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땅 앉지 않는 큰기러기, 착지 동작도 ‘만점’ 윤순영의 시선

강한 가족애와 부부애로 예부터 친근한 새, 한강하구에 출현해 가을 알려

농경지는 아파트와 창고로 바뀌어, 멸종위기종 지정됐다지만 위협은 여전

크기변환_YS1_8956.jpg » 논에 가뿐하게 착지하는 큰기러기.

지난 928일 큰기러기가 어김없이 한강하구를 찾아와 가을을 알린다.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친숙한 큰기러기는 계절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한반도를 찾아오는 큰기러기는 중간 기착지인 한강하구에 잠시 머물고 천수만, 우포늪, 주남저수지 등 우리나라 전역에서 월동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대표적인 겨울철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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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DSC_0675.jpg » 한강하구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큰기러기 무리.

크기변환_YS1_8778.jpg » 이른 아침, 추수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낱알을 먹으러 날아드는 큰기러기.

큰기러기는 경망스럽지 않은 진중한 성격이다. 가족애가 강해 가족과 먹이를 함께 먹고 이동도 같이 한다. 가족이 사고를 당하면 좀처럼 그 자리를 뜨지 않는다.

다친 가족을 위해 상처가 아물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례가 종종 관찰되곤 한다. 큰기러기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며 암컷과 수컷 중 하나가 남게 되더라도 새로운 짝을 맺지 않고 홀로 사는 새다.

크기변환_YS1_0025.jpg » 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 힘을 싣는 큰기러기.

크기변환_YS1_0022.jpg » 속도를 줄이기 위해 날개를 최대한 펼쳐 공기의 저항을 높인다.

크기변환_DSC_4132.jpg »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큰기러기.

가을에 무리를 지어 찾아오는 새라 하여 추금(秋禽)’, 달 밝은 밤 갈대 숲을 찾아 기러기 떼가 날아드는 광경에 달밤에 떠다니는 새라 하여 삭금(朔禽)’이라고도 한다. 계절이 변하는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여겨져 편지를 雁書(안서)’라고도 했다. 기러기만큼 많은 이름을 가진 새도 없을 것이다.

크기변환_DSC_9541.jpg » 초저녁 달과 함께하는 큰기러기.

크기변환_YSJ_8635.jpg » 달을 스쳐가는 큰기러기.

갈대 ()’와 기러기 ()’을 쓴 노안도(蘆雁圖)에서는 저녁노을의 붉은 해 혹은 달을 그렸다. 해 질 무렵 기러기가 갈대밭 잠자리로 찾아들어 편안하게 쉼을 상징한다. 이 한국화에는 다른 사물을 그리지 않는다. 노안(蘆雁)을 늙은 노() 편안할 ()’의 의미로 여겨 노후의 안락함을 기원하는 그림으로도 그렸다.

크기변환_YSJ_9360.jpg » 석양빛에 물든 하늘을 나는 큰기러기.

안평대군의 회화 수장목록에는 안견의 노안도 한 폭이 언급되어 있고 조선시대 노안도 가운데는 신사임당의 그림 두 점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변함없이 화가들이 기러기 그림을 즐겨 그리고 있으며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정겨운 그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새였음이 분명하다.

크기변환_YS1_9939.jpg » 혼자 나는 기러기는 외롭다. 그래서 자기가 있는 곳을 소리 내어 알리며 날아간다.

단풍이 들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얼음이 풀리면 번식지로 돌아가는 큰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이 어두운 갈색과 흰색, 주황색 3가지 색으로 멋을 부리지 않은 단순한 색을 가지고 있다.

어두운 갈색으로 몸보다 어둡게 보이는 목은 몸 보다 길고 앞가슴은 연한 회갈색이며 주황색의 다리는 짧아 뒤뚱뒤뚱 걷는다. 유난히 하얀 엉덩이는 우습게 실룩거리지만 해학적이다.

크기변환_YS1_7886.jpg » 착지를 위해 속도를 줄이는 큰기러기.

크기변환_YS2_7388.jpg » 큰기러기는 항상 무리를 이루어 나는 습성이 있다.

검은 부리 중간에 주황색 띠가 선명하고 날개깃 중심은 어두운 갈색이다. 깃 가장자리엔 흰색 테두리가 있어 물고기의 비늘이 박혀 있는 것처럼 눈에 띈다.

내려앉을 때는 짧은 꼬리 끝 가장자리 흰 선이 부채 모양으로 활짝 펼쳐져 순박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육중한 몸을 하늘에 맡기고 힘차게 나는 모습은 하늘을 당장이라도 부숴 버릴 것 같은 힘을 느끼게 한다.

크기변환_YS1_9785.jpg » 큰기러기의 뒷모습.

크기변환_YS1_9777.jpg » 날다가 서로 부딪힐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없다.

지난 날 농한기 겨울철엔 기러기들의 수난기가 있었다. 독극물과 엽총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현재는 야생동식물 보호법에 의해 포획이 금지되어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위협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크기변환_YSJ_9175.jpg » 큰기러기의 비상.

크기변환_DSC_8544.jpg » 농경지의 매립으로 들어선 건축물과 비닐하우스는 큰기러기의 월동을 힘들게 한다.

크기변환_YSY_8583.jpg » 농경지의 볏짚 수거는 월동하는 큰기러기의 먹이를 부족하게 만든다.

3월이면 번식지로 돌아가는 기러기는 남쪽의 봄소식을 전하며 민가 근처 농경지로 날아들어 더욱 친근감이 든다. 물가 가까이 있는 농경지를 좋아한다. 밤하늘을 떠가며 과안~ 과안~’ 울어대는 소리는 깊어가는 가을을 얘기하는 듯하고, 갈대와 황금 벼 이삭과 어우러져 날아드는 모습은 넉넉함을 안겨 준다. 수천 년을 부모로부터 이어온 각인으로 변함없이 찾아오지만 그들의 땅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큰기러기 착지 연속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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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기러기는 우리에게 가장 정겨운 새다. 이 땅을 버리지 않는다면 기러기는 자연과의 약속을 지키며 이곳을 변함없이 찾아올 것이다기러기는 높이 날면서 더러운 땅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곳에선 사람도 살 수 없다.

·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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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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