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 군관학교가 된 기무사령부 기고

 한겨레신문 2012. 3.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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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기무사령관 출신 예비역 장성을 두 명이나 공천했다. 한 명은 비례대표의 상위 순번으로, 또 한 명은 여당의 텃밭에서다. 기무사 출신이라고 해서 정치인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했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지난 10년 간 기무사는 여의도를 향한 정치화의 길을 걸었다. 2003년에 34대 기무사령관을 마친 문두식 중장. 바로 그 이듬해에 고향인 전라도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 후임으로 2005년에 35대 사령관을 마친 송영근 중장. 박근혜 대표 진영에 합류하더니 이번에 새누리당 비례대표 당선권의 순번으로 배정되었다. 2008년에 37대 사령관을 마친 허평환 중장. 작년에 국민행복당을 창당하여 대표를 맡았고, 올해 총선뿐만 아니라 대선까지 도전할 기세다. 2010년에 38대 사령관을 마친 김종태 중장. 현 정권의 텃밭인 경상도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움켜쥐었다. 지난 10년 간 기무사령관으로 거쳐 간 5명 중 4명이 직업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정치권에 기무사 출신의 약진은 매우 인상적이다.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 당시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기는 있다. 80년의 20대 사령관 전두환, 81년의 21대 사령관 노태우, 84년의 22대 사령관 박준병 장군의 경우다. 이 당시 보안사는 군부독재 권력을 창출하는 줄기세포였고, 군대에 정치적 중립이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보안사령관이 권력자와 동일시되던 군정이 종식되자, 문민정부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후부터 기무사령관은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는 ‘순장조’로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비록 역사의 평가를 못 받더라도 그것이 바로 군인의 본분이고, 정보기관의 도리였다.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한 문민통제의 규범이다.  

그러나 30년이 더 지난 시기에 과거 군사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최근 나타나는 이유가 뭘까? 역대 기무사령관 출신들이 재임 기간에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치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정치권으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기무사령부가 절세의 애국자들을 배출하는 정치 군관학교로 변신한 배경에는 “종북 좌파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구국의 결단’이 작용했는지 알 수 없다. 현역과 예비역 장성들이 정치로 시선을 돌리는 배경에는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아야 할” 이 나라의 우파가 허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 특히 정보에 밝은 군인이 나서야 한다는 ‘고뇌에 찬 결단’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보와 공작의 정보기관의 장이 정치를 좌우하던 과거사에 비추어볼 때, 이런 현상은 민군관계에 있어 아주 나쁜 선례가 된다. 게다가 최근 민간 방위산업계의 요직의 상당수를 기무사 출신들이 장악하는 새로운 현상은 야전의 군 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기무사령부는 귀족사령부가 될 것이고, 군은 동요하게 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확히 그만큼 위협받게 된다.

때마침 4월 군 정기인사를 앞두고 군의 실세로 알려진 특전사령관이 여군 부사관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밝혀져 보직 해임되었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군 내부의 인사 실세들이 청와대와 사적 라인을 형성하여 인사를 좌우했다는 소문이 흉흉하던 터에 터진 사건이었다. 군의 진급 인사권을 청와대가 완전히 장악하면서 군을 줄 세우려는 권력의 의도가 역력해진 지금, 정치화되어 가는 군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내부의 어떤 암투가 이런 사건으로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정치와 군은 무언가 비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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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