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가는 막말의 최후, 이제는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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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이제 국가 비상사태 절차와 계획들을 점검할 때가 되었다. 선전포고만 없을 뿐이지, 요즘 남북한이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전시체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야 아주 오래된 막말이지만, 이제는 영등포구, 중구라는 구체적 지명까지 거론하여 타격을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서울을 날려버릴 것”, “죽탕치자”는 행동성 언사뿐만 아니라 ‘역적패당’, ‘인간쓰레기’ ‘인간오물’ ‘특등미친X’ , ‘만고역적’, ‘쥐××’라는 별의별 욕이 다 등장한다. 이런 욕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멀지 않은 시기에 북이 무언가 큰 사고를 한 번 칠 것 같은 조짐이다. 북이 남측에 대해 이렇게 오랜 기간 집단적 분노를 지속시킨 적은 적어도 지난 20년 이래 처음이다.

지난 세 차례의 미사일 발사(1998년, 2006년, 2009년) 이후 북은 바로 미국과 대화를 했다. 2000년의 북미 미사일 대화, 일명 ‘조미 코뮤니케’가 그러하고, 2006년 미사일과 핵실험 후에 한미정상은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종전선언을 검토하였으며, 그 결과 2007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될 수 있었다. 2009년의 경우는 바로 대화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이 남북 간에 험악한 상황이 조성되지는 않았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어느 정도 관망기간이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북의 새로운 김정은 체제가 안정될 때까지는 우리는 어느 정도 북한에 시간을 주어야 했다. 김정은의 통치철학과 방향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얼마 동안은 기다려주는 자세도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도 역시 북의 통치체제와 그 방향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북한 급변사태 시 10만 명의 한국군 투입’, ‘북한 상응표적 타격계획’, ‘보복차원의 응징’, ‘현무 미사일 공개’, ‘유사시 선제타격 검토’와 같은 자극성 표현들을 쏟아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전후에 야전부대의 “처 죽이자 김○○”과 같은 구호도 보도되었고, 김정일․김정은 부자 사진을 사격의 표적지로 사용하는 등 군의 보복의지를 고양시키는 현상들이 여과 없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여기에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북한 농지개혁’, ‘통중봉북(通中封北)’ 발언 역시 북한을 조롱하고 고립시키는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북의 새로운 통치체제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관용과 아량을 베풀지 않겠다는 뜻이다.

매우 유감스러운 결정이다. 적어도 북한의 통치체제가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차분히 상황을 관망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자세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조롱과 야유, 보복성 말들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이제는 평화공존, 대화협력, 상호존중, 민족화해협력과 같은 말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다. 평화가 깨지고 나서 집단적 광기와 폭력에 대한 숭배가 누적되었을 때 역사는 항상 위험한 사태가 초래되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그 위험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지금은 전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도 않고 소모적인 공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대통령은 매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지도자다.

1994년에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암살당하면서 요르단 강 서안을 팔레스타인에게 양보한 2차 오슬로협정의 정신이 무너졌다. 그 뒤에 나타난 보수주의 지도자 샤론 총리의 등장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양상은 그 이전의 평화협상을 무색케 할 정도로 격렬했다. 평화협정 이후 양 측의 분쟁 양상은 바로 지금의 남북한 관계와 흡사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심각한 분쟁은 얼마 동안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어졌을 때 일어났다. 그러면서 이제껏 유지되어 온 평화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광신적으로 분쟁에 몰입하였다.

평화의 정신이 무너지고 다시금 국가주의, 대결주의, 냉전에 몰입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는 것과 흡사하다. 무엇엔가 권위에 소속된 느낌은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시키며 사람들에게 집단적인 안정감과 함께, 이질화된 존재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것이 적과 동지로 편을 가르며 국가와 집단에 대한 충성을 유발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바로 이 순간 전쟁이 일어난다.

물론 북한이 그 정도가 더 심하기는 하지만 현재 남북한은 바로 그와 같은 상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럴 정도로 북한과 관계단절을 각오하고 갈 데까지 간다고 한다면,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가 비상사태 절차와 계획을 검토하고 대비하는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자신이 전쟁을 지도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북은 언제든 남측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전시 정부로 체제로 전환을 검토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불시에 올지 모르는 결전의 순간에, 이 대통령은 스스로 전쟁에서 이기는 대통령이 될 것인지, 차제에 통일을 할 것인지, 국민들을 어떤 운명으로 인도할 것인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북한의 말에 말로써 대응하는 것으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였다면 북한 체제 못지않게 위험한 대통령이다. 정권 말기의 현 정부가 최소한 국내정치보다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더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역사적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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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