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의 레일위로 폭주하는 국방부 전차군단 편집장의 노트

 

독선의 레일위로 폭주하는

국방부라는 이름의 전차



열린사회와 그 적들


미국에서 4성 장군을 가장 오래 역임한 하이만 리코버(Hyman George Rickover 1900 ~ 1986) 대장은 “핵 잠수함의 아버지”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정력적이고, 정치적이며, 성급하고, 저돌적이고, 일중독인 리코버가 63세에 대장으로 퇴임할 무렵, 그는 백악관과 군부, 그리고 의회에서 숱한 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13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핵 잠수함을 진수시켰고 미국 원자력 산업을 부흥시킨 인물입니다. 핵 잠수함 노틸러스가 호가 탄생한 이래 200척의 핵 잠수함과 23척의 핵 항모 및 구축함을 보유하는 세계 최강 미군이 탄생한 것은 리코버 대장의 고약한 성격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이 리코버를 퇴임시키려 하면 미 상원과 하원은 반대했습니다. 끊임없는 퇴임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의회의 비호 아래 20년 넘는 기간을 대장으로 지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리코버를 ‘정치군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의 고위 장성들은 의회와 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장군들은 국회의원과 인간적으로 소통하면서 정치적 후원을 받아내기 위해 열심히 로비합니다. 그러면 미군 장성들이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국회의원에 줄을 대는가? 그렇게 믿는 미군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펜타곤은 아예 3성 장군을 의회에 상주시키면서 1년 내내 의회와 소통합니다. 의회에 대한 풍부한 정보제공, 상시적인 로비가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과연 우리 국방부가 이런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난 11월 14일, 국방부가 국회에서 45년간 운영해 온 ‘국회연락단’이 국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연락단은 육군 대령을 단장으로 하여 각군 장교 4명, 일반직 공무원 3명이 근무하는 조직입니다. 비록 미군과 같은 3성 장군은 아니지만 이 7명의 인력이 국방부와 국회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들이 국회에 근무하면서 민주헌정이 유지되는 기본원리를 이해하고 여기에 국방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접목시키는 ‘로비스트’ 역할을 해 온 것입니다. 돌연 국회 국방위원회는 이 기능이 더 이상 필요 없다며 사무실을 비우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국방부는 국회로부터 존중받는 연락단장 J대령을 ‘정치군인’이라고 낙인찍고 군으로 원대 복귀시켰습니다.

이후 국방부와 국회 간에는 싸늘한 냉기가 돌며 서로를 백안시합니다. 다가오는 예산심사와 법안처리에서도 단순히 ‘통법부’ 역할에 머무르지 않겠다며 국회는 깐깐한 자세로 돌아섰습니다.

과연 국회 연락단이 꼭 필요한 조직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와 국방부 간의 긴밀한 소통과 이해가 절실한 시점에 양측을 연결하는 교량이 끊어졌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국회에 파견되어 합법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온 장교들이 하루아침에 ‘정치장교’라는 누명을 쓰고 군에 돌아가 받게 될 불이익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는 겁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제가 국회에서 10년간 근무한 상식으로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미국에서는 국방부가 의회에 대한 소통이 잘 되는데 한국에서는 거꾸로 가는 이유는 뭘까요? 미국 의회 의원들은 자질이 뛰어난데 반해 한국 의원들은 무식하기 때문일까요? 미국 의회는 애국심이 있는 신뢰받는 집단인데 한국 국회는 싸움질이나 하는 못 믿을 동네이기 때문일까요? 



시계바늘 거꾸로 돌리기


지난 45년간의 국회 연락단 역사에서 기상천외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한 번은 여야 원내총무가 국회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합의하자 연락단은 각군에 이를 전파했습니다. 그러자 참모총장의 지시라며 육군의 모 인사가 연락단에 전화를 했습니다. 의사일정에 총장의 국회 출석일자에 바쁜 일이 있어 출석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인사가 하는 말.

