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방미성과는 누가 가렸는가. 국제안보

<한겨레신문> 2013. 5. 17.

 

박근혜 대통령의 5월 미국 방문 성과가 ‘윤창중 사태’로 가려져서는 안 된다고 청와대는 말한다. 듣기에 거북하지만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방미 성과라는 게 미국 의회에서 두 단어씩 또박또박 끊어서 낭독하는 박 대통령의 독특한 영어연설과 한복의 우아함을 알린 것이라면 윤창중 사태로 인해 그 성과가 가려진 것은 아니다. 종편 4개 채널과 공중파 3개 채널이 생중계한 의회연설과 모든 신문이 칭송한 정상회담의 성과는 가려지기는커녕 우리 역사상 가장 화려한 홍보였다. 더 가려지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동북아 질서가 재편되고 남북관계가 요동치는 전환적 시기에 우리의 외교안보에 한-미 정상회담은 무엇을 남겼나. 한-미 관계는 “포괄적 전략동맹”이며 “아태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이라는 거창한 수사에 숨어 있는 그림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미국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실장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과 연결시킨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공동선언 발표 직후 백악관 누리집은 미사일방어체계(엠디)와 군사능력 및 기술을 공유하게 된 것을 가장 돋보이는 성과로 서두에 명기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용 ‘재균형’ 정책에다가 미사일방어를 얹고, 여기에 한국을 흡수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동북아에서는 한·미·일이 군사적으로 결속되는 지정학적 대변동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국가이익에 미국이 협력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국가이익에 우리가 흡수되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중국이 수용할 리가 없는 냉전으로의 회귀다. 이걸 성과라고 한다면 미국의 중국 견제와 거리를 두어온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전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 그것이 국격의 상승인가.

정상회담 직후 이어진 국방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자. 15일에 제주도 남방에서 미국 항공모함 강습단과 한국과 일본의 구축함이 참여한 한·미·일 해상훈련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었다. 해상훈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던 국방부는 이 보도로 인해 “이번 훈련은 인도적 목적으로 실시되는 연례적인 탐색구조 훈련”이라고 뒤늦게 해명했다. 무슨 인도적 구조훈련에 구난·구조함은 보이지 않고 항공모함 강습단과 최신예 이지스함이 출동하는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12일에 아베 총리가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731 훈련기’에 탑승하고 13일에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저질 망언이 이어질 무렵 우리 국방부는 일본 정부에 “훈련 참가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그러나 일본은 버젓이 이를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우리 국방부의 얕은 꼼수마저 걷어차 버렸다. 미국의 요청에 따르다 보니 일본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감수하는 우리 국방부의 행태를 보라. 우리의 역사인식과 국가이익에 맞지 않는 국제질서에 마지못해 끌려가면서 그 사실이 언론에 공개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솔직하지 않은 자는 윤창중 전 대변인만이 아니다. 동맹과 국격이라는 명분으로 한·미의 국가이익과 역사인식의 차이를 은폐하는 것이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대통령 방미 전에 아파치 헬기와 패트리엇미사일 도입을 발표하고 국방부와 마이크로소프트사 간의 저작권 분쟁도 우리 양보로 마무리된 것도 숨겨진 정상회담의 비용이었다. 그리고 정상회담 이후 미국제 무기 도입, 한-일 군사협력, 국방비 증액 압력, 방위비 분담과 기지 이전 등 미국으로부터 동맹비용 청구서가 줄줄이 날아올 무렵이면 우리 납세자들은 그제야 한-미 정상회담의 진짜 성과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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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