비태세로 전환하였다. 국방부의 ‘NLL 대비계획’은 그해 1월에 통일부와 외교부가 반대하여 채택되지 않았으나, 국방부가 타 부처의 반대를 회피하여 2월에 대통령에게 단독으로 보고하여 채택된 것이다. 중요한 군사정책에 대해 정부 차원의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청와대 외교안보참모들조차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전격적으로 실행되었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를 군이 과도하게 주도하면서 악화된 서북해역의 군사정세는 2009년 11월의 대청해전으로 이어졌고, 그 이듬해에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서북해역의 자연적, 군사적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국방부가 강압적 군사정책을 밀어붙이고 정부 차원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결과 위기관리와 국가안보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보여주는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해상에서의 위기에 전문성이 없는 육군 중심의 합동참모본부가 해양에서의 작전에 과도하게 간섭하여 위기를 악화시킨 두차례의 연평해전도 절차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청와대와 합참이 해야 할 일은 분쟁을 통제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인데, 연평해전의 경우에는 현장 지휘관이 결정해야 할 함정의 구체적인 기동양상과 동원할 무기체계까지 합참이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하다가 현장 지휘관과의 의견충돌로 지휘계통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이 과정이 위기관리 전과정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변질시켜 위기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확대하였다.

위기관리 과정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 현장지휘관에게 이르는 전 과정은 책임과 권한에 있어 합법성과 정당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반도 위기에 대한 국가차원의 목표와 지침이 정해지면 군사적 활동의 목적은 이에 부합되도록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5. 결론 - 2013년의 국방정책 2.0의 보완책

 

남북관계가 평화 상태를 지향하는 도중에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위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더 나쁜 상황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정치권력과 군사지도자 간의 매우 부적절한 의사소통 방식과 표준행동절차, 상호대립적인 정책집단 사이의 경쟁이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관리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규범과 시스템이 실종되었다는 점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위기관리 방향과 절차, 규범을 종합적으로 규정한 ‘위기관리기본법’을 수립하지 않고, 전통적 안보(전쟁), 재난, 사회핵심기반보호라는 세가지 영역을 축으로 포괄적 안보 정책으로 표명되어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참여정부 시절에 포괄안보 개념으로 설계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와 상임위, 위기관리센터를 전격적으로 해체한 후 청와대에서는 전통적 안보 문제만 관리하고 나머지 분야는 해당 부처로 업무를 이관시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위기관리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국가 비상사태(충무사태), 민방위사태, 통합방위사태, 재난사태, 테러사태 등 기능이 유사하고 중복된 위기관리 시스템들이 아무런 유기적인 관련성 없이 제멋대로 운영되고 있다. 이대로 방치되면 위기관리 정책의 발전은커녕 기존 조직과 기능을 유지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시민에게 안전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해야 하는 안보 거버넌스로서 매우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위기관리 정책과 집행기구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수반되어야 하겠으나, 여기에는 두 가지 구조적인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국가 주권의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헌법과 법률이 표방한 국가의 핵심기능으로서 위기관리가 미국과 융합되어 있다. 대통령의 의지가 군을 비롯한 제 기능에 전달되기 이전에 미국의 판단이 중간에 개입하는 기형적 의존체제를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다. 극단적으로는 우리 독자적인 위기관리란 불가능하며 한미동맹에 의한 위기관리만 가능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2015년에 전시작전권이 전환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본격화된다면 이러한 위기관리 체제는 대폭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위기관리의 또 다른 주체가 정전협정을 관장하는 유엔사령부로 설정되어 있는데,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본 궤도에 오른다면 유엔사령부 존폐 문제가 검토될 것이 확실시 된다. 그렇다면 좋던 싫던 한반도 평화체제의 당사자로서 우리는 스스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투자와 연구, 시스템 구축이 이루어져야 하고, 동맹은 단지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 동맹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동맹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로 상징되는 유엔사 체제에서의 위기관리 이후 남북관계가 발전됨에 따라 한반도 위기관리의 핵심 기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에 대한 판단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과 경제공동체, 또는 경제연합을 실현해나가는 단계, 또는 그 이전에 남북 위기관리 체제에 대한 청사진이 동시에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시민 주권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국방에는 문민통제의 규범을 구현할 수 있는 ‘국방기본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방정책에 대한 정부차원의 통제와 국회에 의한 통제 절차가 매우 부실하여, 국방정책의 책임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국방부 자의적으로 위기관리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예컨대 중요한 군사정책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데, 중요한 작전계획, 군인 정원 책정, 중기국방계획 등 핵심 분야에서 다른 부서와 달리 국방부만 예외적으로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는 초법적인 특권을 인정받고 있다. 중대한 군사계획을 수립하더라도 굳이 청와대에 보고할 필요 없이 국방장관에게 위임된 사항으로 처리되어 정치권력이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다. 중기국방계획은 재정당국의 예비타당성 조사와 심의 절차를 생략하고 있고, 군인 정원은 국무회의나 행정안전부의 심의 없이 국방장관이 대통령 승인을 받아 결정하면 그만이다. 이러한 군사제도의 왜곡은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지적한 ‘주관적 문민통제’의 특징이다. 군사정책이 민주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 이는 과거 일본 군국주의나 히틀러 치하의 독일군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법과 제도에 의한 ‘객관적 문민통제’를 구현해야 한다. 반드시 그러한 체제여야만 국가의 위기관리 목표와 지침에 군사행동의 목적이 예속되는 위기관리 체제가 가능해 진다. 반드시 문민 정치권력에 국방이 자발적으로 예속되는 민주적 국방체제여야 하고, 국방운영의 모든 영역에서 전문성과 직업주의를 관철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주권의 관점에서 대통령의 술(術)로서의 위기관리의 독자성과 중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민주․평화 세력조차 “안보위기는 남북관계만 개선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라는 안이한 사고방식에 안주하여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안보문제가 남북관계 발전의 성과를 모조리 잠식하는 것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면서도 더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대안을 내놓기를 꺼려하는 정서적 장애가 존재하는 것 아니었는지 반성과 성찰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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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