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터질 징병제,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국방개혁

 전차.jpg

 

2010년 11월 10일 밤 10시 50분. G20 서울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야간 특별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3함대 소속 150톤 급 고속정 참수리정이 제주항 서북방 5.4마일 해상에 어선과 충돌하여 고속정에 타고 있던 병사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천안함 사건 이후 가장 긴장되어 있어야 할 해군이 국가 대사를 앞 둔 시기에 일으킨 사고이기에 그 충격은 매우 컸다.

사건 발생 직후 김관진 국방부장관 직속의 특명검열단(현재는 해체)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믿기 힘든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고속정에 탑승한 승무원 30여 명 중 이병의 비율이 60%에 달했고, 사고 발생 당시 견시병 역시 가장 경험이 없는 이병이었다. 최고 선임자는 중사였는데, 사고 발생 순간 그는 함장실에서 독서 중이었다. 경험이 많은 병장, 상병은 대부분 육상 기지에 잔류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하급자를 임무에 투입한 것이다. 기강 문란의 대표적 사례였다.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김관진 국방장관은 별도의 문책 없이 사건을 조용히 덮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침체된 해군을 또 다시 문책하기에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우리 군 전반에서 ‘국방부 시계만 돌기’를 기다리는 ‘아무 생각이 없는’ 전투원들에 의해 숱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일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군대란 원래 그런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군은 이미 900종의 무기체계를 보유한 국내 최대의 집단이고, 전쟁 양상은 날로 현대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비는 날로 현대화되는데 고숙련의 전문가들은 제한되어 있고, 값비싼 무기도 징집병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25억원짜리 K-1 전차를 월급 10만원의 상병이 운전을 하는데, 오조작이 심해서 고장이 자주 났다. 그 정비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전차가 과부하가 걸리면 시동이 꺼지도록 장치를 부착했다. 이렇게 되면 전시의 위급한 순간에 재시동을 걸고, 무장을 작동시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값비싼 전차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투원의 생명도 위험해 진다.

이것이 바로 징병제의 실상이다. 군의 무기수준은 발전하는데, 이를 운용하는 인력은 수 십 년째 제 자리 걸음이다. 육군은 현재 창끝부대 전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공적으로 되면 전쟁은 스마트 전투체계, 즉 똑똑한 군인이 전투를 수행하는 체계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전장은 국방부 시계만 돌기를 기다리는 아무 생각 없는 전투원에 의해 유지될 수 없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숙련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 군인들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군이 미래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현재의 징병제라는 짐을 지고 갈 수는 없다. 병력은 감축되어야 하고 군은 작아져야 한다.

만일 우리 일선의 전투원들의 생명가치가 경시되는 전근대적인 소모전을 수행하겠다면 징병제를 유지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군은 그렇게 운용되고 있다. 군은 이러한 징병의 당위성을 남북 대치상황에서 찾고 있다. 북의 대규모 병력이 전장에 밀집되어 있는 한 우리도 싸우는 방법을 바꾸기 어렵다는 논리다. 과연 이 주장은 진실일까? 필자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우리 군은 우매한 다수보다 소수의 똑똑한 전투원을 필요로 한다. 우선 현대 전장양상이 한국전쟁 당시처럼 탱크로 부산까지 밀고 내려오는 그런 전쟁 양상이 아니다. 실제로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일어난다고 해도 대규모 지상전 교전을 통해 방어선이 밀고 밀리는 식의 전쟁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 남북한이 합쳐서 전차가 6000대라고 하지만 산악지형의 한반도에서 이 많은 전차가 기동할 도로나 공간도 없다. 유럽의 대평원이나 아프리카의 사막에서도 6000대의 전차가 동원된 전투는 들어본 적도 없고, 실제로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북한이 지상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전쟁 당시처럼 우리도 육탄으로 방어하는 그런 전쟁의 이미지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국방비를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설령 그러한 대규모 지상전 교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이것을 회피하면서 효과 중심으로 작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 아직도 1950년대 식 관념과 이미지로 마냥 병력을 깔아놓는 식의 군 운용에 집착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고급장교의 대다수는 그런 과거회귀적 인식에 머물러 있다. 이런 국방을 마치 당연시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오늘날 ‘안보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다.

이런 고루한 의식과 징병제는 일란성 쌍둥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전현직 장성 3000명 중에서 청년 장교에게 귀감이 될 만한 한국형 군사전략에 대한 저서를 집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현실도 이해되지 못할 바가 아니다. 전장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고, 미래 전쟁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결여된 한국군에게는 몸으로 때우는 것, 하던 대로 하는 것, 자동으로, 규정으로, 깡으로 버티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것이 바로 징병의 문화다.

우리나라 징병제는 농업적 근면성을 요구하는 전근대적 조직문화에 기초하여 있으며, 여기에는 일제 잔재와 미국식 편제라는 두 요소가 엉성하게 결합된 국적 없는 문화다. 미래에 군이 요구하는 전문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쩌면 이해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무능을 안보의식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군에서 의무 복무한 예비역들이 자신들의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미래 후배들도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삐뚤어진 평등의식으로 징병제를 지지한다면 이 역시 잘못된 것이다.

필자는 당장 지원병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며, 일단 징병제가 유지되어 온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진단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이 다음세대에게 똑같은 군대를 물려주자는 주장에는 더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차라리 지원병제도를 확대함으로써 스마트한 전투체계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에 더더욱 주목하게 된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