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글레브 이바셴초프(Gleb A. Ivashentsov) 주한 러 대사 인터뷰

 

D&D Focus 2009년 5월호


“남-북-러 경제협력이

한반도 평화공동체를 추동한다”



대담 : 김종대 편집장, 이정철 본지 자문위원

정리 : 서정환 기자

사진협조 : 김철수 월간 ‘말’ 기자


북한의 로켓 발사와 대북제재, 6자회담 불참선언 등 한반도의 안보환경이 긴박해지고 있다. 물론 이 무대의 주연은 북한과 미국이고 중국과 일본이 비중 있는 조연을 맡고 있다. 그에 견주어 보면 러시아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를 논하는데 있어서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평양과 서울을 잇달아 방문했고 러시아 극동 대사 방한도 앞두고 있다. 위기의 한반도에 연이은 러시아 고위인사들의 방문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비전가, 전략가


동북아의 새 질서를 위한 러시아의 구상은 무엇일까. 또한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까.

<디앤디포커스>는 글레브 이바셴초프(Gleb A. Ivashentsov) 주한 러시아 대사를 만나 한반도 및 동북아 현안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과 의견을 들었다.

이바센초프 대사는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한-러 간 외교, 경제, 문화 교류를 소개하며 “한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동북아 평화체제와 안보 문제와 관련,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러시아의 참여 없이 해결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주연 발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거침없이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역설하는 대사의 어조는 마치 연설 같다.  원칙을 강조하는 소탈한 분위기에서 러시아 외교의 직설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말을 빙빙 돌리는 서방의 외교관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특히 대사는 동북아 경제협력과 다자간 안보협력을 통해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평화공동체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암시했다. 비전과 전략으로 탄탄히 무장되어 있는 이념가, 전략가, 비전가로서의 풍모가 느껴진다.

이바셴초프 대사와의 인터뷰는 22일 오전 10시, 서울 정동 러시아 대사관에서 약 1시간 가량 진행 됐다. 다음은 이바셴초프 대사와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이정철 본지 자문위원이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디앤디포커스(이하 디앤디) :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바셴초프 대사(이하 대사) : ‘동료’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디앤디포커스>는 매우 영향력 있는 잡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잡지보다 인터넷을 더 좋아해서 이런 잡지가 많이 나오지 않지요.


디앤디 : 지난 해 9월 이명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당시 양국 정상은 두 나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키기로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사께서도 구체적인 사항을 진척시키느라 무척 바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사 : 금년에 와서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접촉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9월 말 이명박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 한 후 양자 관계는 새로운 수준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양국 정상은 한-러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만든다는 데 합의를 봤고 양국은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한-러 정상회담 후에 이고르 세친 러시아 부총리, 이고리 레비친 교통부 장관, 안드레이 크라이니 러시아 수산청장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지금도 러시아의 관세청 제1부청장이 한국에 와 있습니다. 또한 국회 간의 협력도 발전되고 있습니다. 미하일 니콜라예프 러시아 상원 부의장이 지난 달 방한하여 김형오 한국 국회의장을 만났습니다. 이번 주에는 금요일(4월24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며 다음 주 월요일(4월27일)에도 사포노프 러시아연방 극동지역 대통령 전권 대표가 올 것입니다.


러시아 고위인사들의 ‘방한 러시’