“당장 여야 원내총무를 만나 육군은 이 의사일정에 동의 못한다고 전하고 의사일정을 바꾸라”

이 말이 왜 이상한 말인지는 여러분들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어쨌든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 보좌관들이 떼굴떼굴 구르면서 웃더군요. 어떤 때는 군이 진지하게 하는 말일지라도 문민의 시각에서 보면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국회는 본청 5층과 6층 복도에 한국현대사의 주요 장면에 대한 그림을 전시하기로 하고 몇몇 화가들로부터 그림을 납품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 맨 아래 귀퉁이에 계엄군이 시민을 진압봉으로 폭행하는 장면이 아주 작게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국방부는 이 그림이 국회 복도에 전시되는 경위를 파악하겠다며 부사관과 사진병을 국회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국회 사무처를 찾아가 아직도 창고에서 전시되기를 기다리는 그림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그림 중에서 문제의 그림을 찾아내라는 국방부 요구에 국회 직원은 짜증이 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그림을 내놓으라고 하느냐고 하니까 국방부 직원은 장관 지시사항이라는 겁니다. 그런 그림이 전시된다는 것 자체를 용납 못하겠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혹시 국회 방문하시면 문제의 그 그림이 5층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십시오. 저 그림이 국가안보를 과연 위태롭게 하는 그림인지를. 그저 평범한 그림 하나에 불과합니다. 만일 국회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몇 년 전 이 그림이 전시될 무렵에 국방부가 그렇게 흥분했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면? 관람하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엽기 스토리에 즐거워할지, 아니면 씁슬해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군사문화가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는 일도 어쩌면 군이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가끔 그렇게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에피소드로 여기고 이해해줄만 합니다. 그러나 국방의 최고 지휘부마저 3권 분립을 표방한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방향으로 군을 통치하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놀랍게도 그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들어간 투수


프로야구에서 올해 MVP로 선정된 SK의 김광현 투수는 ‘일본 킬러’로 알려진 한국 최고의 투수입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 타자를 완전히 제압한 우승의 주역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에서 벌어진 아시안컵 야구대회에서의 투구는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본전에서 그는 위력적인 볼을 갖고 있음에도 제구력 난조로 실점을 하더니 조기에 강판 당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군인의 덕목인 국가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정신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쳐 군인이 국민을 가르치고 지도하겠다고 나서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군이 제구력 난조에 빠지는 황당한 일이 생깁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일을 보십시오. 교과서 수정을 요구한다는 국방부는 5공화국 미화했습니다. 포볼. 기준도 원칙도 없는 희대의 불온문서 지정 소동과 이에 반발한 법무관들의 헌법소원이 있었습니다. 포볼. 군내 이성교제를 규제하는 국방부 훈령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포볼. 장관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한 월간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포볼. 연락단 장교를 정치군인으로 매도했습니다. 이건 완전히 폭투. 없어도 될 잡음들이 터져 나와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렸습니다. 이쯤 되면 투수교체까지 고려해야하지 않을까요?

빼어난 경륜과 탁월한 지식을 가진 국방의 지휘부가 이렇게 제구력 난조에 빠진 것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집니다. 좌편향 역사교육으로 오염된 사회를 군이 나서서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 국방에 대한 전문성 없는 국회를 가르치겠다는 태도, 장병들의 독서와 이성교제까지 직접 규제하겠다는 발상, 모두 애국심이 너무 지나쳐서 어깨와 목이 뻣뻣해진 결과 아니겠습니까? 아닌가요? 네? 네? 답변을 정말 듣고 싶어요.

얼마 전 국회 국방위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국방장관에게 말했습니다.

“정부 16개 부처 중에서 국정감사가 끝나고 이렇게 국회에서 분위기가 나빠진 부처가 국방부 말고 또 있는가?”

이 말, 아주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매서운 경고입니다.

빨리 제구력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국방이 계속 실점하는 것,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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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