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망하는 진보, 부패한 보수에게 진다 편집장의 노트

 

 

 

우리 사회에서 ‘재벌 개혁’을 말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런데 ‘삼성 공화국 해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과격하다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재벌 개혁’과 ‘삼성공화국 해체’는 같은 뜻이다. 재벌을 개혁한다고 하면 당연히 삼성 재벌이 포함될 수밖에 없고, 지배구조와 출자총액, 순환출자 등과 같은 구조에 손을 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 공화국 해체’라는 진보당의 구호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언가 이념적 냄새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지율은 마구 떨어져 한자리수가 된다. 이제껏 진보주의는 많은 선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말로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과거 냉전시대에나 통할 이념적 용어를 앞세우게 되면 진보에 호감을 갖고 있는 중도 세력에게 부담을 주게 되고, 지지율은 고전은 면치 못한다. 

최근 야권연대 세력이 총선을 앞두고 휘청거리는 배경에는 잘못된 말이 단단히 한몫을 한다. 정동영 의원이 3월 7일에 강정마을에서 해군 제독에게 행한 발언은 4년 전 그의 ‘노인 폄하 발언’과 비교되는 ‘군인 폄하 발언’으로 인식되고 있다. 민주당 표가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굳이 현역 군인에게 “집권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면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현역 장교의 입장은 난처해진다. 그러면 명령에 불복종하란 말인가? 이런 언사로 정치인과 군인이 직접 충돌하는 모습은 그 진위가 무엇이든 간에 절대 바람직하지도 않고 득이 될 것도 없다. 과거에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전시작전권 전환에 반대하면서 군인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항명을 주문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 의원은 반대로 말했어야 한다. “당신도 위에서 명령하면 복종해야 하는 군인임을 이해한다”고 전제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쳤어야 한다. 이것은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매우 중요한 절차이다. 장관까지 역임한 정 의원이기에 이런 절차는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민주당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집권 10년의 국정운영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표현과 논리가 그처럼 박약한 것인가, 라는 점이다. 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중도세력을 포섭해야 한다. 그리고 보수를 고립시켜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경륜과 합리성을 갖춘 적절한 말이다. 이걸로 호감과 신뢰를 주지 않으면 중도세력은 진보에게 등을 돌리고 보수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진보가 사회를 어지럽히는 공포의 진원지가 되기 때문이다. 보수가 싫지만 일단 안전하기 때문에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진보진영의 정책들은 그 과격한 이념적 표현들만 적절이 제거해준다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가 그러하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동북아 균형자론’이 나오자 여론은 “한미동맹 깨려고 한다”며 벌집 쑤신 듯 했다. 왜 이런 역풍이 초래되었을까? 그것은 균형자가 마치 패권 국가들 사이의 세력균형을 도모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힘의 균형을 조정할 능력도 없고 세력균형자도 아니다. 이 때문에 이 용어는 나오자마자 주변국에 도전하려는 것으로 비춰졌고, 그 진의도 전달되지 못한 채 청와대 스스로 폐기했다. 말 때문에 반미주의로 몰리는 역풍을 맞았고, 청와대는 이를 방어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야권이 아직도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종북주의자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실제로 야권이 종북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표현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이유도 크다.

이제는 말을 가려서 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패한 보수에게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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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