너무 중요하고 규모가 큰 러시아 대표단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 대표단 속에는 러시아 각 지역의 지사나, 많은 기업가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5월에도 러시아 중재재판 의장과 러시아 원자에너지청 의장이 한국을 방문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해 문화 협력에 관한 합의를 체결했고 김형오 국회 의장도 러시아 방문을 곧 앞두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다른 많은 상호 방문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방문이 바로 양자 관계의 적극적인 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기술 협력도 정열적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원래 한국인 우주인을 보내는 것이 처음에는 러시아에 먼저 제안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한-러가 공동으로 추진 중인 로켓, KSLV이 오는 7월 실험 발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100킬로그램 되는 것을 우주에 발사할 수 있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디앤디 : 한-러 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관계가 평화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사 : 러시아는 남북 관계가 정상적으로 발전되고 단합하는데 언제나 노력해 왔고 평양과 서울(양국 정부)이 같은 민족끼리 자기 관계를 강화해 가는 것을 언제나 지지해 왔습니다. 해외에서의 간섭 없이 직접적으로 대화를 정상화 시키는 것을 지금도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핵 문제와 한민족의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수레의 두 바퀴처럼 따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분단;편집자 주)문제가 미해결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핵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다음으로 한반도 정세는 세계적 정세를 함께 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정세를 보면 유감스럽게도 상당히 긴장되어 있습니다. 여러 국가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이용하기도 하니까 세계적인 정세가 악화되었습니다. 물론 국제무대에서 이에 관한 일정한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러시아 같은 경우 북한의 핵 지위를 인정하지 않지만, 동북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선 일단 모든 국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도 일본도 모두 안전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런 게 있으면 다른 국가들도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앤디 :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 러시아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사 : 지금 남북 사이에는 신뢰가 부족합니다. 신뢰를 이루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있는데, 장기적인 경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 러시아는 러시아, 북한,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3자 프로젝트를 많이 제안해 왔습니다. 한반도 종단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연결 프로젝트, 북한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오는 가스관 건설, 러시아 극동 지역의 많은 전력 에너지를 북한을 거쳐 한국에 공급하는 것 등 많은 프로젝트를 실현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시행에 옮기게 되면  한반도 정세가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디앤디 : 경제를 바탕으로 평화를 이룬다는 뜻입니까.


대사 : 물론입니다. 경제를 기초로 해서 정치안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최근 500년 간 벌어진 국제 분쟁의 기본적인 이유는 경제 문제였습니다. 러시아에도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60년대에 소련이 유럽에 가스관을 건설하면서 유럽도 소련 경제에 장기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긍정적인 결과가 빨리 나타나 75년에 유럽 안정에 관한 큰 회의(헬싱키 회의)가 열린 것입니다.


한-북-러 경제협력으로 ‘동북아 연합’도 가능


유럽도 석탄과 강철을 다루는 연맹이 먼저 구성된 것이 결국 유럽연합이 생겼는데 저는  이것이 동북아에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금년 2월18일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가스 액화 플랜트가 건설되어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그곳에서 매년 150만 톤의  액화 가스를 받을 것입니다. 금년 4월11일에 이미 청정 액화 가스가 들어 왔습니다. 일본에도 이 액화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미국 태평양 해안 지방에도 공급을 할 예정입니다. 만약 에너지 부분에서의 이런 협력을 계속 발전시키면 동북아 지역에서도 유럽 연합과 같은 기구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칼 맑스는 토대, 즉 경제관계와 상부구조, 즉 정치관계를 상호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보았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경제가 정치관계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인거죠. 경제가 잘 되면 다자간 안보협력도 추동하는 힘이 된다는 얘깁니다.


디앤디 : 러시아는 6자 회담 다자안보 실무회의의 의장국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6자 회담 참여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북한의 행동이 러시아 생각하는 다자안보 체제 구상과 맞지 않습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헬싱키 체제 조건이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인정해야 하는 데 그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사 : 동북아 지역에서 안정과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데는 전제 조건이 있어선 안 된다고 봅니다. 북한에 대한 세계 각국의 입장이 서로 다룰 수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이라는 나라는 유엔 가입국이고 이는 150개 이상의 국가가 북한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을 무슨 ‘불량국가’나 ‘폭정의 전초 기지’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은 ‘자주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과 같은 것이 동북아 지역에 만드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인 목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자안보 실무회의의 의장국으로서 러시아는 동북아 안정에 필요한 기본 원칙을 제시했고 우리의 파트너들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금 존재하는 6자회담이 동북아 안정과 평화에 관련된 문제를 토론하는데 가장 좋은 형식이라고 봅니다.


디앤디 : 북한은 최근에  평화협정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2007년10월4일 정상회담에서 3자 혹은 4자 종전선언을 얘기를 했는데 한국과 북한, 중국, 미국 등을 의미하던 분위기였습니다. 어쨌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현안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소극적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4자 회담을 지지하십니까 아니면 러시아의 참여를 원하십니까.


“정전협정문에 미국과 중국은 없다”


대사 :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가 그 (정상회담)과정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그와 관련된(러시아를 배제한다는;편집자 주) 문서라도 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질문은 가정에 대한 것이어서 답변을 드리기 어렵겠습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의 정상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참여 없이 동북아 평화 안정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러시아가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는 합니다. 그러면 미국과 중국은 참여했느냐? 하지만 정전협정 내용을 보면 정확한 당사자는 북한, 유엔, 중국 의용군의 서명입니다. 실제로는 중국과 미국이 나오지 않습니다.


북한, 미국, 중국이 정전협정의 세 당사자라는 일반인들의 상식과 상당히 다른 발언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언급이다. 미국이 아닌 유엔, 중국이 아닌 당시 임시로 소집된 항미원조 의용군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가 배제된 3국 간의 정전협정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 편집자 주


디앤디 : 최근 현안과 관련하여, 러시아는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전달했습니까.


대사 : 러시아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북측과 회의를 통해 미사일을 발사하지 말라는 충고를 여러 번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의 의장 성명도 채택도 지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가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6자 회담을 재개 하는 것을 지지 합니다.


디앤디 :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을 것인데 러시아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된다고 보십니까.


대사 : 한국에 온지 3년이 넘어 거의 4년이 돼 갑니다. 일반 한국 시민들과도 많이 만났고 지도자들이나 한국 외교관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내가 외국인이라서, 러시아인이라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서로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양국은 수 십 년 동안 서로 밀접한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우리는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상황을 개선했습니다. 한국의 일반 시민들이 러시아의 음악 을 많이 아는 것을 보고 참 많이 놀랐습니다.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이나 전통 문화가 인텔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데, 문화적 협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 서울에서 처음 ‘러시아의 밤’이라는 러시아 문화 축제를 개최 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 모스크바에서 그것과 똑같은 한국 문화 축제가 진행됐습니다. 한국의 많은 가수와 댄서들이 갔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 에너지 협력 그 이상


가수 레인(비)하고 보아가 러시아에 가면 인기가 많을 것입니다. 한국 음악도 러시아에 많이 들어왔고 러시아 음악도 한국에 많이 들어 왔습니다. ‘쥬라블리(백학)’는 드라마(모래시계)의 주제가로 쓰였고 ‘백만 송이 장미’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좌파에 속한 한국 정치인들 사이에는 ‘스텐카라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한국 영화가 굉장히 인기입니다. 모스크바와 상태페테르부르크의 백화점 DVD판매 코너에 가 보시면 러시아어로 번역된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에도 태권도 연맹이 있어서 약 2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이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러시아의 격투기 같은 스포츠도 많이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러시아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디앤디 : 효도르(이종격투기 세계 챔피언) 말씀인가요?


대사 : 그렇습니다!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죠(웃음). 효도르도 한국의 씨름과 비슷한 러시아의 ‘쌈보’ 선수인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를 알릴 생각입니다.


디앤디 : 한국 영화가 인기라고 그러셨는데 러시아 기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는 누구입니까.


대사 : 한국 여자 배우들은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딱히 한 명을 꼽을 수는 없습니다. 한 배우를 너무 긍정적으로 얘기하면 다른 여배우들이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웃음).


디앤디 : 끝으로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신지요.


대사 :  한국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원료의 3분의 1 이상이 러시아에서 들여옵니다. 그러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단지 에너지 문제에 관한 것만이 아닙니다. 문화, 기술 교류나 군사 분야의 협력 등 모든 것들이 양국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이룬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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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